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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9 | 특집 [특집]
브레히트 서사극-서사극이란 무엇인가? -
송 동 준(宋東準)(2004-01-27 13:41:56)

* 비 아리스토 텔레스 劇으로서의 서사극 1933-1941년에 집필한 일련의 연극논술들을 통합하여 〈비 아리스토텔레스 iise eine nichtarictotelixbe Orawalik〉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이 논술에서 그는 그의 서사극이 아리스토텔레스 劇과 상이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브레히타 발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劇)은 회랍비극을 모델로한 감정이입극으로서소위 〈삼통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환상극〉을 일걷는다. 아리스토탤레스의 「시학」에 의하면 비극이 지향하는 효과는 카타르시스, 즉 관객의 정신적 정화작용이다. 두려옴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주인공의 행동을 배우가 모방함으로써 관객에게 정화작용을 낳게하는 것이다. 때문에배우는 작중인물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관객은 배우를 통해 자신을 작중인물과 일치시킨다. 이러한 일치를 가능케하는 것이 감정이입이다. 혜겔에 의하면 작품 세계와 실제세계간에는 어떤 일치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문에 예술작품은 그것을 수용한 독자, 청중, 관객에게는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고대 회랍비극에서 영웅적 개체가 당시의 사회를 지배했다는 세계의 반영이다. 또한 18세기 시민계급이 대두될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봉건사회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바탕으로 해방된 개체가 새로운 사회질서를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독일 고전주의 비극은 바로 개체의 자율적 행동을 바탕으로 하고 었다. 연극에서 “체험”은 관객에게 실생활을 위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 이후 거의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르네상스(회랍 고대의 비극 전통에서 신을 배제하여 인간중심의 근대극 발판을 구축) 이후 5세기가 지난 오늘날 개체와 세계의 관계는 판이하게 변했다. 오늘날 인간은 〈모든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로 파악된다.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이 아니라 세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상황이다. 아도르노는 말한다: 〈인간이 생산 방식에따라 모형되어진다는 것은 가공할 일이나, 사회적 생산에 대해 호령하는대신, 이 생산의 명령속에 인간이 서있는 것은 이미 세상 상황입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관객의 관심은 인간 개체가 아니라 인간 개체를 지배하고 있는 생산방식, 즉사회의 지배 법칙이다. 오늘날 감정 이입을 통한 관객의 연극체험이 얼마나 허망하며 실제의 삶을 위한 생산적 힘으로 전혀 작용할 수 없음을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객을 교묘히 왕으로, 情夫로,계급투쟁자로, 한마디로 그들이 원하는 것으로 변화시켜준다. 하지만 다음날오전이면 냉냉한 햇살을 받으며 이들 왕은 전차를 운전하며 이들 정부는 그들의 부인에게 쥐꼬리 월급 봉투를 건네주며, 이들 계급투쟁자들은 노동착취를 당하기 위해 긴대열에 선다 연극의 〈체험〉이 실생활과 얼마나 모순 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이같은 현대상황에 일치시킨 연극형태다. 그것은 비아리스토텔레스극이다. 그것은 감정이입 대신 〈소외 Vertrewduney〉를 기반으로 한다. 연극이 실제인 것처럼 환상을 갖게하는 대신 가능한한 연극을 연극으로 보게끔한다. 무대 사건에 대해 일치가 아니라 거리를-、갖게하여 무대사건, 즉사회의 모순, 오늘을 낳는 지배법칙을 관찰하도록 한다. 그러면 비 아리스토텔레스극이 아리스토탤레스극과 그 기능에 있어서 얼마나 대치되어 있는가를 소외효과(V-EHeld)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브레히트는 말한다 
1) 어떤 사건 또는 성격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우선 깐단히 말해서 그 사건이나 성격에서 자명한 것, 명백한 것을 재거하고 그에 관해서 놀라움과 호기심을 자아내게하는 것이다(Smn.Th.S.301)
2) 간략히 말해서 여기에서 문제도 묘사될 인간 상호간의 사건에 눈에 띄는, 해명을 요한다는, 자명하지 않다는아주 자연스럽지가 못하다는 낙인을 찍어주는 기법인 것이다. 이 효과의 목적은 관객에게 사회적인 관점에서 생산적인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데 있다. (S.553)
이상의 두 언급에서 우리가 확인할수 있는 몇가지 특정은 소외효과는 어떤 사건이나성격(=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 둘째, 이것에서 자명한 요인을 채거하여 놓어I 뛰는 부작휠한 것으로 보이게끔하는 기법이라는 것, 세째, 이 효과는 감정적 체험을 낳는 것이 아니라 해명을 요하는 의심을 낳아 인식기능을 자극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이 효과의 목적이 사회적(=사회개혁적) 관점에서 생산적 비판을 가능케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면 이를 위해 브레히트가 제시하고 있는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 딸의 보살핌에 고마워하는 홀아버지가 성적 외도를 할 기회가 생기자 딸의 보살핌은 그에게 짜증스런 횡포로 나타난다.
@ 평소 위대하게 보이던 선생이 집달리에게 끌려갈 때 제자에게는 선생이 그처럼 초라하게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해 발을 다친 젊은 여인이 배상을 위한 법원의 판결이 지연되자 자신의 변호사에게 자기 발을 가르키며 절망적인 어조로 외쳤다〈벌써 상처가 나아가고 있어요 ! 〉하고〈기이하게 한다〉라는 의미에서의 소외 효과는 도대체가 예술의 두드러진 특정에 속한다. 그것은 예술의 쇄신 원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 있어서 그것은 언제나 사회개혁적인 관정에서 생산적인 비판을 가능케하는데 그 특정이 었다. 그렇다면 비판기능을 통한 인식작용이 관객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예술적 효과로 작용활 수 있는가? 브레히트는 과학시대의 관객에게는 감정이입을 통한 ‘오락 보다 사고의 활성화를 통한 ‘즐거웅’이 관객에게 훨씬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갈리레이의 생애」에서 브레히트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논중에서 나오는 유혹은 너무나 크오 대부분의 사랍들은, 결국엔 모든 사랍들이 이 유혹에 굴복하오 사고는 인류의 가장 큰 즐거웅에 속하오〉(GW.Bd.3.S.1256) 그래서 그는 말한다 : 〈비판적 태도는 혼히 만는 것처럼 반예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향락적이며 동시에 정감적이다〉(S.377) 실제 극의 구성에 적용된 소외의 중요한 기법 및 형식들을 보면 二重의 줄거리, 극중극의 구성, 재판 장면, 노래, 제시적 간접 문장 구초둠이다.二重의 줄거리를 가진 대표적인 작품은 「사천의 선인」, 「코카시아의 백묵원」이다. 극의 두 줄거라는 서로가 상대화작용을 한다. 이로 말미암아 관객에게는 극의 사건진행에 비판적 거리를 갖게해주는 소외 작용이 일어난다.
극중극의 형식을 담은 대표적 작품은 「코카시아의 백묵원」(이 극의 본극은 두 집단 농장이 한 골짜기의 소유권을 놓고 논쟁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공연으로 일종의 틀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푼틸라 주인과 그의 종마티」(푼틸라의 딸이 종인 운전사 마티의 부인으로서 적격인가를 시험하는제9장) 「병사는 병사」(가짜코끼리를흥정하여 사형 선고를 받는 겔리 게이의 변신 장면)등이다. 클로츠는 극중극의 소외작용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관객은 극공연과 관객의대치가 무대상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본다. 관객은 관객으로서, 자기 상황을 새삼 의식하게 된다. 제3의 사건이 제2의 매개에 의해 간접적으로 제시되고 았음을 의식한다. 극중극의 결과에는 연기의 매개적 기능이 관객에게 드러난다.〉
브레히트의 대부분 극에서는 재판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서사극의, 소외극의 전형적 구성을 갖기 때문이다. 서사극의 기본 모형으로 기술하고 있는「가로장면 Die Straysbszeue」에서 브레히트는 재판형태와 서사극 형태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재판형식은 관객에게 비판적 태도를가능케해준다. 양편에서 제시한 논거와 변론을 통해 관객 스스로가 판결하게끔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브레히트극의 구조 자체가 재판장면의 유무를 막론하고 도대체 재판형식이다. 「사천의 선인」「코차시아의 백묵원」 「예외와 규범」에서 재판장면은사건전개에서 주어진 논거를 마지막에 나오는 집약하는 기능을 한다. 클롯츠는 말한다: 〈재판의주제적, 장면적 형태는브레히트극에서 대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그것은 동시에 극의 전체형식을드러내 준다.」브레히트에서 노래는 〈시적 차원〉 으로서 사건전개적인 극의 차원에서 분리되어 사건전개를 중단시킨다. 그것은 독립된 분리기능을 갖음으로써 몽타즈된 異物質로 나타난다. 그것은 사건전개에서 나타나는 환상성을 파괴하는 기능을 한다. 그것은 또한 독립성의 근거에서 흥겨운 놀이의 면을 가능케할 뿐만아니라, 회랍비극에서의 코러스처럼 성찰적, 교훈적 기능까지도 수행한다. 제시적 간접 문장구조는 특히 「백묵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구조는 〈말하는 순간에 자신의 말을인용하는〉(A Scbjne) 예컨데 〈아가씨에게 양친이 있는가?〉라는 말을〈아가씨에게 양친이 있는지 물어도 괜찮을까?〉다. 이것은 〈문장중 문장〉의 화법으로서 〈극중극〉의 형식에 상응한 문장구성이다: 〈나는 네게말한다…,나는 네게 보여준다…식의 기본 모형 에서는 두 차원을 겹치게 함으로써 문장중 문장은 극중극과 동일하게 직접성을 제거하는 형식원리로 나타난다. 아무것도 근원적으로 말해지지 않으며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안않는다 .
서사적 자아에 의한 구성서사극은 그 이륨이 명시하고 있듯 서사적 헛석옹 춰하 극이라 맘이다.
그리고 서사적 형식은 무엇보다도 서사적자아 즉 話者와 존재한다는데 그특정을 갖는다.·화자의 존재로 말미암아 劇의 〈절대성〉, 측 극이 현실이라는 환상이 째어지고 만다. 극이 어떤 立體에 의해 만들어졌지 자체 독립된 변중법적 전개가 아님이 드러난다. 그리고 소위 제4 벽이 허물어지고 무대와관객은 대치의 상대적 관계를 갖게된다. 또한 서사적 자아는 극에서 시간과공간의 통일성을 깨고 조각난 장면들을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건의 시간을 필요에 따라 임의로 재단할 수가 있다. 이러한 서사적 자아의역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작품으로 우리는 「코카시아의 백묵원」을 들수 있다. 여기서 화가는 歌人으로 등장하여 마치 연출처럼 이 극의 두줄거리를 연결한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혼돈의 시대가 다가와 제후가 돌아왔다〉 동의 말로 시간을 단축하고 재단한다. 이 歌人은 화자의全知全能性을 통해 미래를 내다 볼 수도, 작중 인물의 내면까지도 꿰뚫어 볼수가 있바〈정오였다. 죽음을 당할시간이었다〉/〈그가 생각했으나 말하지아니한 것을 들어 보시오〉라고 가인은 말한다. 또한 무대위의 사건에 대해 논평을 하기도 한다 : 〈권세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사랍들/종종 그들의 불행은 함께 나누지/선에 대한 유혹은 무서운 것 ! 〉하고 가인은 주인공인 그루쉐에 대해 코멘트 한다.
극의 서사적 구성은 오늘날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적 인과율의 현실체재를 투시할 수 있게한다 연극 구성이 관객에게 이와같은 기능을 할 수 있을 때 Brechat는 사실주의극이라고 규정한다. 〈현실이 무대상에서 다시금 인식되게 하는 것이 참된 사실주의 과제 중하나다. 뿐만 아니라 현실은 투시될 수있어야 한다. 삶의 프로체스를 지배하는 법칙을 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이법칙은 사진상에는 볼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자연주의적 현실 재현은 현실을 투시할 수 없게 한다는 말이다. 그와같은 사회인과율적 지배법칙을 투시할 수 있게하는 극적 구성이 서사적 구성임은 자명하다. 극중 인물의 시각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바뉴토마스만의 말을 벌어 말하면-〈먼곳의 神,거리의 神, 객관의 神, 아이러니의 神〉인 아폴로적 시각에서 보는 극의 구성인 것이다.* 융합이 아닌 분리의 연극브레히트의 서사극은 그것의 서사적형식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요인들을 (전통극에서는 구성될 수 없는)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다. 서사적, 서정적, 극적 요인들을,-고대적, 바로크적, 전통적, 실험적, 영화적 요인들을 담을수있다. 하지만 서사극의 〈통합형식 Ge-sacutkunatwek〉은 바그너의 그것과는 대치된다. 통합된각 요언은 융합하는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소외효과에 상웅하는 구성을 갖는다..
무대화, 노래, 음악은 각기 무대의 사건(주제)을 고유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무대 사건을 〈수식〉하는 종속적기능을 갖지 않는다. 카스과르 네어Caspar Neher의 무대화, Kurt Wei1l의 음악은 그때문에 너무나 유명하다. 연기에서도 이것은 다를 바 없다. 연기자는 자신의 역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연기자는 자신의 역을 인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의 대사는 물론 동작까지도 재현하는 식의 인용이 되어야 한다. 브레히트는 이것을 그와 서사극 모델로 제시한 「가로 장면」에서 분명히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기지는 자기 역에 대한 비판적 태도까지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역의 인물구현은 성격을 전제하는 심리주의 방법에 입각해서는 안된다. 이미 앞서 언급했듯 브레히트는 오늘날 인간을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로 본다. 그때문에 사회적 관계로 말미암아 나타난 태도로 인간구성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감정이입극에서처럼 전제된 타고난 성격에서 인물의 행동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행동에서 성격을 구현하는 인물 구성이다. 이것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전통극에서와는 반대로 가변의 인간, 가변의 세계를 전제하고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종래의 전통극에서는 감정의 감염을 위해 연기자는 〈목청을 돋구워 숨을 멈추면서 목의 근육을 조임으로써 피가 머리로 치솟게하여〉 분노의 감정을 자기 내면에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반면 연기자와 역의 분리에 근거한 서사적 연기법에서 감정표현은 전념이 아닌 통찰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 예컨대 놀라움을 표현할 때 놀랄 때 나타나는 가시적 징후, 즉 과리하게된 하얀 얼굴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놀라서 하dig게 되어가는 심리적 과정을 없애고 얼굴을 두손에 묻어 두 손안에 쥐었던 하얀 분으로 얼굴을 하양게 만들어 관객에게 앨굴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분노나 놀라움을 관객으로 하여금 체험하게 하는 연기보다는 고것을 보고 알게끔하는 연기가 현대를 사는 인간에게 인간 품위에 보다 상웅하는 건전한 연기다:
그렇게 연기하는 것이 보다 건전하며 사고하는 본체인 인간품위에 더어을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연기하자면 보다 광범한 인간 의식과 삶의 지혜, 사회적으로 중요한것을 날카롭게 과악하는 것이 필요하다.(S.625)
그때문에 브레히트의 서사극 연기법은 감정이입주의 법을 극대화시킨 스타니브랄스키의 연기법과 대치되어 있다. 반면 브레히트는 중국의 전통극 (경극) 공연에서 연기자가 자신의 동작을 임으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의 과시 및 숙달성이 관객에게 소외효과와 구경거리의 재미를 동시에 낳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중국의 〈경극〉에서나 일본의 〈가부까쨌 연기법은 심리주의적 표정술이 아닌 동작 및 태도의 양식화에 근거한다. 그때문에 그것은 서사극에서처럼 소외효과를 낳는다.
요약하는 결론대신 브레히트 자신이 대비시킨 연극의 드라마적 형식(전통적 환상극)과 연극의 서사적 형식을 인용하고 또 그가〈비 아리스토 탤레스劇論의 서두에 불인 전통의 환상적 예술관과 새로운 탈환상적 예술관의 대비도 아울러 인용한다 :〈연극의 드라마적 형식〉
·무대는 사건을 구현
·관객을 행위속으로 휘말려들게 하여 그의 능동성을 소모
·그에게 감정을 가능케하며 그에게 체험을 가능케한다
·관객을 사건진행속으로 말려들게함
·암시의 수단을 사용. 감정이 축적된다
·인간을 거지의 존재로
·불변의 인간. 종말에 대한 긴장
·각 장면은 다른 장면을 위해
·사건의 진행은 직선적
·도약하지 않는 자연
·현존하는 대로의 세계
·인간의 의무 (,당위성). 인간의 본능
·사고가 존재를 지배
〈연극의 서사적 형식〉
·무대는 사건을 이야기해준다
·관객을 관찰로 만들고 그의 능동성을 일깨운다
·그로부터 결단을 강요
·그에게 인식을 중개
·관잭은 사건진행과 대치. 논중의 수단을 사용
·인식에 이르기까지 몰아감
·인간은 연구의 대상
·가변적이며 변화시키는 인간. 짚행에 대한 긴장
·각장면은 자체를 위해
·사건의 진행은 굴곡. 모양적인 자연
·생성하는 세계. 인간의 필연성
·인간을 웅직이는 동인
·사회적 존재가 사고를 지배
예술의 사원지기들은 보통 예술적 분위기의 어스렴한 모호성이 유지되도록 유별나게 감시한다. 그들은 이성의 요구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 그 이상이다. 즉 그들은 이성의 요구를 산문적이고 무미 건조하며, 독단적이고 삶에 적대적이라고 말하고 이로써 바로 그으스렴한 모호성과 ‘생산적’인 무의식을 삶을 지닌 것으로써 요구한다. ‘창조쩍 프로체스’ ‘체험’ ‘예술적 표현’과 같은 모든 상투어에는 종교적 애매성이, 부활한 그리스도의 묘사같은 면이 밝은·빛에 적대적인 경향이 내포되어 있으며, 특히 비판적이고 그때문에 ‘형상력’이 없는 오성의 ‘인위적’ 조명 등에 적대적인 경향이 내포되어 었다. 그러나 상숭하고 있는 계충에겐 이성(理性)이 창조적이며 삶을 지니고 있다는 것, 아니 삶의 활력에 차 있는 것이고, 비명은 아주 근원적이고 생산채라는 것, 삶 자체랜 것임을 구태여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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