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1.4 | 특집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정읍 3
관리자(2011-04-12 15:52:42)

지역문화 다시보기 - 정읍 3 지역 


사람들의 날숨소리를 담다 - 정재철 


전 영원면지 추진위원 개인이 책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여럿이 공동 작업으로 책을 엮어 낸다는 것은 정말 지난한 과정이다. 공동 작업으로 태어난 책에 <영원사람들의 삶과 역사>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사람들은 영원면지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책을 낸지가 2005년이니 6년이나 지난 지금 이 글을 쓰자니 기억은 또렷하지만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 삶을 담는 책이 있었으면 필자는 개인적으로 영원면(이하 영원)이 할아버지의 세거지이며 초등학교 몇 년을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영원 초등학교를 졸업한 인연이 있다. 이곳은 다른 면에는 다 있는 중학교조차 없어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타지로 유학을 떠나야 하는 열악한 시골이다. 그러나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서 평온하고 결속력이 굳고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로 꿋꿋하게 남아 있다. 


원에서는 8·15광복절을 맞으면 면민들이 모여서 체육행사를 하며 하루 종일 잔치를 벌인다. 한여름이라 오죽이나 덥겠냐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꾸역꾸역 모여들어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지역 행사에 1,000여명이 모였다면 특별한 경우 빼고 거진 다 모인 것이다. 농촌이 해체되었다지만 외지로 나간 사람들도 이날은 모여서 고향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함께한다. 노소를 불문하고 나무 밑에 앉아서 그동안 쌓였던 얘기도 나누며 해질녘까지 지내는데, 오후에는 공연과 노래자랑도 열려 옛날 기분을 한껏 낼 수 있다. 체육회 임원들에게 제안 하나를 했다. 우리도 나이를 먹는데, 언제까지 축구만 한다고 뙤약볕에 땀 흘리고 뛰어다닐 것인가.


체육회 기금도 있고 하니 기념할 수 있는 일로, 영원면지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당시 제안을 들었던 사람들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얘기했지만 체육대회가 끝나니 유야무야되었다. 그런데, 당시 고향으로 귀농했던 곽상주란 친구가 흘려듣지 않고 영원면에서 자료를 모아야겠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필진들의 참여 영원에 면장들이 부임하면 면지사업을 하겠다고 움직였지만,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기가 쉽지 않아서 계획만 세우다가 떠나곤 했다. 이안구 면장이 취임하면서 면지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추진위원들은 영원면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지역을 떠나 행정직에 있던 분들이 다수였다. 


면지를 추진하면서 몇 가지 결정이 있었는데 첫째는, 기존에 나왔던 자료를 베끼기 보다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한다. 둘째, 추진위원회에서는 책이 나오도록 집필진을 전심으로 돕되, 집필 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셋째, 재정은 시에서 주는 지원금에 머물지 말고 지역 주민들이 모아보자는 등이었다. 면지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지역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야 하고, 모금을 하러 추진위원장이 서울 등으로 출향 인사들을 찾아 다녀야 했다. 집필진도 글을 쓰려면 자료가 필요한데, 도서관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은 지역을 찾는 발품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글을 쓸 수 있는 집필진을 모으기 시작했으나 쉽지 않았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전경목 교수와 당시 펜아시아 종이박물관의 김병남 박사가 필진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면지는 학술적으로 크게 이름을 내는 것도 아니고, 원고료도 충분치 않다. 그러나 서로 연계를 가지면서 대학의 소장파 연구자들이 다수 참여케 되면서 전문성도 확보하였다. 2003년 11월에 필진이 꾸려졌다. 이런저런 말도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얘기들이 들리면서 몇 달이 미뤄지기도 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사례가 있는데, 옆의 면에서는 지원금 1,500만원에 만들었는데 영원면지는 너무 비싸게 책정되었다든가, 출판도 싸게 하는 곳이 있다는 등 여러 말들이 비온 뒤 죽순처럼 들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글이란 게 그냥 뚝딱하면 써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글 쓰는데 무슨 돈이냐며 큰돈이나 주는 것처럼 하여 어렵게 교섭한 집필진을 힘 빠지게 하기도 했다. 


면지 펴는데 생각나는 사람들 당시 모금된 6,000 여만 원을 들여 면지가 완성되었다. 면지가 나오는 과정에서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인물난에 자신의 선조가 들어가야 한다며 자료까지 찾아 보내기도 했고, 마을소개에서 출향한 사람들을 적어 넣는 과정에서 시간에 쫓기다 보니 빠진 사람들이 더러 있어 항의하는 소동하며, 좌익계열 사람을 적는 과정에서 이미 잊었던 상처를 다시 드러내느냐는 등의 항의. 인물난에 무당 출신으로 뛰어난 굿패였던 사람을 소개했는데, 사람이 없어 무당 출신을 수록했냐는 등의 뒷얘기. 


면지를 펴는데 마음을 쓴 사람들이 많다. 특히 손주표 추진위원장은 지역일이란 게 말도 많은데 그 속에서 어려움을 대신 짐 진 선배로서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영원 출신으로 일본에서 사업하던 이상균 선생은 물심양면으로 이 일을 도왔다. 그는 축사에서, ‘팔순이 지난 지금도 마음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 품에 안기는 꿈을 꾸곤한다’고 고백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 전경목 교수는 집필진을 이끌며 작고 궁벽한 시골의 열망을 맡아 수고를 다했다. 면지는 영원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끙자 한번 없이 오래도록 일을 해냈던 직원분들의 수고는 몇 번을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역 사람들을 묶는데 역할하며 궂은일 마다하지 않은 곽상주 형, 책을 펴내는데 교정과 편집을 꼼꼼하게 챙겼던 김병남 선생, 3년여에 걸쳐 사진을 찍었던 허철희 선생과 책 다자이너 문현정 님. 면지를 준비하던 소성면 사람들이 시에서 지원하는 돈으로 만들려다가 영원면지를 보고 자신들도 모금으로 면지를 만들어서 편집상까지 탔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 기쁜 일이었다. 영원면지가 나오면서 다른 곳에도 이런 면지들이 많이 만들어 지리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좋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사람들을 조직하고 모금하기도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출판기념회를 열다 2003년 11월 집필진을 꾸려 시작한 영원면지편찬 사업이 긴 여정을 마무리 짓고 지역 분들이 모여 2005년 11월 26일에 영원초등학교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출판기념회에 참석치 못한 분이 있었다. 김형배 선배다. 그 분은 면지를 내는데, 집필진에게 자료의 제공뿐만 아니라 마음을 써서 좋은 면지가 나오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갑자기 병환으로 참석치 못했고 그 뒤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렇게 노력한 분의 정성들이 모여 면지가 완성되었다. 면지에는 영원 사람들의 삶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 면지가 지역민의 삶의 모습을 소중하게 기록하여 영원을 연고로 하는 사람들에게 고향을 소중히 여기고 후손들에게도 역사책을 가진 면민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하리란 기대를 했다. 또한 연구자들에게는 소박한 자료로서 다가갈 것을 기대했다. 면의 역사가 오롯이 선다면 중앙중심의 우리 역사에서 빠진 지역사가 채곡채곡 채워질 것이다. 지역사를 지역민들 스스로 기록하고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과정을 통해 지역자치의 좋은 사례도 될 것이다. 면지는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다. 오히려 현재를 자세히 기록함으로써 미래에 필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동안 쉴 틈 없었던 집필진의 공동조사와 발걸음, 면지를 귀하게 여기는 면민들의 자부심, 자신과 관계있는 부분을 찾으러 책장을 분주하게 넘기는 손놀림을 기대한다. 책 앞에 이런 얘기를 썼다. 우리들을 키운 것은 영원면의 땅과 바람과 문화입니다. 책을 열 때마다 고향의 따뜻함이 봄날처럼 다가오기를 바라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