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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 | 특집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정읍 4
관리자(2011-04-12 15:53:09)

지역문화 다시보기 - 정읍 4 


정읍사 오솔길, 그 길위에 이야기를 싣는다 - 최영진 (사)둘레 이사 


아직은 찬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의 숨결에도 봄은 숨어있다. 저 마른 땅과 가지에서 멀지 않은 날에 갑자기 튀어 오른 듯 새순이 돋을 것이고 꽃잎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읍사 공원에서 출발한 아침산행. 높지 않은 산을 배경으로 난 그 길은 가까이에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함을 주는 길이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아 축축하면서도 부드러운 흙이 발에 닿는 느낌이 좋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지난해에 초개처럼 목숨을 낙하했던 낙엽의 무리들도 땅속에서 올라오는 봄기운을 느꼈을까! 


우리는 오늘 정읍의 둘레길을 미리 걷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친환경 공간조성 공모사업을 통해 걷기 위한 길을 개척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걷고 어린 우리들이 걸었던 길을 찾고 싶었다. 솔향 오솔길... 반듯하게 뻗은 길 말고 구불구불 숨어진 길을 돌려받고 싶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은가보다. 편의를 위해서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된 길을 걷고 있지만 우리는 흙냄새 나는 땅을 밟고 숨쉬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길을 찾고 길을 만드는 일들이 운동처럼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길은 원래 거기 있었는데 우리가 없애고 다시 길을 찾고 있으니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걸음이들을 위한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야 됨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역사·문화적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정읍의 둘레길은 사단법인 둘레와 정읍시 환경관리과에서 만들고 있다. 


사단법인 둘레는 3년 전 지역의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을 찾아 거기에 깃든 문화와 역사를 찾기 위해 연구소를 만들고 생태체험과 함께하는 둘레길 걷기, 지역 역사문화유적 탐방 등으로 시민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우리지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앞장서 왔다. 정읍지역은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있지만 관심과 인식의 부족으로 연구하고 홍보하는 일에 소홀했기에, 관계자 일부에게만 알려진 역사문화이야기들이 이제야 스토리텔링으로 태어나고 탐방을 통해 지역문화의 우수성을 찾아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이안의 역사, 백제가요 정읍사, 동학농민혁명, 서예 거장 창암 이삼만선생, 태산선비문화권, 고사부리문화권등 정읍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 문화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사단법인 둘레는 이러한 역사문화의 자취들을 길에서 찾는다. 그래서 우리가 걷는 작은 길이 오솔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오늘 걷는 이 길은 백제 가요 정읍사의 이야기가 만들어 준 길이다.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은 총길이 17.1km이며 3개 코스로 이루어진 순환형(원점회귀형)이다. 한 여인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애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정읍사의 전설 같은 이야기와 거문고 타는 옥녀의 전설이 숨어있는 칠보산 자락을 거쳐 우리나라 제일의 단풍을 자랑하는 내장산에 접한 1코스는 6.4㎞의 길로 천주교 성지인 신성공소와 100년 된 소나무숲 숲길과 미로 같은 시누대 길로 이어진다. 내장호수 수변데크를 걸어 전봉준 공원 조각공원과 함께 문화광장으로 연결되는 2코스는 4.5㎞의 관광체험을 할 수 있는 코스로, 생태하천으로 개발 중인 정읍천 도보길과 자전거도로를 이용 아름다운 벚꽃길로 이어지는 3코스는 6.2㎞의 천변을 거쳐 전통시장 예술회관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산책과 자전거의 혼합된 코스로 저탄소녹색성장의 기본 취지에 적합한 길이기도 하다. 


읍사 오솔길은 주변의 역사. 문화. 자연을 연계한 소나무 향기가 그윽한 정취에 시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다시 찾고 싶은 테마형 웰빙 숲으로 조성되는 둘레길이다. 또한 생태학습지와 토산품판매장등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운영으로 일자리 창출, 마을 단위 소득사업과 연계해 주민의 삶의 질 향상도 도모할 계획이다. 길은 출발지인 정읍사공원으로부터 해발 200m 이내의 완만한 고도의 능선길로 체력적인 부담이 적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편안한 산행과 걷기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만한 아름다운 길이다. 무엇보다도 시내권에 가까이 있어 접근성이 우수하며, 100년 이상 된 소나무 숲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제공하고 삼림욕장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으며 울창한 숲은 도심의 소음을 피할 수 있게 한다. 거기에 행상 나간 남편을 그리다 망부석이 된 여인의 이야기와 전해오는 유일한 백제가요인 정읍사를 배우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정읍사는 백제의 민요로 구전되어오다가 속악의 가사로 편입되었고 고려시대에 와서는 궁중악인 무고정재(舞鼓呈才)의 가사로 창(唱)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을 걸으면서 산자락과 마을에 얽힌 그리고 그 길을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길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걷다보니 웨스턴 하우스 말목장이다. 등줄기로 살짝 흘러내리던 땀이 시원한 바람에 식어 슬그머니 한기를 느낀다. 걸으며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이 현감으로 왔었는데 왜 우리 정읍의 역사 어디에도 그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우암 송시열은 어디쯤에서 사약을 받았을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길 위에 펼쳐줘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솔향기를 맡으며 한참을 걸으니 너른 평지가 나온다. 유종근 전 전라북도 지사의 탯자리라고 한다. 마을이 있었던 곳이지만 예전 산에 있던 마을들을 모두 강제 이주시켜 지금은 잡초와 버들강아지 세상이 되었다. 이곳을 습지로 조성해 학생들의 체험장으로 꾸며 놓았으면 싶다. 자생화 단지도 만들고 자가 발전기를 만들고 수차를 돌려 물을 순환시켜서 수생식물도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버려진 땅은 쓸모없음이 서글프다. 거기에 숨결을 넣으면 예전에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릴 것이다. 자연과 함께 자연스러운 삶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은데 세상은 우리를 결코 자연스럽게 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길을 억지로 반듯하게 만들고 처음엔 낯설던 것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익숙해져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길을 찾고 싶어 한다. 내가 정작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만큼 내가 밟고 서야할 길에 대한 기대치도 생겼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길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길이 넘쳐난다. 이러다간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이 길을 걸었다. 내가 걷고 내 친구가 걷고 내 아이가 걸으면서 행복할 수 있는 길. 각박한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내가 먼저 이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에 숨은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마을을 만나고 사람을 만난다. 전봉준 공원의 탑 앞에서 그날의 농민들의 함성을 듣고 내장산의 커다란 품에 안겨보기도 하고 내장호의 봄물결속에 새봄의 희망을 실어보면서 호연지기를 키우기도 하겠다. 


둘레길을 만들어가는 사단법인 둘레는 생태와 문화 역사 도시를 만드는 일로 지역 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 말은 쉬우나 살기 좋은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살아갈수록 느끼게 된다. 둘레가 그 어려운 일의 길이 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흐뭇한 일이겠는가! 민관 거버넌스 모델로 자리 잡게 될 정읍의 둘레길 만들기는 이제 시작이다. 단지 걷기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몸으로 체험하는 길, 오감으로 느껴가며 가는 길을 찾는다. 둘레가 만들어가는 아름답게 살만한 길을 그리며 월영마을에서 들려오는 풍류소리와 함께 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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