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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1 | 특집 [특집]
부석사 무량수전과 고려문화
김재식(2004-01-27 14:18:07)


 문화를 창출하려는 것은 모든 예술가들의 꿈이며 고통이다. 설계가로서 문화환경을 후손에 남겨주기 위해서는 선조가 남겨준 문화유산을 높은 안목으로 조사, 분석, 종합하여 그 명가를 해보는 노력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우리 건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도중에 건축을 떠나 조경공부를 위해 유학을 다녀온 뒤 다시 우리 건축을 보러 다닌지 5년이 되었다. 필자의 작업은 우리의 유명한 사찰, 궁궐, 서원, 향교, 민가 동을 조사 분석하며 사진에 담는 것인데 얼마 전엔 경북 영주 부석사엘 다녀왔다. 한국最古의 木造建物로 알아온 浮石寺 無量壽嚴과의 만남은 필자의 두 눈을 동시에 얼어붙게 하는 괴력을 지닌 고려의 문화 유산과의 만남이었다. 이것은 더 이상 손볼 수 없는 완결된 예술품이요 한국의 파르테논이 아닌가? 필자는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4가지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환경과의 만남, 인간과의 만남, 책과의 만남, 신과의 만남을 일컬음이다. 환경과의 만남, 이것은 엄밀히 말해 그 시대 사회상과의 만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세계문화사 속에 고려청자라는 문화유산을 남긴 고려의 사회는 건축면에서도 한국 최고수준의 건물인 무량수전을 남겨놓은 것이다. 과연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유산을 남긴 사회는 고려시대였던 것을 확인한 것이다. 무량수전의 배치미와 형태미를 살펴보면 뱀과 같은 완결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배치의 측면에서 부석사의 기람 배치방법은 경사지에 점점 상승하는 공간들을 포성하고 그 가장 상위공간에 무량수전이라는 정점이 되는 건물을 입지하도록 하여 공간의 위계성을 살리고 있다. 무량수전이 입지한 가장 상위의 공간에는 건물 좌전면에 1자반 정도 낮은 부속공간이 조성된 특수한 배치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일주문부터 시작되어 무량수전까지 점점 상승하는 경사지를 백팔계단으로 처리하였음을 보고 고려시대 한건축가의 치밀한 토지이용기술에 기와의 점들은선을 이루어지붕이라는 면을 만든다. 배훌림기둥의 곡선과 처마선, 지붕선둥은우리 건축만이 갖고있는 자연곡선의 정수를 보여준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건축가가 풍수서인 「秋의 저자이며 화엄사와 해인사의 창건자이기도 한 의상대사(義湖大師)인 것이다. 의상은 명산에 대찰을 거침없이 건립하여 우리에게 문효빠산으로 남겨준 한국 제일의 治景家였다. 필자가 의상대사를 治景家라 일컬음은 현대에서 말하는 사상가, 건축가 조경가의 3자역을 훌륭히 수행한 예술가였음을 의미한다. 경관을 조성하는 사람을 조경가라 한다면 경관을 다스리는 사람을 치경가라고 해야하기 때문이다. 의상은 청관을 단순 조성하는 단계를 넘어서 경관을 다스리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둘째, 형태미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체 건물이 주는 인상은 중용의 덕으로 이룩한 절제된 아름다움이 건물 전체에 스며 있는 것 같다. 무량수전에서는 점과 선과 면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형태의 아름다움으로 변화되어 있다. 기와의 점들은 선을 이루어 지붕이라는 면을 만든다. 배흘림 기둥의 곡선과 처마선, 지붕선 등은 우리 건축만이 갖고 있는 자연곡선의 정수를 보여준다. 한국 건축의 공포대에는 3가지 주요 양식이 있는데 이들의 특정은 각각 다포의 화려함, 주심포의 중용미, 의공의 간결미 등으로 특정 지을 수 있겠다. 무량수전의 공포대 양식은 주심포 양식이다. 주심포 양식의 포작 중에서 의공에 가까운 간결미와 지붕의 힘을 받쳐 주는 기능미를 동시에 보완시킨 걸작의 포작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물의 평면에서 측면은 3820R이고 정면은 61.9OR이다. 38.2OR×1.618=61.8OR라는 황금분할비의 계산치와 0.1R차이이다. 필자는618分의 1이라는 오차를 가진 완전히 황금분할된 무량수전의 평면의 공간구성술에 놀랄 따름인 것이다. 1989년 가을 무량수전이라는 건축문화와의 만남은 필자에게 있어서 고려사회와 고려문화 그리고 고려인의 숨결과의 만남이었다. 한국사에서 가장 정통성을 가진 고려라는 나라는 한국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어 이러한 문화유산을 남겨 주었는데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은 과연 어떤 것을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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