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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특집 [전북의 땅과 문화, 사람들]
반도의 넉넉함이 빚어낸 풍요와 다양성의 이중주
6. 부안 : 부안 문화의 특징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7-03 13:51:32)

서해바다를 아득히 끼고 도는 반도(半島)의 땅 부안은 여러모로 넉넉한 고장이다.

바다에서 나는 풍성한 해산물과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윤기나는 쌀 등 먹을거리가 그 어느 고장보다 풍부했다는 사실부터가 그러하다. 부안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옛날엔 만석지기가 고을마다 있을 정도로 아쉬울게 없는 고장이었다"며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바다와 그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지, 기기묘묘한 산과 들은 부안의 넉넉함을 잉태한 모태와도 같고, 이같은 자연환경이 바로 '문화'의 풍요를 낳게한 주요한 동력으로 작동해 왔다.

고려청자를 생산해낸 청자 도요지와 '실사구시'의 실학자였던 반계 유형원, 시인 신석정과 이매창, 전통을 잇는 풍부한 문화재 등은 부안 문화의 근간을 이루면서, 이 지역 문화를 규정하는 대표적 자산이다. 이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이 갖는 공통점은 일견 자연이 베풀어준 천혜의 환경과 서정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살아서는 부안(生居扶安)'이라는 찬사를 낳게한 넉넉한 자연환경이야말로 부안 사람들의 정신적 풍요의 상징이면서, 창작의 원천으로 자리잡아 왔다고 볼 수 있다.

'풍요로운 땅, 아쉬울게 없는 땅'이었던 만큼 부안은 예로부터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부안 문화의 특징을 점치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되어준다.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모양의 부안은 고창과 김제, 정읍 등과 경계를 이루며 동진강과 서해바다를 끼고 있어 지형적으로는 '고립' 혹은 '독립'된 땅으로의 이미지가 강하다. 고립된 땅이었으나 부족할게 없었던 땅,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던 만큼 토착문화의 강화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토착문화의 강화는 타 지역과 대별되는 '문화적 자긍심'과도 맥을 같이 한다.

지금까지도 백제부흥운동의 최후 격전지로서 학계의 논란을 불러오고 있는 '주류산성(우금산성)'이나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피해 몰려든 부안 백산의 봉기 등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저항문화의 흔적으로 비쳐진다. 가깝게는 해방이후 진서면이 사회주의운동의 해방구였다는 점과 전두환 정권 당시 소 파동의 중심에 있었던 부안의 '소몰이 싸움' 등도 이같은 저항문화의 관점에서 풀이되는 몇가지 '사건'으로 이해되고 있다. 부안시민문화모임 회원인 백산고 정재철 교사는 이같은 저항문화의 흔적이 '문화의 자긍심'이라는 토대위에서 발현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안은 무엇보다 물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땅이었다. 부안 전역에 걸쳐 격포, 줄포, 석포, 세포, 회포 등 '포'를 차용한 지명이 20여개가 넘는다는 점도 그러하거니와 바다와 인접해 식수로 쓸 물이 귀했다는 점에서도 '물'의 의미는 각별하다. 때문에 옹정, 용정, 영천 등 우물과 관련된 지명 역시 10여 군데가 넘는데다가 물에 관한 각 고을의 전설도 풍부하게 전해져오는데, 이는 부안사람들이 물을 향한 일종의 경외심이나 기원 등을 갖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바닷가 마을은 당산제를 통해 물로 인한 재앙을 막고 복을 불렀다. 특히 바다를 통한 왜구의 빈번한 침략과 횡포를 막고, 뱃사람들의 무사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에서 당산제는 널리 성행했던 무속신앙이었다. 타 지역의 경우 일반적으로 마을앞 당산나무나 나무장승 등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았던 반면, 부안의 당산은 '돌'을 통해 투영됐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부안의 섬 마을 곳곳에는 아직도 돌을 쌓아 만든 당산의 흔적이 남아 있고, 전북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석장승 14기와 돌솟대 7기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부안지역만의 독특한 '돌의 문화'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섬마을의 민속문화는 위도의 '띠뱃놀이'를 제외하면, '굿' 이외에 별반 전해진 내용이 없는데,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대물림 해줄 수 없다는 섬마을 사람들의 박탈감이 문화적 계승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 아니겠냐는게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분석이다.

부안은 무엇보다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입증할만한 문화유적이 다양하게 발굴된다는 점에서 정책적 개발 가능성이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해안과 산이 있어 선사시대 유물들을 비롯해 역사적 고증작업이 한창인 우금산성,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유천 도요지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계화면에서는 지금까지 빗살무틔 토기와 석기류 20여점 등 선사시대 유물이 대량 발굴되었고, 하서면 구암리와 백련리, 행안면 진동리, 상서면 감교리 등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넓은 지역에 걸쳐 다양하게 포진돼 있어 역사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얻고 있다. 이는 부안이 해안과 산을 넉넉하게 품고 있어 일찍부터 인류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아 왔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랄 수 있다.

삼림과 흙이 풍부해 도요지로서의 충분조건 역시 일찌감치 갖춘 곳이다. 특히 보안면의 유천 도요지는 순청자와 상감청자를 굽던 곳으로, 전남 강진의 청자와 함께 우리나라 청자의 대표적 제작지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발견된 40여개의 가마터에서는 진사청자, 백자, 순청자, 상감청자 등이 출토돼 청자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와 함께 변산의 목재는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고려시대에 와서는 '나라 재목의 보고'라는 찬사를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수백척의 선박이 건조되었던 조선소 터가 변산의 구진마을에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인문지리적 요건이 낳은 풍부한 문화유적 이외에도 부안 사람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이 지방의 문인들과 학자들이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지 /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도다." 「이화우 흩날릴제」라는 이 시조는 기생이면서 시인이었던 이매창의 대표적 작품으로 그가 바로 부안 태생이다. 매창에 대한 부안 사람들의 애정은 매우 깊다. 현대적으로 매창을 기리는 문화사업 역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한 가지 이채로운 점은 관이 아닌 민초들에 의해 매창 시집이 발간되거나 매창의 무덤이 보호받아왔다는 사실이다.

부안문화원 김민성 원장은 "민초들의 요구가 높아 1668년 개암사에서 목판을 이용해 최초의 매창시집이 간행된 적이 있는데, 찾는이가 많아 개암사 스님이 아예 목판을 태워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며 "이 뿐만 아니라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매창의 무덤에 두 번씩이나 시비를 세워줄 정도로 애정이 깊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신석정 기념사업도 다양하다. 1999년 7월부터 석정의 고택 복원작업이 시작됐으며, 그의 문학혼을 기리는 시비와 기념비도 뒤이어 들어설 예정이다. 석정은 이 지역 문인들에게 문학의 열정과 꿈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도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유형원이 변산 우반동에 들어와 『반계수록』을 집필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이를 문화사업으로 연계하려는 작업도 한창이다. 부안군은 유형원의 실학사상을 군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정착시킨다는 목표 아래, 200년 1월부터 유형원 선생의 유적지 정비공사에 착수, 장기적으로는 2007년까지 관광자원화 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부안 사람들은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큰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군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담아낼 문화 제반시설은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올 초에 예술회관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부안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최근까지만 해도 새마을금고나 군청회의실, 학교강당 등에서 전시와 공연활동을 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설계에서부터 향후 운영계획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분분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회관 개관에 거는 기대 역시 떨쳐낼 수 없는게 사실이다.

민속문화나 문화재의 풍부함에 비해 이를 현대적 문화사업으로 계승하려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민속에 대한 연구가 몇몇 향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적잖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이를 한데 엮은 책자나 자료가 많지 않은데다가 문화재 관련 프로그램 역시 아이들의 학습 코스 정도로만 활용되는 수준이어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풍부한 문화유산을 정책적 지원이나 프로그램 개발 등으로 연계하는 현대적 계승 사업이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같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강, 숲과 폭포, 호수와 바위, 농경지와 갯벌 등 천혜의 자연 환경은 사람들의 발길을 돌려놓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반계수록』을 집필한 유형원이 그랬던 것처럼, 최근에는 윤구병씨를 비롯해 정경식, 이백연씨 등 유기농업과 생명농업을 표방한 젊은 일꾼들이 부안의 평지로 유입돼 오면서 지역문화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변산 마포를 중심으로 한 유기농가들의 이같은 시도는 지역민들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새로운 문화의 한 형태로 비쳐지고 있다. 부안은 예나 지금이나 뜻을 가진 사람들이 선택한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그 아늑한 품을 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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