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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 | 특집 [답사기]
미륵사지의 젖은 땅을 밟으며
마당의 <길위의 인문학> 답사기
문영민(2013-02-05 10:35:37)

마당이 기획한 ‘길 위의 인문학’의 네번째 기행 <백제,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라는 1박 2일 여정을 제법 추웠던 1월 말에 마쳤다. 먼저 주어진 상황을 돌아보자. 서로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낯선 사람들도 뒤섞인 열명이 서울 용산역에 집결하여 대충 인사만 나누고,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전북 익산행 열차에 함께 탔다.

익산역에 내리자 준비된 관광버스에서는 여정을 기획하고 안내해주실 분들이 우리를 환대했다. 버스가 움직이자 역사학자이며 우석대학교 박물관장인 조법종 교수가 A4지에 복사한 대동여지도의 전북지역을 나누어주고 곧장 대동여지도를 읽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 말로만 듣던 대동여지도. 아니, 사실은 미술, 건축, 디자인 등을 전공하는 대학 신입생들을 위한 나의 기초과정 수업에서 빼놓지 않고 하는 ‘매핑’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 동서양의 수많은 지도 중 간략하게나마 꼭 보여주는 것이 대동여지도였다. 메르카토르에 대응하는 조선의 대동여지도가 있다는 것을 미국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백컨대, 16세의 나이에 북미로 이민을 떠나기 전까지 중학교에서 배운 한문을 몇자 읽을 줄 알기에 대동여지도에 실린 지명을 일부 읽을 수 있을 뿐이지, 그 지도를 어떻게 읽는 줄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복사본이나마 대동여지도를 손에 쥐고 익산과 전주의 여정을 시작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참여자들은 대동여지도를 간단하게나마 읽는 방법을 배웠다. 지도가 제작되었던 그 당시 성곽의 유무, 강물 어디까지 배가 들어올 수 있는지의 표기, 십리마다 표시된 장소 간의 거리, 산세의 흐름 등을 금방 읽어낼 수 있게 명료하게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배우며 나는 내심 감탄했다. 비록 첫 여정에서 대동여지도라는 옛 지도와 21세기의 현실과의 간극을 초월할리 만무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대동여지도는 익산과 전북이라는 낯선 땅과 친숙해지기 위한 하나의 열쇠이자 오리엔티어링의 시작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동행한 모든 이들은 운수대통했다. 왜냐하면, 천년고도라는 익산과 전주가 지닌 장구한 역사를 무지한 일반인이 읽어내기엔 솔직히 겉보기에는 전혀 스펙터클한 것과는 거리가 먼, 흔적을 열심히 더듬어야 하는 여정이었으며, 그러므로 자칫 너무나 쉽게 지루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답사’일 수 있는 일정을 매우 흥미롭게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큰 이유는 익산의 쌍릉,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그리고 전주의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의 안내를 도맡은 이가 조법종 교수와 전북대의 영문학과 이종민 교수로, 그들은 특유의 구수한 입담과 유머감감으로 해박한 지식과 유적지와 유물을 둘러싼 여러가지의 전문적 해석들로 참여자들을 몰입시켰으며,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적절히 섞어가며 흥미를 북돋았다. 게다가 익산과 백제 등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서 천하에 무지한 나와 같은 이방인도 너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여정에 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기 때문이다.

1박 2일의 여정이여서 어찌보면 수박 겉핥기와 같은 답사가 되기 십상일 터이다. 아마도 안내를 맡아주신 두 교수님들에게는 제한된 시간 내에 참여자들이 과하지 않다 싶을 정도만의 정보를 제공했으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수혜자 입장에서 나에게 이번 답사가 그저 땅속으로부터 올라오는 물에 젖은 미륵사지의 질척한 땅과 널브러진 돌덩어리들, 그리고 수없이 봐왔던 박물관의 유리관 안에 갇혀있는 박제된 유물들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로서 서서히 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박물관 안의 유물들보다는 왕도의 터를 밟으며 그 스케일을 체감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웠다고 느꼈다. 비록 많은 유적들이 소실되었지만 그것의 부재는, 전문가의 소개와 더불어 접했을 때, 오히려 적극적인 상상력과 추리력을 발동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한두가지 아쉬웠던 점은 유적들이 많이 손실되거나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과 일제 36년간의 역사지우기 행태와 도굴들의 행적 등에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드문 지경이었다. 익산 석불사의 왜병이 쳐낸 석불의 머리를 대체하여 생긴 몸체와의 부조화, 기계톱으로 자른 돌로 대체된 왕궁리의 성곽 등, 비운의 역사와 문화재 보존의 허술함이 겹친 형국이다. 왕궁리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형상을 하고 있는 박물관도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미륵사지의 석탑을 보고 싶었다. 솔직히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소싯적 친구들 따라 멋모르고 우표수집을 하던 중 입수한 미륵사 석탑의 이미지가 담긴 우표를 기억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륵사 석탑이 해체되어 그 모습을 직접 접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왕궁리의 5층 석탑의 기묘함으로 미루어보아, 미륵사 석탑은 파손되고 세멘트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일지라도 굉장한 웅장함으로 다가왔으리라 추측해 볼 뿐이었다.

익산 여정을 마치고 전주의 오목대를 둘러본 후 참가자들만을 위한 공연단 마실 단원 배유경의 멋드러진 가야금 공연을 접할 수 있었다. 연주자는 축약한 분량의 산조와 대중가요를 선보였다. 곧 이어 전북의 문화역사자원을 어떻게 활용할까라는 주제로 유익한 간담회를 가졌다. 참여자들은 전주 익산의 풍부한 문화를 토대로 한 기획안들을 제시했고, 궁극적으로 토론은 음악을 비유로 한 전통문화의 보존, 계승, 현대적 접근을 통한 다양성의 탐구 등에 다다랐다.

이에 대해서는 나는 개인적으로 양가적인 입장이다. 한국의 젊은이와 대중은 가야금으로 듣는 이문세의 음악도 좋겠지만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문화로서는 산조가 더 깊이 있게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 한편, 문화란 애초에 순수하게 독창적인 것은 없으며 상호교류하는 과정에서 진화하는 법이니, 기타와 흡사한 혼성적인 양태를 지닌 철현금과 그 소리를 들어보면 그 점을 더욱 실감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인문학은 과연 대중과의 소통을 위하여 쉬워야만 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다시 가져봤다.

나는 실은 경북 김천 태생이다. 그러나 30여년 북미에서 타향살이 하면서 한국은, 호남이나 영남의 구분을 막론하고, 나에게 고향이다. 특히 이산을 경험한 내가 거대한 미대륙에서 바라보는 작은 한반도 전체를 고향으로 여긴다는 것은 외국생활을 오래 해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내가 한반도를 매핑(mapping)해본다면 그 안에 무엇을 넣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도를 땅에 대한 정보와 이미지체계라는 명사라기보다는 매핑이라는 동사로 생각할 때, 나는 한국을, 그리고 익산과 전주를 매핑할 때 무엇을 포함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부끄럽지만, 내게는 아직 매핑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나의 한국 지도안에 이제 익산과 전주라는 이름이나마 겨우 들어올 수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물론 이 짧은 익산과 전주의 여정을 마쳐놓고 내가 백제와 후백제를 논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럴 의도는 없거니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도 이제 흔한 말이 되었지만, 사실 내가 아는 백제와 후백제는 아마도 내가 겪은 이틀만큼 정도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무엇과 마찬가지로, 전통과 문화 역시 노력과 의지로서만이 그것에 가까이 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하며 조법종 교수가 신문에서 읽었던 동북아공정과 관련된 중국의 역사조작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놀랬다. 그의 전문분야인 고조선과 고구려 관련 저작물을 살펴보며 이에 대해 여쭈어보지 못했던 점이 무척 아쉬웠고, 조만간 책을 구입해 틈틈이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오랜만에 접하는 고대역사에 대한 서평을 보며 꽤나 생소했고 어려웠다. 정말, 시간이 문제다.

지인의 소개로 이번 여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 나에게는 솔직히 너무 쉬웠던 여정이었다. 송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여정의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나는 그저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면 되었다. 선조들의 역사와 삶의 흔적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조금이나마 알게되어 감개무량한 동시에, 서울에 돌아와 아파트 숲과 금융가 건물들 사이에 뿌연 스모그 너머에 걸려 지는 해를 보며, 이윤과 안정을 추구하며 내일을 걱정하며 늘 불안에 떨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익산과 전주가 초대한 ‘시간 속으로의 여정’은 그저 경제적 정신적 잉여일 뿐인건지, 우리의 오늘은 수백년 후에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진행해주신 마당 관계자분들이 선조들의 발자취를 연구하고 공유하는데 할애하는 시간과 공력이 새삼 진귀하게 느껴지게 되며 더더욱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의 호출이 경쟁력 강화, 이윤창출, 더 많은 소유를 위해 발빠르게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할 때, 사찰과 유적지의 땅을 밟으며, 역사를 더듬어보며 상상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글을 맺으며, 전문적 지식을 유쾌하게 공유해주신 조법종·이종민 교수를 비롯한 마당 식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짧은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맛깔스러운 전주음식도 접해볼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도 잊을 수 없다. 역사와 지역문화의 재조명과 잊혀져가는 지역문화를 꿋꿋이 지켜가고, 또한 이들을 발굴하고 소개해온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미륵사지의 젖은 땅을 밟아보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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