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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6 | 특집 [문윤걸의 음악이야기]
문윤걸의 음악이야기조수미의 노래가 달라지고 있다면?
문윤걸 문화평론가, 문화저널 편집위원(2003-03-26 16:00:26)

조수미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벨칸토 소프라노로 클래식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강한 호소력을 가질 만큼 뛰어난 노래를 불러준다. 이국에서 먼저 성가를 높인 그녀는 1993년 독창회를 통해 한국에 그 성가를 옮겨왔다. 그리고 그 해에 성악가에겐 최고의 영광이라는 황금기러기상, 또 그래미상까지 수상하면서 최고의 성악가로 우뚝 섰다.
조수미가 부르는 아리아들에는 찬사가 쏟아진다. 안정된 호흡에 완벽한 발성,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메사디 보체, 몸으로 노래하는 듯한 표현력 등등. 조수미에 대한 또다른 찬사는 그녀가 한국 가곡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993년에 이미 한국 가곡집 <새야 새야>를 녹음하고 또 소속 음반사인 <에라토>를 통해 내놓은 음반들에도 몇차례에 걸쳐 한국 가곡을 한 두곡씩 포함시키는 배려를 하였다.
그런데 당시 조수미가 부르는 한국 가곡은 빼어난 노래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의 노래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한국 가곡은 수려한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명료하지 못한 발음때문에 오페라 아리아에 비해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가사가 전달되지 않는 노래는 완성된 노래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성악가들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과 함께 가사 전달력을 매우 중시하고 이를 연구한다.
조수미의 한국 가곡이 가사 전달력을 갖지 못한 것은 그녀의 발성 및 발음법이 이탈리아 발음을 기초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언어는 모음을 중시하는 언어인 반면 한국어는 모음 못지않게 자음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언어를 구사하는 방식으로 한국어를 구사하면 발음이 명료할 수 없다. 이러한 차이가 음악적인 면에서는 치명적인 것이다. 실제로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을 기피하는 이유도 한국 가곡이 예술성에서 서양 성악곡에 비해 뒤진다는 의식도 있지만 한국 가곡을 제대로 부르기 위해서는 발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은 데 기인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고음 영역에서 이탈리아 발음보다 한국발음이 소리가 잘 모아지지도 않고 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언어가 가장 음악적인 언어가 된 것은 이탈리아 오페라가 유럽을 휩쓸던 경험때문이다. 사람들은 노래는 이탈리아 발음으로만 해야 하며 이탈리아 언어가 노래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언어로 믿었다. 그래서 한동안 유럽에서 모든 노래는 이탈리아 언어로만 만들어졌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이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요술피리>를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로 만들어 다른 언어로도 노래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독일어는 너무 강하고 탁해 노래하기에는 힘들고 아름답지 않은 소리라는 통념을 깨버린 것이다. 지금 독일가곡은 이탈리아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예술성을 가진 음악적인 언어가 되어 있다.
최근 조수미의 노래가 달라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TV드라마 허준에 이어 명성황후에 이르기까지 조수미는 일류(?) 성악가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조수미의 한국 가곡에서도 발음이 보다 명료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수미가 한국어로 노래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보다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바로 이런 자세가 조수미를 세계적인 성악가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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