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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 | 특집 [기획특집]
한국영화,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를 말한다
영화의 전주, 전주의 영화인 ③
임주아 기자(2013-06-05 10:10:35)

런던에서 한국영화와 문화를 알리려 영화제를 기획한 사람이 있다. 인도에서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려 영화제를 만든 사람이 있다. 런던한국영화제 예술감독 전혜정과 오시안-시네판영화제 창립자이자 올해 넷팩상 심사위원으로 전주를 찾은 인두 쉬리켄. 날 좋은 봄, 영화와 도시와 축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을 만났다.

전주 냄새 물씬 나는 영화제 됐으면! - 런던한국영화제 예술감독 전혜정
런던에서 한국영화제를 한다고? 기대 안 되는 영화제 어디 있겠냐만 두 나라의 조합은 매혹적이다. 알고 보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영화제. 주한문화원에서 주최하고 매년 11월 런던에서 열리는 영화제로 올해로 벌써 7회째다. 무지를 한탄하며 스크롤을 내리던 중 이병헌이 손을 흔들었다. 입이 떡 벌어질 ‘그들’과 나란히 선 레드카펫에서였다. 그해 폐막작이 <광해>라 그가 온 건 알겠는데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브루스 윌리스는 웬 말인가. 런던 촬영차 들렀다 하기엔 뒤에서 누가 ‘만진’ 솜씨가 분명하다. 어떤 손님이 오느냐는 그에게 달려있으니까. 예술감독이지만 모든 일을 한다. 기획자, 프로그래머, 총감독을 넘나드는 전혜정의 역할엔 경계도 국경도 없다. 런던에서 한국문화와 영화를 알린 그는 기획력 하나로 런던한국영화제를 ‘한류’ 반열에 올려놨다. “비오고 쌀쌀하면 한국영화제 하잖아?” 시민들이 먼저 알고 온다. 영화전문지에선 따로 지면을 빼놓고 영국 파워블로거들은 실시간 포스팅을 한다. 심지어 한국 음식 만드는 법도 올라온다. “주요 일간지에 반짝 다뤄지는 건 한계가 있어서 글 잘 쓰는 블로거들을 따로 모집했어요. 결과는 아주 좋아요. 장기적인 한류문화 침투에 굉장히 전략적인 방법입니다.” “기록물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는 전혜정은 ‘모으고 편집하고 서비스하는’ 중요성을 아는 기획자다. 목적은 하나. 한국영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영국 사람들은 여유있게 준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년 뒤 있을 공연을 일년전부터 홍보할 정도다. 영국 습성에 맞춰 런던한국영화제도 인쇄물을 미리미리 낸다. “기존 웹사이트들은 한국영화에 대한 영어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료집에 최대한 영어를 많이 써요. 디자인이나 종이질도 최대한 좋게 만들고요. 소장할 가치가 있도록, 자료로 쓰일 수 있도록요.”그는 “이제 해외에 한국 배우를 알려야 할 시기”라고 했다. 영화제작비가 커지면 판도 커져야 하는데 한국은 이미 포화상태라면서 배우가 해외로 진출해 합작품이 많아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런던한국영화제의 연간 행사로 진행중인 ‘한국배우전’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 배우를 볼 수 있도록 쇼케이스 식으로 기획했다. 문소리, 전도연, 최민식, 하정우가 주인공이다. 전주는 와봤지만 영화제는 처음이라는 그는 국내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영화제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놀랐다며 가족적이고 자연스러워 좋다고 했다. 하지만 오래된 축제일수록 그 도시의 전통적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며 자원봉사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딘버러국제영화제에 가면 도시의 역사와 영화제 이야기를 줄줄 꾀고 있는 어르신 자원봉사자들이 많아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방인들에겐 그게 평생 기억이 되고 그 도시의 이미지로 남는 거거든요. 전주 이야기도 하고, 영화제가 걸어온 길도 설명할 수 있는 지역전문가가 필요해 보여요.” 그는 전주국제영화제가 한옥마을을 적극 이용하면 좋겠다면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한옥에서 영화를 보고 전통음식을 맛보고 공연도 보는 멀티시스템이나 한옥에 누워 영화를 보는 특별스크리닝 같은 것들이다. “바쁜 시간 쪼개 오는 손님들이 영화만 보러 전주에 올까요? 특히 영화제는 여러가지 부가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많은 사람들을 볼 수있는 자리가 있다든지 며칠 쉬고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잘 돼 있다든지요. 그런 면에서 전주는 전주만의 특성을 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런던한국영화제도 야심찬 계획이 있다. “3년 뒤에 있을 10주년 회고전을 얼마 전에 확정지었어요. 주인공은 박찬욱 감독이예요.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의 아이콘이죠. 영화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탐구하는 특별한 회고전이 될 겁니다.” 인터뷰 내내 나는 그가 주한문화원이 파견한 용병이거나 드라마 <직장인의 신>의 미스김의 실존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축제? 모두를 위한 ‘한그릇’을 내놓는 것! - 넷팩상 심사위원 인두 쉬리켄
인도에서 태어나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아시아 영화계간지 <시네아메이>에서 7년 간 일했다. 당시 장이모, 임권택, 후샤후센 감독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그는 “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글이 아시아 영화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말할 만큼 애정이많다. 그는 <시네아메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영화제를 열었는데 그 영화제가 인도 오시안-시네판 영화제로 발전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내 피에 아시아 영화가 흐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웃음) 영화를 보면 감독을 알 것 같고 정서를 이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작은 마을에 영화의 거리만 남아 있던” 14년 전 전주는 몰라볼 만큼 성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지털 영화관은 굉장히 새롭고 혁신적인 발전이었다는 그는“당시 박광수 감독이 가져온 35mm 영화는 보기만 해도 새로웠다”며 처음 전주에 왔을 땐 디지털 영화가 이렇게까지 발전하리라곤 모두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주영화제가 성장한 이유에는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가 있다고 봤다. 이번에도 디지털 삼인삼색 영화를 빼놓지 않고 챙겨본 그는 이방인이라는 주제가 아주 좋았고, 세 감독 모두 기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줘서 즐겁게 봤다고 말했다.그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넷팩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가 본 인도영화특별전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역영화를 포함한 발리우드 영화까지 고루 있어 인도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인도영화의 흐름을 한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고 평했다. 티켓이 모두 매진돼 기분이 좋았다는 그는 전주에서 인도영화에 대한 애정을 확인해 기쁘다고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쁜 일은 영화 시장이 생겼다는 것. 예술영화는 철저히 외면 받았는데 이제 점점 보러 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는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크리켓이라는 게임이고 하나는 인도영화다”라고 했다. 자국영화에 대한 인도인들의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 하지만 의외로 한국영화 감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며 DVD를 모아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인도에서는 자막을 읽지 않고 더빙을 해야 하기때문에 여러모로 복잡하다고 한다. 오시안-시네판 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 주간을 맡으면서 한국영화를 많이 소개해온 그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임권택의 <씨받이> 같은 영화들을 상영했는데 인도관객들이 너무 좋아하고 흥분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은 임권택 감독이 만든 잔잔한 영화가 있는 반면 굉장히 강하고 폭력적인 <올드보이> 같은 영화도 있다면서, 굉장히 넓고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는 것이 한국영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영화제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발견을 하는 역할도 있지만 무엇보다 축제로서의 소명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화라는 밥만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양념도 뿌리고 채소를 뿌리고 모두를 위한 한그릇을 만들고 내놓는 게 답이겠죠.”그에게 물었다. 계속 영화를 보고, 여전히 공부하고, 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내가 정말 미친 게 아닌가.(웃음) 정말 영화를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하는 그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어려워요. 미술, 문학, 음악 모든 예술을 포함한 문을 영화라는 매체만큼 잘 열어주는 건 없으니까.” 인두쉬리켄이 없었더라면 아시아영화를 아끼는 한 세계를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그의 눈빛과 말투에서 어떤 사랑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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