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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 | 특집 [연중기획]
과거의 기억을 채집하다
공간 - 사라지는 공간의 기억 기차와 간이역
임주아 기자(2013-07-03 22:32:39)

아픈 과거, 장항선
앞서거니 뒤서거니 관광버스에 올라타니 기차속도의 두 배로 풍경이 지나간다. 익산역에서의 첫 일정으로 익산문화재단건물을 둘러보았다. 익산 평화동에 위치한 이곳은 1930년 익옥수리조합으로 사용되다가 1996년까지 전북농지개량조합 청사로 이용된 근대문화유산 건물.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작가 레지던시에서는 ‘익산역, 100년 이야기’라는 상설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폭발사고로 뻥 뚫린 이리시 모습부터 화물 취급현장, 호남선 복선 개통식 사진까지 익산역의 역사를 한눈에 보았다. 불과 몇 십년 전 사진인데도 너무 아득해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착취한 쌀과 온갖 수탈물을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부설한 철도 중 하나가 장항선입니다. 간이역이 있어야했던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걸어 다시 익산역으로 가는 길, 수원에서 온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 오래된 간판을 찍었다. “여기가 익산에서 가장 잘 나가던 미용실이었어요. 손님이 얼마나 많았는지 종업원만 열명이 넘었다니까요.” 변해버린 거리는 목격과 경험담으로 근근이 기억된다. 오후 2시경, 새마을호 1160열차를 타고 군산역으로 갔다.1899년 5월에 개항한 군산항은 올해로 114살. 한 세기를 건너왔다. “예전엔 도로 양 옆으로 강물이 출렁출렁 했었지요. 북쪽으론 금강이, 남쪽으론 만경강이 흐르고요. 지금은 모내기가 끝나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해설사의 말에 사람들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밖엔 초록의 논과 밭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기차는 어느새 ‘대야’를 향해가고 있었다.

간이역이 쉴곳은 어디에
연푸른색 외벽, 낮은 지붕, 기찻길이 한눈에 보이는 임피역. 역은 내부공사가 한창이었다. 마침 굉음을 내며 임피역을 통과하고 있는 새마을호가 보였다. 임피역에도 새마을호가 정차했던 때가 있었다. 그랬었나, 역사 주변만 뱅뱅 돌아볼 뿐 열차가 통과한 역엔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임피역의 역사는 희노애락이다. 1924년 배차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해 1936년 보통역으로 승격되면서 역사를 신축했으나 급격한 이용객 감소로 1995년엔 다시 옛날처럼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됐다. 이듬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기쁨을 안았지만 2008년 새해엔 군산선과 장항선과 함께 통근열차마저 운행이 중지됐다. 이후 철도공사 역사상 최초로 새마을호가 정차하는 무인역이 되었으나 이용이 극히 저조해 2008년 5월 1일자로 영업을 중지하고 역사가 폐쇄된다. 채혜석 임피역장은 “해방 이후 지역주민의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군산, 익산, 전주행으로 가는 승객이 하루에 700~800명에 이르렀다”며 “임피역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는 창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을 주민과 함께 해온 임피역은 건축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상태다. 군산은 철도공사로부터 임피역의 관리권을 넘겨받아 임피역사와 부속건물을 복원하고 기차체험 공간과 간이 테마공원을 꾸며 관광자원화 하기로 했다. 2010년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유휴자원 관광차원과 사업자로 선정된 결과다. 이날 참가한 박성면 한양대 연구교수는 “과거를 찾으러 이곳까지 오지만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재작년부터 현재까지 공사를 진행한 임피역은 지난 6월 정식개관 했다. 군산시는 채만식 문학관을 연결한 문학기행 상품과 임피역을 연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피역을 다시 단장하는 데는 여러 기반 시설을 합해 약 23억원이 들어갔다. 원형 복원이 아닌 상품복제에 가까운 대수술이었다. 광주리에 생선을 이고 있는 어머니 동상이 임피역을 재현하는 것인지, 유류창고 안에 빽빽이 적힌 글씨가 그때를 기록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새 의자가 놓이고 페인트가 발리고 동상을 세워지는 그곳이 촌스러울 뿐이다. 박제된 과거에 희망은 있을까. 사람들은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을까.군산역에 다다르자 바닷바람이 불었다. 유리로 뒤덮인 건물 외벽은 항구의 냄새를 지워버렸다. 역은 이상하게도 공항과 닮아 있었다. 가는 내내 구르마에 쌀을 싣고 가는 아낙네를 떠올렸다. 이런 저런 생각에 어쩌다 남원역까지 왔다. 시계는 벌써 자정!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스마트폰으로 코레일에 접속했다. 다행히 막차가 남아 있었다. 이렇게 쉬워도 되나. 이렇게 가도 되나. 어둑신한 하늘. 모든 안부를 뒤로하고 전주역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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