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2.1 | 특집 [기획]
저 높은 고원에 새바람이 분다
지역문화 다시보기 - 진안 1
황재근 기자(2012-01-05 13:49:59)

전주에서 소양을 거쳐 진안으로 향하는 26 국도. 새로 뚫린 길의 완만한 경사에 방심하다보면 어느새 엑셀을 밟아도 속도가 올라가지 않는 구간에 다다르고, 곧이어 귀가 먹먹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연신 침을 삼키며 길을 마저 재촉하면, 아무리 많은 속에 숨어있어도 자태의 남다름을 숨길 없는 마이산이 이정표보다 반갑게 진안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곳곳에 그림과 같은 절경을 갖춘 아름다운의 자연환경이지만, 인간에게 친절한 환경은 아니다. 최규영 진안문화원장은진안은 역사적으로 농토가 원체 적고 물산이 빈약해 조정에서도 별달리 챙기지 않았던 소외된 은둔의고장이라고 말한다.“전쟁이나 난리가 나야 인구가 는다고 정도였으니까. 일반의 교류도 별로 없고 은둔하려는 사람들이 찾던 땅이었죠. 그러다보니 지주·선비 계급도 별로 나타나지 못했고 문화적 환경도 척박했다고 봐야죠.”내세울만한 인물, 자랑할 만한 역사가 지역에 비해 적다고는 하지만, 삶이 있는 곳에는 자연히 문화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은 단단한 마을공동체와 자생적 민속신앙을 발전시켰다. 중평마을에서 전해 내려온 진안 중평굿은 상징 격이다. 좌도굿에 속하는 중평굿은 가장 정석에 가까운 좌도굿으로 꼽힌다. 궁중무용인 몽금척무는 진안이 되살려낸 문화유산이다. 금척(금으로 ) 받으며 나라를 바로잡으라는 신인(神人) 명을 받았다는 태조 이성계의 꿈을 바탕으로 정도전이 만든 춤이다. 금척을 받은 곳이 마이산이라는 기록에 착안해 진안에서 이를 전수받아 재현하게 것이다. 현재는 금척무용단이 발족돼 진안문화의 부분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도요문화도 진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이다. 진안 각지에서 백자와 분청사기, 옹기의 도요지 유적이 발굴됐다. 정송마을의 옹기는 오늘날에도 맥을 있고 있다. 2백여 전부터 마을 주민 대부분이 옹기일로 생계를 꾸렸던 정송마을은 옹기와가마의 재료가 되는 질흙과 땔감이 풍부해 높은 품질로 이름이 높았다. 20여년 부터는 옹기장이 이현배 씨가 손내옹기라는 이름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용담댐의 위기, 문화예술조직의 계기


1990년부터 착공해 2001 완공된 용담댐 건설은 조용한 산의 고장을 뒤흔든 일대사건이었다. 총저수량 8 1500t 달하는 용담댐은 현재 전주, 익산, 군산, 김제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댐의 수몰 면적은 950 평에 달한다는 . 6 읍면, 70여개 마을, 전체 인구의 40% 해당하는 12천여명의 주민이 물에 잠기는 고향을 떠나 이주해야 했다. 진안 문화와 공동체 전체의 위기였다. 진안 향토문화예술연구회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진안문화예술인들의 노력 하나다. 1995년부터 진안과 진안출신 화가들을 모아 향토작가초대전을 열었던 향토문화예술연구회는 수몰지역을 비롯한 진안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 보존하기 위해 2000년부터는「진안고을」을 매년 발간하고 있다. 이용엽 향토문화예술연구회장은용담댐 수몰을 계기로 미술과 문학을 비롯해 진안의 지역문화를 아우르는 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돼 향토문화예술연구회를 만들게 됐다 설명한다. “물에잠긴 용담면은 오랫동안 진안과는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간직했던 곳입니다. 건설이 어쩔 없는 일이긴 하지만 진안으로서는 손실이죠. 연구회는 일을 계기로 고향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향토문화예술연구회는 진안예총 건설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현재 진안에는 미술협회, 문인협회, 국악협회, 음악협회의 4개예술인단체가 조직돼있다. 중에서도 미술인들의 활동이 특히 활발하다. 김학곤 진안미협회장은진안미협은 한마디로 작지만 단단한 조직이라고 말한다.“95년부터 향토작가 초대전을 하면서 진안과 출향미술인들을 모아왔습니다. 사실 한때는 진안에도 물감을 파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악했지만 작가들의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에 한데 묶일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진안의 다른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용담댐 수몰지역의 기록을 남기는 데도 앞장 왔다. 90년대 초반부터 사진촬영과 스케치를 시작해 20여년만인 올해 40여점의 작품을 모두 마무리했다.“ 고향도 수몰지역입니다. 고향이 사라지는데 화가가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밖에 없더라고요.”용담댐이란 커다란 위기가 진안의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다른 계기가 셈이다.



오래된 터에 씨앗이 뿌려지다


용담댐에 이어 진안문화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것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마을만들기 사업과 귀농귀촌 바람이다. 진안군은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으로 마을만들기를 선택했다. 지난 2000 경제학 박사 유정규 씨를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해 밑그림을 그렸고, 2004년부터는 농학을 전공한 구자인 박사가 뒤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는 전담기구가 설립돼 민관협력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진안군 마을만들기의 핵심은 마을의 고유한 문화와 자연, 풍습을 최대한 보존하고 복원한다는 점이다.백운면 마을조사단장을 맡았던 이현배 씨는가족 밖의 최소 사회구성단위는 마을이다. 마을의 문화는 중앙논리와 무관하게 아주 오래전부터 완성돼있는 상태라며마을의 삶의 방식이 문화임을 구성원들이 자각하고 그것을 매개로 공동체를 복원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했다.마을기만들기 사업과 함께 활발해진 귀농귀촌인들도 이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진안의 귀농귀촌인구는 636가구 1283명에 달한다. 진안의 귀농귀촌인 단체인 뿌리협회 최태영 회장은문화가 미술, 음악 예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귀농인들이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마을공동체 고유의 농경문화를 되살리는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 말했다. 회장에 따르면 이러한 문화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귀농귀촌인은 50여명. 노인대학 운영, 진안고원길 조성 관리 다양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최규영 문화원장은 이런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자식형제들이 나가는판에 외지에서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문화적으로도 외지의 경험을 통해 진안 문화에 자극을 있다고 봅니다. 어떤 문화든지 변화 없이 방치되면 죽게 돼있어요.”그러나 이에 따르는 갈등도 없지 않다. 낯선 사람과 방식이 지역 주민들과 괴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태영회장은아무래도 오랫동안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귀농한 사람들이 농경문화를 복원한다 나서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는 당연하다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주민들의 정서를 존중하고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했다. 새로운 주민, 특히 학생들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 진안문화의 김춘희 원장은지역의 귀농귀촌가정, 다문화 가정 어린 학생들에게 진안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다. 어린 학생들이 타지로 나가더라도 진안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밝혔다. 은둔자의 고장이었던 진안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에 무엇을 실려 보낼지는 아직 남아있는 과제다. 그러나 잠잠하던 산골에 부는 바람 자체가 반갑기도 하다. 최규영 문화원장은 이렇게 말했다.“문화라는게 과거에만 연연할 아니에요. 문화는 현재도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거죠. 진안 문화도 점점 앞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