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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 | 특집 [연중기획]
숨을 돌리고 마음을 터놓는다
방재현 객원기자(2013-11-05 15:09:24)

바쁜 일상 가운데 잠시 머물러 쉬어감 만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쉼터로서의 공간이 있다. 도심의 빌딩 숲 사이, 사방이 막혀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이들은 잠깐의 휴식을 찾아 환기와 정화를 도모하며 옥상에 모이거나 건물 앞 벤치에 둘러앉는다. 반복되는 일과 중에서 청량음료와 같은 쉼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큰 돈을 들인 거창한 공간이 아니어도, 굳이 발품을 팔아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일상의 쉼터, 그 원형을 찾아 한적한 시골마을로 길을 잡았다.


시골마을에서 쉼터의 원형을 찾다
익산의 공장지대를 지나 삼례로 가는 좁은 지방국도를 달리다보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누렇게 무르익은 벼들이 출렁이는 들판 너머로 민가들이 제법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방향을 돌렸다. 원오산 마을, 익산시내 방면에서 춘포 문덕마을을 곁으로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서있는 비석이 마을이름과 마을의 유래를 알려주고 있어 마을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용을 보니,큰 산들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고요해 살기 좋은 동리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오동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오산으로 불렸다고도 전한다. 어귀를 지나 맨 먼저 이목을 끄는 곳은 ‘도솔암’이다. 마을 사람들에겐 ‘미륵당’으로도 불렸다고 하는 대, 들판에서 발견된 큰 바위가 영험한 기운을 발산하여 이곳에 안치되어 암자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암자 또한 지친 몸과 마음에 안식을 찾는 이들에게 위로와 함께 내일의 희망을 전해주었을 것이지만 좀 더 일상에 가까운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에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는 언덕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입구의 비석에서 본 ‘아늑하고 고요한 동리’라는 말의 뜻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아하게 건축된 전원주택 군락이 언덕을 따라 이색적으로 펼쳐진다. 구릉의터를 고르는 오랜 공사 끝에 지어진 집들이라고 하는데,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이편의 민가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진 인상이다. 살집을 새로이 짓고 이사 오는 사람들도 도심 속 빡빡한 생활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 쉴만한 공간을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되지 않았을지 미루어 짐작해 본다.
마을 주민들은 들녘의 곳곳에 나와 말린 들깨를 털고 있었다. 잠시 일손을 놓고 땀을 닦으며 모여 앉은 주민들이 있어 다가서 보았다. 쉬다가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쉬는 것인지, 무엇이 그리 재미날까, 끼어들기가 민망할 정도로 연신 박장대소가 이어진다. 머뭇거리다 담소가 사그라질 때 쯤 마을과 쉼터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어르신이 선뜻 나서 친절하고 자세하게 일러주신다. 더불어, “지금은 나락을 베는 시기와 맞물려 연중 가장 바쁜 때 중 하나”임도 알게 되었다. 자리를 뜨려고 하니 모두 일어서 일손을 잡는다. 사진을 위해, 멋진 포즈를 잡아 주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쉬는 것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작지만 초라하지 않은 쉼터가 그곳에 있다
동리를 이리저리 헤매며 한 바퀴 돌고나서야 마을주민들이 일러준 쉼터들을 찾았다. 마을회관과 모정이 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모정에는 여름철 따가운 햇살을 피해 모여 쉬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모정 이편에는 마을 어른들이 이용하는 노인정이 ‘건강관리실’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겨울철에는 뜨뜻하게 불을 지펴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이곳에 하나 둘씩 자연스레 모이게 된다고 한다. 농사일에 바쁜 지금은 한산하지만 때가되면 마을사람들이 붐비고 활기를 되찾게 될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 곳 쉼터들도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을 지나는 큰길 삼거리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자리하고 있다. 정류장 옆으로는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고 그 밑으로는 몇몇이 앉아 쉴 수 있는 소박한 평상이 마련돼 있다. 버스정류장의 햇빛가리개가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마을 주민들이 조금씩 손을 모아 마련된 쉼터라고 했던가. 누구나 거리낌 없이 아무 때나 오가며 쉬어갈 수 있는 장소다. 인근에 논밭이 있는 마을 주민들은 점심식사 시간 이후 낮잠을 자는 용도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이른 아침 대처에 나갈 일이 있는 주민들은 버스를 함께 기다리며 그날의 해야 할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저녁 무렵 마을에 돌아온 이들은 이곳에 모여 앉아 하루를 정리하고 마무리 할 것이다. 길을 오가며 반갑게 만난 주민들은 이곳에 잠시 앉아 그간의 소식을 나누고, 농사일의 때를 맞추거나 마을의 대소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고 한다. 지나가는 방문객에게는 지친 다리를 풀고 편하게 앉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멀찍이 바라보이는 전망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듯하다.
인적이 드문 때에 행여나 마을버스가 들어오지 않을까 들판을 따라 펼쳐진 풍경들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기다려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경운기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고, 아주머니 한 분이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조심스럽게 끌고 간다. 누런 들판은 지는 해에 반사되어 더욱 노랗게 물들어 갔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며 노심초사 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팔과 다리를 곧게 뻗어 굳은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었다. 잠시 눈을 감고 쉼의 의미와 함께 참다운 쉼터가 되어주는 공간들을 찾아 생각의 나래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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