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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8 | 특집 [방안의 피서]
문화저널 연재필자 8인이 추천하는 여름의 책!
관리자(2013-07-30 17:41:00)

<역사가 지식이다> - 신봉승 지음/ 선 출판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


초당 신봉승 사백으로부터 이 책을 받은 것은 지난주의 금요일이었다. 그간엔 으레 ‘사백’의 칭호였는데, 이번엔 ‘아인(雅人)’이라 불렀다. 과분한 일이다. 각설하고, 신 사백의 이번 4백여 면에 이르는 책이름은 <역사가 지식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올같은 더위도 깡그리 잊을 수 있었다. 손에서 책을 놓기가 아쉬웠다. 80여 삶을 걸어온 내 삶의 거울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신 사백을 우리의 마지막 ‘선비’로 우러러 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거듭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신 사백의 건강하시길 빌어 올리며, 나의 ‘방 안의 피서’ 를 줄인다.



< 슬로 라이프> - 쓰지 신이치(이규) 지음/ 김향 옮김/ 디자인 하우스
이종민 전북대 영문학과 교수


이 책은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는 ‘느리고 단순한 삶’이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안내서이다. 물론 정해진 길이 강요되지는 않는다. 교조적 규칙도 없다. 70여개에 달하는 핵심단어들을 중심으로 우리들 삶의 방식을 뒤돌아보게 해준다. 속도와 효율성,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주류적 사고에 대해 일종의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책임한 해체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소곤거리듯 말하고 있지만 개인적 기호차원을 넘어 인간관계, 사회, 경제, 그리고 환경적 측면까지로 이어지는 보다 깊은 의미의 ‘느린 삶’ 개념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거시적인 의미와 우리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이 함께 제안되고 있다는 점. 걷기, 놀기, 빈둥거리기 등을 통한 느림회복운동 참여를 독려하면서 이것을 지구온난화, 유전자 조작 등 우리들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좀 더 심각한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또 하나,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서지정보를 갖추고 있어 독서와 사유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는 것. 해당 핵심단어의 주제를 심도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관련 저서와 인터넷 정보를 ‘깊이 알기’를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비슷한 주제의 글들은 ‘이어읽기’로 제시하고 있다.


< 논어를 노래하며> - 논어집주/ 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박남준 시인


삼복더위 어찌 건너갈까. 옛 선비들은 탁족(濯足), 계곡물에 발을 씻고 시를 읊거나 거문고소리를 청하며 한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가히 인간 세상에 어떤 풍경이 그에 견주겠는가. 신선지경이 따로없다. 대나무 돗자리 위에 목침을 베고 죽부인을 껴안아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멀리 윗목 쪽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가까이 살랑거리는 부채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그래 뭔가 한 가지 빠진 것이야. 그렇지. 한여름 더위와 벗 삼을 좋은 책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 중 올해 더위는 논어와 함께 하고 있다. 먼저 소리 내어 읽는다. 낭랑한 목소리로 내 소리가 내 귀에 울리도록 노래하듯이, 그 다음엔 눈을 감고 그 말씀을 잠시 몸에 새긴다. 그렇게 살아왔는가. 아니라면 앞으로는 그러할 것인가. 생각하며 반문한다. 다시 또 한 문장을 읽는다. 문밖에 누가 왔다. 오, 그대셨는가. 작년에 왔던 초가을 ^^


신귀백 영화평론가

더위를 타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포카라나 바이칼 주변에서 여름을 나면 좋을 것이다. 현실은 방안의 에어컨이다. 텔레비전을 켜고 야구를 보며 싸구려 맥주를 마시는 것도 좋은 일. 타이거즈의 번트야구에 맥주맛이 싹 달아난다. 극장이 멀어 컴퓨터를 켠다. 놓친 영화들을 탐색한다. 호러 사절, 브래드피트가 나온대도 좀비 역시 사절이다.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싶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역시 잘 늙어가고 있겠지. 책이다. 김애란이나 정유정을 읽으면 시간이 휙 간다. 글발 좋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나 영화평론가 김혜리의 글은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서 볼 양식이다. 좀 눕자. 시집이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좋은 영화이듯 역시 백석이다. 진은영이나 송찬호의 좋은 시는 좋지만, 백석 시는 다 좋다. 삿자리를 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쥔을 붙인 시인처럼 에어컨이 있는 서재에 거미가 들어온 적이 있다. 나도 백석의 「수라(修羅)」처럼 에이포 종이를 쓰레받이하야 밖에다 내려놓았다. 에어컨이 없을 때 사 모은 집영사판 일본 화집을 다시 마스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젤 영양의 방광이 가득차길 기다리는 늑대처럼 장룽의 <늑대토템>을 다시 읽어도 좋을 일.


< 위대한 개츠비> - 스콧 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민음사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세기 초반, 돈이 모든 가치를 좌우하기 시작했던 미국과 미국인의 초상을 그렸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감흥이 있겠냐마는 이 책은 한 시대와 특정 지역을 뛰어넘는 인류 보편의 이상과 낭만이 있기에 고전으로 남는 것 같다.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다. 개츠비라는 인물에 한없는 동정심을 느껴보고, 닉이라는 화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저자의 낭만적 이상주의에 공감해 보는 것도 피서법으로 좋을 듯하다.


< 신석기 혁명과 도시혁명> - 고든 차일드 지음/ 한국고고학연구소 엮음/ 주류성
이현배 옹기장이

이 지면 <문화저널>을 통해 말글로 사는 삶, 생활문화를 이야기하면서 그렇다면 ‘나의 삶을 무어라 할 수 있을까’하게 되었다. 그러다 살앎, 삶의 축적과 생성으로 ‘행동고고학’이라 하게 되었다. 생업인 옹기일을 추적하자니 흙그릇(토기)에 닿아있고 그 흙그릇이 시대적으로 신석기문명을 증거 하다 보니 신석기 시대까지 소급하게 되었다. 지금의 문명, 더 나아가 앞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명이 바로 말글 이전 신석기 시대 문명으로부터 시작되었음에 수긍하게 되면서는 묘한 환희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 제목만으로도 손에 잡힌 책이 고든 차일드의 [신석기 혁명과 도시혁명]이었다. 책을 보다보니 원제 그대로 ‘인간은 인간 자신을 만든다’(ManMakes Himself)여도 좋았겠다 싶었다. 나는 나 자신을 만들고 싶으니까….


< 영화 사용법> - 신귀백 지음/ 작가
김유석 시인


책읽기의 즐거움 중 하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혼자만의 여행 길에 오르는 정서의 호젓함에 있을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수박화채나 얼음을 띄운 미숫가루 한 사발곁에 두고 스스로 사가독서賜暇讀書(유능한 젊은 문신들에게 독서에 전념하도록 휴가를 주던 조선시대의 제도)를 얻는 이들이라면 방학과 휴가를 겨냥해 쏟아지는 다양한 신간들이나 다시 읽는 고전도 다 마땅하겠지만, 음……, 나는 빈약한 내 서가에서 위 책을 꺼내 슬그머니 펼친다. 50여 편의 영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사용법>은 영화평론집이자 사랑과 현실과 인생에 대한 묵시록이다. 암묵적인 영상의 주제를 아울러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은 것들을 적시하는 눈이 감독보다 매섭거나 섬세하거나, 혹은 훨씬 따뜻하다. ‘백석’과 ‘브레히트’의 시편들을 영상의 우물 속에서 긷는 저자의 사유를 헤아리다 보면 물뿐이 아니라 그 물에 비치는 온갖 인간의 서사를 한 두레박씩 퍼 올려 두루 적셔줌을 느낄 수 있다. 관객인 독자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마른 우물 같은 스스로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역설의 미학이 영화평론집이란 부제를 무색케 할 만큼 은근하다. 이미 보았든 미처 보지 못한 것이든 고전에서부터 최근 것들까지 예시하고 있는 한 컷 한 컷의 영상들을, 스릴 있게 감치는 저자의 문장 따라 상상해 보는 묘미가 일석이조의 덤이라면 또 그렇다. 넘기던 페이지를 접어두고 영화에 끌려 인터넷카페 같은 데를 기웃거릴지도 모르는 일.종이로 만든 필름 같은 책이다. 오욕칠정 생의 줄거리에 막연한 인간의 염원을 배경처럼 투사하는 300여 페이지의 스크린, 이 한권으로 뜨거운 매미울음이 문득 서늘해짐을 느낄 수 있다면?


< 한국의 美 특강> - 오주석 지음/ 솔출판사
이흥재 전북도립미술관장


조선시대 선비들은 와유(臥遊)를 즐겼다. 누울와(臥) 놀유(遊)자를 쓴 와유는 시원한 대청이나 거실에 누워 산이나 계곡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마치 그 계곡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끼며 즐긴다는 뜻이다. 이렇게 와유하면서 방안의 피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책이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이다. 오주석 선생은 비교적 젊은날에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한국 미술사 연구에 바친 치열했던 삶이나 우리미술을 이시대의 언어로 쉽게 풀어내려고 했던 노력은 감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 사람이었다. 우린 비교적 인상파나 큐비즘을 중심으로 한 서양미술에 대해서는 자주듣고 보지만 한국의 옛그림과 화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훨씬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마치 우리미술은 서양미술보다 수준이 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옛 그림에 담긴 아름답고 진실한 조선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혜안을 갖게 해 줄 것이다. 오광수 선생님은 공부를 하면 식견이 생기지만, 미술사를 하면 식견과 안목이 생긴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오주석 선생의이 책으로 방안의 피서를 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식견과 안목을 키운다면 올 여름 최고의 와유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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