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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특집 [전북의 땅과 문화, 사람들]
"환경? 개발? 바닷사람은 다 죽소!"
6.부안 : 양보할 수 없는 가치들에 싸인 새만금사업
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3-07-03 13:57:34)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안개가 자욱한 서해의 오후, 흙더미를 가득 실은 덤프트럭들의 행진이 줄을 잇고, 하늘에서는 떼지어 이동하는 겨울철새들의 날개짓이 더욱 선명하다.

1991년 착공된 새만금 사업은 전북 군산에서 부안을 연결하는 방조제 33km를 축조하여 4만1백ha 해수면을 2만8천3백ha의 토지와 1만1천8백ha의 담수호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현재 제1호 방조제가 준공되고 10년차 방조제를 공사중에 있다. 사업비만도 2조 2천억을 웃도는 거대사업이다.

현재 이곳은 바다를 줄여 땅을 넓히고, 갯벌을 없애 농지를 만들고, 해수를 밀어내고 담수를 저장하는 일에 대한 여러 주장이 맞서는 치열한 갈등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농림부와 해양수산부가 벌이는 정부 부처간의 갈등, 토지이용계획에 따른 중앙과 지방정부의 갈등, 개발과 보존으로 맞선 정부와 NGO간의 갈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팽팽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다름아닌 중앙과 지방정부, 정부의 각 부처에 모두 맞서는 지역주민들이다.

지역주민들에게 새만금사업은 정치적 논리와 승패,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환경권의 문제가 아닌 삶의 터전이 변화하는, 생활의 갈림길인 '생존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부안에서는 '새만금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을 확장해 부안군 농민회, 계화리 청년회, 정농회, 부안환경모임이 함께하는 '새만금 사업 중단을 위한 부안군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12월 공식 발족됐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인 만큼 외롭게 투쟁을 해온 '새만금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에 나머지 4개 단체가 힘을 모으는 데에는 신중한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부안군 농민회 김진원 사무국장은 "지난 3월부터 본격적인 조직적 접근을 했습니다. 찬반의 문제를 떠나 제대로 이 사업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했죠. 수많은 내부토론과 보고서 검토, 얼마전에는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은 제2의 시화호 탄생이라는 것이었죠. 물이 썩기 때문에 논농사도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결국 새만금 사업은 어장을 황폐화시켜 어민들의 삶만 파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갯벌뿐 아니라 바다 속에까지 영향을 미쳐 물길이 변화하고 어장 황폐화를 촉진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생계수단이었던 조개채취량의 감소는 물론이고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를 하여 더욱 먼 바다까지 나가야 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보상이 이뤄지고 있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7, 8백만원 수준인데다 여러차례 나눠 지급되는 보상금은 어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투자할만한 목돈으로 쓰이지도 못하고 있다.

"처음 부안에서는 환경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환경단체는 환경론, 정치권은 개발론, 주민과 사업자, 정부가 의견을 나누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대하는 이들 모두 전라북도의 발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역주민의 삶이 가장 큰 문제이고 부안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이 지역을 잘살게 하는 일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새만금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신형록 회장은 무엇보다도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이 가장 큰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주민들은 10년이 넘게 진행돼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10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는 사업 진행과정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두 번째 간척사업을 겪고 있는 계화도 주민들의 심정은 더하다.

"박정희 대통령때 계화도 막아서 임실 운암댐 수몰민들이 이주를 해왔지. 실지로 계화도 주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본거여. 근디 그짓을 또 한단 말여? 참조기, 꽃게 다 내손으로 잡아서 농사 안짓고도 잘 먹고 살았는디, 육지 사람들 굶어도 나는 안굶고 살았는디, 인자는 고기가 없어. 어획량 한번 비교라도 해보고 찬성들을 하는 건지…."

주민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고, 사업 용도가 자꾸 변경이 되자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부안 계화리 주민들은 얼마전 서울행을 했다. 국무총리실, 국회의사당에 찾아가고, 유종근 도지사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주민들에 대한 대책마련이 아직 서있지 않다는 막막한 말뿐이었다.

"어민들은 정말 목숨이 걸린 문제여요. 찬성, 반대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부안 인구가 늘어난다고? 먹고 살게 없는디 누가 산당가? 보상 8백건 이뤄졌다고 하는디, 억대 챙긴 놈들은 벌써 다 떠나고, 내 아는 사람은 세상에 물건보상을 16만원 받았소. 투가리 하나 값도 안돼. 우리가 서울까징 가서 안만난 사람이 없는디 대책있는 양반들이 하나도 없더만."

어업보상은 어패류를 잡거나 기를 수 있도록 허용된 권리를 화폐로 환산하는 것으로 보상평가가 확정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완료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선언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예산부족과 보상평가 등으로 제대로 보상을 받았다고 말하는 어민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어업폐선 보상, 면허권자 보상 등이 마무리된 상황이지만 바다가 흙으로 매립됨에 따라 생활터전을 잃어가는 어민들은 이에 상응하는 현실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상문제에 대해 아주 많은 불만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바닷일을 못하게 됐으니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데 쓰라는 어업보상금은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 액수도 적었지만 큰돈을 쥔 사람들은 외지로 나가 사업을 했지만 경험없는 이들에게 외지에서의 성공은 꿈에 불과했다. 다시 돌아와 보상을 받지 못할 줄 알면서도 다시 배를 새로 장만해 바다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새만금 사업지구에 포함된 어항 중에서 배가 가장 많은 곳인 계화도 주민들은 농지 무상 분양을 해준다고 치더라도 한결같이 고기만 잡던 손으로 '농사는 못짓는다'고 말한다. 보상문제가 시작될 때 동네 청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장을 건네준 손이 원망스럽다고 스스로를 한탄할 뿐이다.

"여기사는 노인네들은 어민들한테 논 한떼기라도 줄거라고 생각들 하고 있고 우리도 그랬지요. 그런데 서울에 가서 알아보니 그런 계획은 있지도 않더라고. 글고 아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본게 농사지어서 소득볼려면 20년후에나 가능하다는디 그때까지는 뭐 먹고 삽니까? 농지확보, 식량확보 얘기하는디 시골 구석구석에 지어논 러브호텔같은 농지는 냅두고 어민들 밥줄인 갯벌을 피같은 혈세 써가면서 막는 이유가 대체 뭐답니까? 나는 아직도 새만금사업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만금사업은 서해안 지도를 직선으로 바꿔 놓으면서 우리나라 국토의 3∼4%를 확장시켜 놓는다. 우리나라 최대의 간척사업이자 최대의 환경파괴사업의 현장이 될 새만금 사업. 하늘을 끊임없이 수놓는 철새들의 몸짓보다도, 농지와 식량 확보라는 명분이 있다해도 지금 현지 주민들은 애타게 목놓고 있다. 고생스러웠지만, 더 많은 고생을 하더라도 배끌고 나가 고기를 낚고, 뻘에 나가 조개, 백합 캐는 바닷일만은 제발 앗아가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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