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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 | 특집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무주 1
관리자(2012-03-07 16:04:14)

삼도의 접경, 온 문화를 품다


유희중 객원기자


사실 무주에서‘문화’라는 단어는 조금 생소하다. 그만큼 고립되었던 지역이요, 먹고 살기가 힘겨웠던 지역이었다. 오죽하면‘태어나서 쌀 서 말도 못 먹고 시집간다’는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그렇게 척박했던 땅에도 꽃은 피고 있었다. 무주에 흩어져 있던 지역 문화에 대한 욕구가 비로소 분출된 것은 88년 무주 군민회관이 만들어지면서 부터다. 무주 유일의문화공간이었던 이곳에서는 개관 직후 각종 사진전과 수석전, 분재전, 시화전 등이 연이어 열리며 지역 문화에 일대 활기를 불어넣었다. 또 2001년에 개관한 예체문화관은 무주지역의 문화와 체육, 예술 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공간으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예체문화관은 특히 생산자 위주의문화 풍토를 지역민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이끌었다는데 큰 의미를갖고 있다. 이러한 문화공간은 지역의 문화예술의 부흥을 이끌었다. 89년에 무주 주계음우회가 창립되었고, 97년에는 무주 사진협회가 창설되었다. 98년에는 군 단위 최초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무주지부가 결성되었고, 곧바로 2000년에는 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가 발족했다. 뒤이어 2005년에는 무주 공예인 협회, 2009년에는 무주군 관광협의회가 그 출발을 알렸다. 문화와 예술을 향한 무주의 열정은 올해도 지속된다. 무주읍 당산리 일원에 조성 중인 전통공예테마파크가 올해 4월 개관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며 테마파크 안에는 최북미술관과 눌인문학관이 함께 문을 열어 무주 문화의 지평을 넓힐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 뿌린 첫 씨앗


무주는 특히 문학 분야에 있어 독보적인 성과와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미 87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문학동인이 결성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2000년 12월에 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가 발족했다. 무주지역 최초의 문학단체로 그 이전까지는 뚜렷한 문화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던 무주 문화계에 첫 씨앗이뿌려진 것이다. 무주의 문학에 물을 주고 꽃을 피운 사람들은이들 뿐만이 아니다. 93년에 발족한 무주문학회 작가들을 바탕으로 98년 10월 16일 민족문학작가회의 무주지부가 결성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군 단위 지부였으며 현재도 전라북도에서 문인협회와 작가회의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지역은 무주가유일하다. 한 번 분출된 무주 문학인들의 열정은 마치 폭발에가까웠다. 작가회의는 창립 이후 한 달 만에 문학강연을 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박범신, 도종환, 신경림, 안도현, 고은 등유명 문학인들을 무주로 불러들였다. 박범신의 제자 이봉명 시인은“사람들 반응이 대단했어요. 작가회의 창립 후 곧바로 박범신 선생을 초대해 문학강연을 열었는데 군민회관 강당이 발디딜 틈 없을 만큼 사람들로 꽉 찼어요. 게다가 무주 서점에서는 박범신 소설이 200권씩 팔려나갔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사실 무주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박범신이다. 박범신은 1967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무주군 적상면에 위치한 괴목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도시에서 온 그에게 무주는 마치 감옥과 다름없었다. 비포장 길에 버스도 없고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그 곳.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그 때부터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긴 편지는 그 길이가 7m를 넘었다 하니 무주의 밤이 얼마나 길었는지짐작케 한다. 그리고 바로 무주에서 썼던 소설‘여름의 잔해’로 그는 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돌이켜보면 무주와 박범신은 필연이었다. 고립된 환경은 그를 자연스럽게 문학인의 길로 인도했으며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영감을 제공했다. 박범신의 등장은 무주 문학의 태동과 발전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는 아직도 도시생활이 지칠 때,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얻고 싶을 때 망설임 없이 무주를 찾는다. 무주 길을 따라 걸으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소탈하게 어죽을 끓여먹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무주 사람에 가깝다. 지금도 그는 기꺼이 무주를 자신의‘문학의 자궁’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폐교를 일군 도예원에서 등나무 공설운동장까지


적상에서 안성 쪽으로 방향을 틀면 무주도예원을 만날 수 있다. 무주읍에서 안성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수월하다.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달려도 좋고 잘 정돈된 4차선 무주로를 따라가도 20분 남짓이면 도달한다. 하지만 안성까지 가는 길 창밖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산꼭대기에는 유럽의 어느 만년설처럼 미처 녹지 않은 하얀 눈이 장관을 이루고, 병풍처럼 늘어선산등성 너머에도 또다시 산이 보인다. 안성면 공정리에 위치한 무주도예원은 원래 학교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북적임으로 한 시대를살았을 공정초등학교는 어느덧 고요하고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무주 도예원으로변신했다. 2001년 무주군의부지 매입을 시작으로 2002년 개원한 무주도예원은 지역민을 위한 도예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안성뿐 아니라 부남, 적상 등지의 학생들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각종 전시, 강연,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가면 12년 동안 이어온 마당불 축제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일 년을 흙속에 파묻혀 사는 도공들을 위한 소박한 축제다. 도예원 마당에 피우는 모닥불은 자그마치 5톤 트럭 10대 분량의 장작을 사용해 그 규모가 엄청나며 마을 주민들은 이 불에 하나 둘 가져온 음식을 구워 먹기도 하고 소박한 이동 밥차를 이용하기도 한다. 도예원이 주민들과 아낌없이 소통을 이루는 소중한 행사다.관심을 돌려 무주의 건축 문화를 살펴보면 지난해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의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다. 무주는군단위로는 드물게 96년부터 10여년간 건축가와 함께 면사무소부터 납골당까지 무려 30여개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덕분에 무주에 방문하면 독특하면서도 정갈하고, 세련되면서도 조화로운 각종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특히 관중석을 등나무 그늘로 만든 공설운동장은 무주 건축물의 백미다. 생각해보면 공설운동장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건축물일 경우가 많다. 그런 건축물이단순히 지역의 체육시설로만 이용된다면 그 덩치 값이 꽤 민망하다. 등나무 하나로 무주 공설운동장은 사시사철 사람들과 소통하는 만남의 장으로 거듭났다. 무주 공설운동장 관중석은 그래서 여름에도 시원하다. 더불어 봄에 피는 보랏빛 등꽃이 만들어주는 터널은 주민들이 누리는 덤이다.


제 삶의 방식대로 드러낸 무주의 속살


무주는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등 5개 도와 6개의 시·군이 계를 이루는 독특한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탓에 무주는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와 삶의 방식들이 혼재해 왔다. 이런 면에서 무주는 내부 구성원 간의 뚜렷한 공통점이나 일관된 토박이 문화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험준한 산과 깊은 물은 자연스레 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가로막았을 것이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이르러서도 무주를 하나로 묶을 어떠한 관념을 찾아내는 일은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사례로 들만한 것이 바로 나제통문이다. 무주구천동 33경 중 제 1경인 나제통문은 예부터 신라와 백제를 통하는 말하자면 국경이라 했다. 그러나 최근 일제가 신작로를 놓으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며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굴 안이나 밖이나 똑같은 무주군임에도 이문을 사이에 둔 사람들은 그간 서로 통혼도 하지 않았으며 말투나 풍속 등도 판이하게 다르다 한다. 굴하나 너머 살이가 이렇게 다르니 어찌 무주를 하나의 통념으로 정의하겠는가. 이러한 이유에서 나제통문은 역사적 의미를 넘어 무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구분 짓는 중요한 통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고립되어 제 삶을 살고 있었던 무주를 바깥 세상에알리게 된 것이 바로 축제다. 무주의 대표 축제인 반딧불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무주바닥을 꽉채운다. 올해로 열여섯 번째 행사를 맞이하는 이 축제는 초여름 무주의 청정자연을 그대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축제의 정체성 구축과 관광객몰이에 성공하며 201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선정 우수축제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가장 가보고 싶은 축제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올해 처음 개최된 남대천 얼음축제는 무주 관광의 새로운 기대주다. 얼음썰매타기, 송어얼음낚시 등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꾸며져 전라북도의 대표 겨울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한국의 스위스를 자처하고 있지만 무주리조트 외에 딱히 내세울게 없었던 무주의 겨울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무주 사람들이 만들어갈 소통의 연결고리


무주는 첩첩이 산중이라 고립되었던 땅이었지만 현대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의 접경답게 각종 문화들이 활발하게 교류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는 셈이며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무주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는 셈이다.그러한 면에서 무주는 더 이상울고 왔다가 울고 가는 땅이 아니다. 금산이나 거창의 문학인들은 이미 무주와 교감한지 오래이며 매년 가을이면 무주군과영동군, 김천시 문화원 주관으로‘삼도봉 만남의 날’행사를 갖고 있다. 또한 리조트와 구천동을 찾아 오간 수많은 사람들은무주 땅을 밟아보고 부지불식간 무주를 느끼고 품어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무주의 가치는 긴 세월 속에 분명 그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낼 것이다.이러한 무주의 모습을 하나 둘 알아본 것일까. 안성면 일대에는 늘 귀농·귀촌인들로 붐빈다. 사실 안성은 좌절과 희망을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동네다. 무주리조트가 처음 생길 무렵리조트 정문을 안성면 쪽으로 하자던 요구를 그토록 강하게 반대했던 주민들은 최근 기업도시 무산 후폭풍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 귀농인들이 안성면에 다시 모여들고 있다. 이유는 다름없다. 단지 가장 개발이 덜 된 자연과 가깝기 때문이다.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과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의 대립은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다. 오히려 그 갈등이 또 다른 형태의 선물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예부터 터를 잡고 삶을 일궈온 사람들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는 없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 무주는 차츰 세대 간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빈 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앞으로 10년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 공백을 외지에서 들어와 하나 둘 메워가고 있지만 농촌도 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들이 자꾸만 무주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여느 농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난히 관광이 발달한 무주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럼에도 무주는 새로 터를 잡는 자와 살아왔던 자들이 끊임없이 교감하고 조화를 이뤄오고 있다. 가진 것 없고 부족하기만 한 땅이었지만 결국 사람이 남은 것이다. 더불어 타 시군에 비해 무주는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기도 하다. 내년 상반기에 완공될 태권도 공원이 그렇고 날로 번창하고 있는 관광산업이 그렇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보다는 삶의 질을 이야기할 때인 것이다. 굽이굽이 휘감아왔던 그네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은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으며 무주의 미래를 투명하게 비추고 있다. 무주의 문화는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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