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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 | 특집 [저널의 눈]
예술인을 내쫓는 도시 부르는 도시
예술가와 창작공간
임주아 기자(2014-02-05 09:50:49)

예술가의 창작공간이 구도심을 바꾸고 있다. 그들의 공간이 모여 예술촌을 이룬다. 문화예술과 도심재생의 접점에는 예술가가 있다. 그들의 창작공간이 도시의 지도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드는 시대. 문화예술을 상권 살리기 도구로 볼 것인가, 주민 생활 속에 살아숨쉬게 할 것인가, 예술인들의 창발적 활동을 장려할 것인가. 이 물음은 오랫동안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걸어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다. 문화도시 전주는 어떠한가. 동문거리와 서학동의 현실을 짚어보고, 국내·외 창작공간이 도심의 문화지도를 어떻게 바꾸어가는지 살펴본다.

 

 

 

 이벤트성 정책은 문화거리를 망친다


1970~80년대, 전주 동문거리는 책방, 다방, 선술집, 화랑과 소극장 등이 빼곡이 밀집한 번화가였다. 당시 전주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은 이곳에서 꿈을 품고 낭만을 나눴다. 자연스럽게 동문거리 하면 예술가의 작업실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2000년대 중반 한옥마을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급격히 팽창했지만 한옥마을과 가까운 동문거리는 외곽에 떨어져 예술가들이 터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빈 점포에 편의점과 카페 술집 등 상업공간이 자리잡고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예술가들이 다른 동네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구도심에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대중의 발길이 잦아져 상업화 되는 거리. 이렇게 달라진 문화지도는 전주 뿐만은 아니다. 미대생들의 작업실이 있던 지역에 음악가, 지식인들이 모이며 꽃을 피운 홍익대 일대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대표적으로 겪어온 곳이다. 상권이 성장하면서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크게 올렸고 예술가들이 짐을 싸고 홍대 인근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은 물론 강 건너 문래동까지 진출한 것이다. 예술가들이 사라진 홍대 거리는 급속도로 상업구역으로 바뀌었고 취하고 노는 사람들이 즐비한 색깔 없는 소비지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창작 공간 유지의  어려움

 

전주도 비슷한 절차를 겪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전주동문예술거리추진단이 운영하는 창작지원센터 1호점이 지난해 12월 끝으로 잠정폐쇄한 것이 임대료 상승을 증명하는 상징적 사례가 됐다. 김시종 공간팀장은 “복합공간으로 이용하기에 건물이 낙후된데다 임대료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 공적자금을 계속 투입할 수 없어 가까운 전주시민놀이터 1층으로 사무국을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시가 운영하는 기관도 이러한 상황에 개인예술가들이 동문거리에 작업실을 얻고 유지하는 일은 더더욱 힘들어보인다. 동문거리의 건물 2층에서 작업실을 쓰고 있는 작가 이권중은(33) “현재 사용중인 공간은 보증금 300에 월20만원으로 저렴한 편이고 계약기간도 꽤 남았지만 이 속도라면 언제 어떻게 오를지 모르니 불안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시종 공간팀장은 “올해부터는 동문거리협의회와 협의를 통해 건물주에게 임대료 상승을 억제시키는 계획을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은 시기가 너무 늦어 실현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상향식 운영구조부터 바꿔야

 

비단 임대료 문제 때문에 예술가들이 작업터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동문거리에서 두레공간 콩을 공동운영하고 있는 이영욱 대표는 “작업 환경의 변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고, 공간이 좁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사람도 많다. 최근 동문거리에는 공예가와 서예가 등 새로 들어온 예술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동문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 공기가 한옥마을 관광객 급증 이후 급격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예술가들은 전주동문예술거리추진단의 활동이 이 거리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한다. 작가 ㄱ씨는 “급조된 축제와 이벤트성 행사들이 과연 이 거리의 정체성을 대변하는지 의문”이라며 “예술가와 주민과의 소통이 부족해 네트워크 형성이 잘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예술거리 전체를 아우르는 주민 역량이 없으니 관에서 모두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자발적 참여를 통한 소통과 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운영에서도 주민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주체가 아닌 관이 공모를 통해 민간사업자를 선정해 ‘겉으로만’ 민관 협업 구조를 띠는 한계도 보인다. 작가 박정용(37)은 “장소성과 역사성이 깊은 동문거리에 작업실을 쓰고 있어 기쁘지만 이제 굳이 동문거리에 있어야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창작소극장 대표 홍석찬 동문거리협의회장은 “예술가들도 주체적 힘이 없으니 그들의 말에 휩쓸려 가는 경향이 있다. 우리 스스로의 역할과 이 도시의 거리 계획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생각하는 기획자 역량과 인력이 필요하다. 변화를 인정하면서 진행해야하겠지만 남아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예술가들 스스로 터를 잡은 서학동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0년 음악가 이형로(49)·소설가 김저운(57) 부부가 교동에서 교대 근처로 둥지를 옮긴 뒤 음악, 미술, 사진, 자수, 공예 분야의 예술인들이 속속 들어와 예술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서학동. 그러나 예술인들이 모여들면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와 이주를 희망하지 않는 원주민의 성향이 반영돼 매물이 드물다. 최근 3년 만에 3.3㎡당 가격은 150만 원 선에서 300만~350만 원선으로 두배 넘게 뛴 실정이다. 주택이 많고 매매중심이어서 젊은 작가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뿐더러 이곳에 터를 잡고 싶은 중견작가들은 매물이 나오기만을 대기하고 있다.

 

 

창작공간이 살아나고 지역콘텐츠가  단단해지려면

 

동문예술거리와 서학동의 사례로 미루어본 예술가들의 창작공간 마련의 어려움은 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거리와 마을에서 예술가들이 떠나고 그들의 창작활동으로 성장했던 장소가 점점 동력을 잃고 문화적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지역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만한 손해가 또 있을까. 예술가들을 도심에 모아 적극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콘텐트 생산자로서 거리와 마을의 개성을 결정짓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지역문화의 활력소가 되기 위해선 전통 또는 유휴 공간의 시설 디자인을 강화해 랜드마크를 만들고, 독창적인 프로그램으로 차별화된 지역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중심에 예술가들의 활동이 있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가 적재적소에 활용될 수 있는 까닭이다.

여러 문화예술을 활용한 도심재생의 성공모델이 새로운 문화가치를 만들고 지역을 발전시키며 나아가 예술가와 주민, 시민, 관광객에게 자부심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예술가와 주민의 소통과 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이처럼 도심에 예술가를 머물게 하고 그 에너지를 발판 삼아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네트워크 협의체와 자발적 참여구조가 시급하다. 홍석찬 동문거리협의회장은 “동문거리협의회는 자생적으로 모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원들의 참여도가 낮고 프로젝트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모이곤 했다. 많은 관의 사업이 그러하듯 처음부터 자본이 먼저 들어와 판을 정리하다 보니 예술거리에 걸맞는 정체성이 없는 셈이다. 시와 맞대응할 수 있는 협의회의 역량을 키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두레공간 콩 이영욱 공동대표는 “예술거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대학로의 티켓안내소처럼 연극 미술 음악을 알리는 종합소개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처럼 상향식 구조 대신 민간을 바탕으로한 컨트롤 타워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도가 시행하는 레지던시사업을 적극 활용하고, 이것을 하나로 모아 집중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시·도에서 운영하는 ‘창작센터’가 그 사례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광주에 2곳, 북경까지 3곳을 운영, 전북과는 큰 대조를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개의 창작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고, 경기도미술관은 창작스튜디오 팀까지 두고, 본격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대전시립미술관도 150평 규모의 창작센터를 마련, 개인전시및 교육 기능을 담담하고 있다.

이를 넘어 다양한 예술가들의 창의적 공간의 역할을 한 복합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유대수 문화연구창 대표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사무국과 미술가들의 레지던시와 더불어 연습할 수 있는 창작공간이 합쳐진 복합예술센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관주도로 이루어진 몇몇 예술촌과 복합예술센터의 성과를 되돌아보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소수의 예술가들이 입주해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버리는 기획전이 문화예술 발전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예술촌이나 센터를 조성해서 예술가들을 입주시키고 창작활동을 지원하겠다’라는 단기적인 기획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분야 중 예술촌의 성격 특성을 명확히 설정하고, 기획·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해 규모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하는 이유다. 시민들의 문화예술향유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만한 참여가 능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장기적인 계획만이 창작공간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 결국 이러한 작업은 관광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 즉 그 지역을 이루는 주민공동체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끌어 올리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② 시에 가치를 더해주는 공간

 

 

과거 식품공장 터였던 곳에 상해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단지를 이룬 대표공간 티엔지팡, 철재공장의 2만여 평 부지에 다양한 아트갤러리가 들어선 홍차오의 레드타운, 1930년대 봉제공장을 개조해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모간산루 상하이 예술단지 M50, 쇠락한 방직공장이 문화예술교육의 중심지가 된 가나자와 예술촌 쇠락한 공장단지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으면서 예술단지와 예술촌으로 변모한 네 곳은 도시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더불어 예술가들이 모여든 지역이 어떤 부가가치를 가져다주는지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예술가와 창작공간에 대한 실마리도 여기에 있다.

 

 

상업과 예술의 접점,  중국 3대 예술거리

 

상하이의 쌈지길이라 불리는 티엔지팡은 전시와 판매를 목적으로 조성한 복합예술단지로, 상하이 시 정부의 계획에 따라 공장단지를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예술인들이 거주하는 생활공간이자 창작활동을 펼치는 아틀리에이자 전시와 판매 역할까지 도맡는 갤러리이기도 한 티엔지팡은 노천카페와 브런치 레스토랑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모던하고 세련된 예술단지로 이국적인 도시 풍경과 공방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티엔지팡은 상하이의 신명소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레드타운은 옛 철강공장이 있던 부지와 건물을 리모델링해 2007년에 개관한 문화예술단지. 상하이 예술단지 중 가장 작은 규모이지만 커다란 잔디공원과 조각품들이 도심과 조화를 이루며 테마공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디자인 사무소와 갤러리, 건축사무소가 줄지은 이곳은 예술가들에겐 새로운 무대이고, 관광객들에겐 예술과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모간산루 50번지는 1930년대에 지어진 공장들이 1999년에 문을 닫으면서 흉물스럽게 비어 버릴 운명을 맞이했다. 덩그라니 버려진 공장부지에 예술가들이 몰래 자신만의 아뜰리에를 꾸미던 것이 입소문을 타고 이곳에 둥지를 틀기 위해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수백 명 단위로 확대됐다. 백여 개의 스튜디오, 갤러리, 각종 예술 관련 사무소들이 들어선 지금, ‘M50 예술촌’은 상하이는 물론 전 세계 예술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다소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티엔지팡 예술거리와는 달리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현대미술의 현주소라 불리는 이곳은 빠질 수 없는 관광장소로 꼽힌다.  

 

 

문화예술교육 중심지 ‘가나자와 예술촌’

 

일본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은 ‘다이와 방직 주식회사’가 입주해 있던 공장을 시가 매입해 예술촌으로 변모시킨 공간이다. 1993년 당시 100년 이상 건재했던 방직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이 부지를 시 정부가 사들여서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는 시민 여론이 일었고, 시 정부와 시민이 머리를 맞댄 결과로 3년여의 기간을 거쳐 시민예술촌이 탄생했다. 문화예술교육 중심 창조도시로 부활하고 있기도 한 가나자와는 2009년 6월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창조도시 네트워크(크래프트&포크 아트 부문)의 일원이 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6년 조성된 시민예술촌과 2004년 문을 연 21세기 미술관, 2003년 개소한 창작의 숲 등 3대 문화예술 관련 시설이 높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그 바탕에는 일찍이 ‘보존에서 창조로’를 기치로 문화예술과 환경의 중요성에 주목한 행정기관의 정책과 시민의 합의가 있었다. 가나자와에는 시민들의 모든 문화·예술활동을 기획·총괄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해 시의 문화예술정책을 주도하는 ‘가나자와 예술창조재단’이 있다. 예술창조재단은 지역의 문화예술전문가와 의원들로 구성된 이사회와 평의원회가 별도로 구성되어 있고, 재단의 경영과 사업을 담당하는 사무국 아래로 노가쿠미술관, 문화홀과 아트홀, 공예공방, 유와쿠 창작의 숲,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등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공간에는 관장과 종합 디렉터와 종합디렉터를 서브하는 디렉터가 시설을 운영한다. 각 시설의 종합 디렉터는 재단 사무국의 통솔아래 있어 결국 가나자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술창작활동이 재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묵은 공간을 재활용해 새로운 창조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가나자와가 가장 중요시 여긴 기치는 ‘시민 행복’. 시민만이 아닌 전 세계인의 명성을 얻고 지역 활성화의 기폭제가 된 것은 역설적이다.

외국의 사례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는 국내 복합공간도 다수다. 동네 전체를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하는 미술창작센터로 탈바꿈한 인천아트플랫폼, 시에서 비어있는 원도심 빈 공간을 사들여 예술가들에게 3년간 임대료를 지원하는 부산 또따또가, 문래동의 한 철재 공장 부지에 ‘예술창작지원공간’을 신축한 서울 문래예술창작촌까지. 예술가의 창작공간이 지역의 중심으로 탈바꿈한 사례는 우리가 참고할만한 내용들이다.

 

 

미술창작센터 조성한 인천 ‘아트플랫폼’

 

지난 2009년 10월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를 문화공간인 미술창작센터로 조성해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하는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인천아트플랫폼은 1999년부터 진행된 장기프로젝트. 인천아트플랫폼은 독보적인 하드웨어를 바탕삼아 레지던스를 중심으로 미술·문학·공연 등 다양한 장르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창작에 전념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외국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국내외 창작 교류의 허브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이 작업실에서 정주해 1년 내내 전시와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40여 명의 국내외 입주 작가들이 3개월~1년 단위로 레지던스가 치러진다.

입주작가와 지역 어린이, 청소년이 함께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수반된다.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강좌형 프로그램으로 진행돼 시민 문화 향유 수준을 높이고 있다. 입주작가들로 하여금 예술 창작 활동 과정을 기록해 보관하는 아카이빙 프로그램은 지식과 자료의 집적을 꾀해 문화 허브로서 역할과 기능을 뒷받침한다.

 

빈 상가를 창작공간으로 내준 부산‘ 또따또가’

부산시는 중구 중앙동 40계단과 동광동 일대 반경 200m이내 지역의 빈 상가 20곳(2673㎡)를 리모델링해 2010년 3월 또따또가를 개소했다. 총 43개 공간으로 이루어져있는 이곳은 무대예술 트레이닝 센터, 또따또가 갤러리, 수공예 아티스트센터, 원도심 인문학센터, 독립영화갤러리, 작가 집필센터, 미술작가 작업실 등이 있다. 현재 개별예술가 48명과 예술단체 24개 소속 330여명 등 총 390여명이 이 공간에서 창작활동 중이다. 예술가들은 주로 40세 이하의 젊은 층이고 입주자들은 전기요금 등 최소한의 사용료만 부담한다. 3년 간 임대료를 지원받는 대신 시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하며, 창작활동의 성과물도 제시해야 한다. 입주 예술가들은 각 공간에서 영화비평교실, 수공예품창작교실, 사진학 교실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들을 무료로 운영하고있다. 부산 또따또가의 시도가 의미있게 평가되는 것은 예술가만을 위한 단절된 창작공간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서다. 미술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동판 작품을 만들어 수공예품 가게 입구를 장식하는가 하면, 작가들이 일대 인쇄 골목에서 인쇄 과정을 배우고 그 느낌을 예술작품으로 내놓기도 하며, 작은 도서관 살리기 등과 같은 문화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세미나·포럼 등까지 이어진다.

 

서울‘ 문래예술창작촌’


부산시가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예술가들을 불러모았다면 서울 문래예술창작촌의 경우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뒤 시가 적극적으로 도운 경우다. 서울 양천구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 위치한 문래예술창작촌은 2003년 즈음부터 철제상가 2, 3층에 있는 빈 사무실로 젊은예술가들이 모여든 것이 시작이다. 문래동 전반이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보이자 서울시는 문래동의 철재공장 부지하나를 사들여 지난 2010년 ‘문래예술공장’이라는 이름의 예술창작지원공간을 신축했다. 덕분에 문래예술공장은 지하 1층, 지상 4층에 전체면적 2804.18㎡(849.88평) 규모로, 다목적 발표장 겸 공연장(박스 시어터), 전시실(스튜디오 M30, 포켓갤러리)을 비롯해 공동 작업실, 녹음실, 영상편집실 등 다양한 장비와 공간을 갖추게 됐다. 종래 서울시 예술창작 지원이 작업장이나 발표장과 같은 하드웨어에 대한 지원과 예술가 발굴·육성을 위한 소프트웨어적 지원으로 양분돼 온 데 반해 문래예술공장은 이 둘을 융합해 예술작품의 탄생에서 성장까지 책임지는 새로운 개념의 지원 공간으로 완성됐다. 시각예술, 공연, 음악, 영상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통해 제작한 작품을 전시하도록 원스톱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문래창작촌은 관 주도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고 예술인들의 자발적 유입과 지역 주민과의 융화 노력으로 지역 여건에 맞게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이라 그 가치가 더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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