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4.6 | 특집 [전북문화개혁사발통문]
다양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토양을 만들자
(2014-06-02 17:16:41)

다양한 이슈와 의제들이 차고 넘치는 ‘선거의 계절’입니다. 며칠 후면 우리 동네, 지역을 이끌 새로운 일꾼들이 희망에 찬 각오로 지방자치 4년을 시작합니다.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무관심하기 일쑤지만, 또 그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야 하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특히 어려운 때일수록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힘과 위안을 안기는 ‘문화’는 더욱 촘촘하게 우리가 가꿔야 할 몫인 것 같습니다. 뒤돌아보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와 예술이 무관심과 잘못된 행정으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습니까.

6월호 연중기획에서는 진정한 ‘문화전북’을 꿈꾸는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문화전북’에는 문화자치와 다양성과 전문성과 그리고 삶과 생계에 대한 고민과 문제들이 녹아있습니다. 

악순환을 반복하는 문화인력에 대한 고민, 길을 잃은 전주 한옥마을의 성장, 발 붙이기 힘든 새롭고 낯선 문화예술, 끊이지 않는 탁상공론 등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일침과 고민을 실었습니다.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귀 기울여 보시면 미처 생각지 못한 전북 문화의 다양성과 무릎을 치며 공감하는 문제들도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역시 세대를 막론하고, ‘문화전북’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의 고민은 그 결이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망은 오늘도 같습니다.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공유로 ‘문화전북’이 내일이면 더욱 가까워지길 바랍니다.  


지속가능한 ‘딴따라 질’ 정치가 보장할 수 있는가? 

이백희 인디밴드 스타피쉬 보컬


주변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앓는 소리를 한다.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겨있으므로. 충격 , 무기력, 공감, 격분 같은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나누어 가지면서 누군가의 말처럼 ‘혼자서는 울고, 둘이 만나면 위로하고, 셋이 모이면 화를’ 냈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공연으로 먹고 사는 연주자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다. 행사 하루 전에 재단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는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이다. 공연을 보기위해 기다려 온 사람들이 많고, 공연을 준비해 온 연주자의 수가 많았으며 그러한 숫자가 만들어낸 슬픔과 위로의 공기가 서로를 감싸주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음악인은 경우가 다르다. 크고 작은 행사와 공연이 일순간에 취소되었다. 학교를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던 한 음악단체는 모든 학교로부터 공연 취소를 통보받았다.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황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뿐.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의 관객들처럼 어째서냐고 항변해주는 사람(들)이 없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거기다가 외국의 대형 음악가의 내한공연이 성황이었고, 각종 스포츠 경기가 취소 없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기어이 생기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음악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의 고통스런 현실에 함께 아파해줄 공감과 이해의 손길인가? 아니다. 시스템이다. 섭외된 공연과 행사가 취소되면 공연까지 남은 시일을 고려해 공연비용을 차감해서라도 지급하면 된다. 잘 지켜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러한 내용을 포함시켜 공연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면 된다. 백번 양보해서 공연 취소에 따라 공연비 지불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고 치자. 그렇다면 주관 단체와 공연자(공연단체)의 이름으로 행사 예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재난(재해) 피해자 돕기 성금으로 내자. 합리적 절차와 연주자에 대한 배려만 있다면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우리 지역 예산 중 문화예술에 지출하는 총 금액은 얼마인가? 그 가운데 클래식과 국악을 제외하고 대중음악과 대중예술에 편성되어 있는 금액은 얼마인가?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중음악 예술가의 현황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지역의 크고 작은 무대에 우리 지역의 음악가들이 설 수 있도록 우선적인 배려를 하는 일이다. 인디 음악인을 비롯한 지역의 음악 예술인을 위한 ‘지역 음악 쿼터제’는 해당 문화의 뿌리를 단단히 하는 일인 만큼 반드시 정책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일이다. 

문화 공급자를 위한 사업과 함께 문화를 전파하는 사업도 중요하다. 지역 방송국과의 업무협조를 통해 음악 관련 프로그램을 신설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상대적으로 제작비용이 적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방송사의 역량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로컬방송 제작의 제약 사항이 있을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미디어 노출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음악인들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 제작은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음악가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경쟁력을 갖게 해 주며 대중에게는 음악 선택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의 수혜자로서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끝으로 이러한 문화의 토양이 건강해지려면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꾸준한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세미나와 워크샵이 필요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담도 필요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할 의지가 있고 뚝심이 있는 문화를 사랑하는 정치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감각 있는 경계인이 되기 위하여

유상우 전북민예총 사무처장


2014년 8월 8일부터 14일까지 (사)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전북민예총)에서는 예술제를 개최한다. 동학 120주년을 맞아 전주남부시장(풍남문) 일부와 전북예술회관을 접수하여 장장 7일간 예술주간을 선포한다. 전북예술회관에서는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미술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동학농민혁명은 농업을 생업으로 했던 농민들의 투쟁이었기에 농업과 생명 그리고 쌀을 이야기 할 것이다. 전주남부시장에서는 예술가들의 아트마켓, 인디밴드의 공연 등이 펼쳐진다. 

전북민예총회원뿐만 아니라 전주시민은 물론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과 함께 예술주간을 호흡하고 싶은 것이 이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심정이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곳과 관련된 장소가 한옥마을에 많이 남아 있다. 이성계의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경기전은 대표적인 곳이다. 오목대 또한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 목조 이안사와 관련된 곳이다. 이곳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온 이성계는 친인척들을 불러 모아 승전을 기념하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풍남문 너머의 곤지산 일대는 조선왕조에 거세게 저항했던 동학농민군 김개남장군이 스러져간 곳이다. 곤지산은 초록바위라 부르기도 하는데 또한 이곳은 동학과 대칭되는 서학(천주교)을 따랐던 천주교신자들의 박해지이다. 어린 신자들을 전주천에 수장시켰던 곳이다. 공교롭게도 여기서 흘러내려 오는 공수내는 전주천을 북으로 치받고 있다. 공수내의 수량이 많을 때는 전주천 북쪽인 남부시장까지 범람했다고 하며, 남부시장 북쪽이 바로 경기전과 오목대이다. 그래서 마치 전북에서 발원한 금강이 동학농민군처럼 서울로 내달음치는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남부시장과 풍남문은 조선왕조의 개창과 새로운 혁명의 기운이 맞물리는 경계지다.

조선왕조의 유적지와 근현대 한옥을 품은 전주한옥마을은 우리나라 최대의 관광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한옥마을을 더욱 활성화시키려는 논의도 많다. 이미 남부시장 또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경계지인 남부시장을 넘어 초록바위와 초록바위 옆의 서학예술인마을을 연결하는 벨트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행정이 밀고 상인이 페달을 밟고 서학예술마을에서 끌어당기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 가운데 이삼십대 아가씨와 그를 따르는 남성들이 참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미 한옥마을에서 팔리는 상품들은 대부분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인들은 비싼 임대료에 밀려 도태되고 있다. 

이러한 상업화된 한옥마을의 시장 환경을 바라보며 이데올로기 혹은 메시지가 있는 동학 120주년 예술제와의 경계를 확인한다. 감각 있는 경계인은 경계에 피는 꽃을 위해 무슨 꽃씨를 준비하고 어떻게 씨를 뿌릴 것인가?

동학혁명 120주년을 맞이했지만 동학관련 행사에 정부의 지원금이 대폭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탄할 일이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국가보조금을 받고 싸우지 않았다. 시대를 헤쳐갈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는 상황이 험난할수록 더 많이 나오는 법이다.

예술제는 동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 높은 예술제의 퀼리티, 브랜드화를 통한 대중성 확보 등의 여러 숙제를 안고 있다. 

 무릇 예술가는 풍남문의 종과 같아서 스스로를 타종해야 세상을 울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전주시민, 관광객, 공무원들의 경계에 손을 내밀고 싶다. 

그곳에서 향긋한 꽃들이 피어나기를. 


‘시키는 대로’ 하라고요?

장근범 사진작가


세상이 하수상하여 마음이 뒤숭숭한 요즘이다. 사람다움을 잊고 살아가야하는 요즘 예술적 행위들을 나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점점 빠르고 은밀하게 진행되는 공간의 자본 논리에서 도구로 전락한 예술과 예술가들의 자리에서 젊음을 이야기 한다는 게 얼마나 자위적이던가. 오히려 되묻고 싶다. 

왜 젊은 예술가들이 필요한지를. 진정 젊은 예술가들을 찾는 건 다른 의미에서 젊은 예술가들을 목마름으로 찾고 있는 건 아닌지를 말이다. 젊음마저도 도구로 사용하려는 목적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를 말이다.

나는 동문에 산다. 나이만큼 이 거리에서 살아왔다. 때로는 마을 주민으로서 때로는 작업을 하는 동시대의 작가로서 이 공간을 지켜본다. 한옥 마을이 활성화 되며 그 영향력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번지고 있다. 하드웨어의 확장으로 관광객들의 방문이나 경제 활동이 늘어날지는 모르겠으나 예술인, 예술단체, 예술작품 콘텐츠는 약해지고 있다. 예술가들이 떠난 거리는 술집이 즐비한 거리로 바뀌었지만, 보기 민망하게도 예술의 거리라는 이정표가 걸려있다. 예술가가 없는, 예술가의 활동이 없는 취한 거리에서 그런 오명을 언제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공간의 하드웨어에 정신의 문제를 치장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관변단체의 고압적 접근태도가 문제다. 자본을 쥐고 있는 관변단체 특히 공무원 영역에서 작가들을 대하는 고압적 태도와 어느 순간 변해있는 디렉터로서의 다채로운 능력들 말이다.

여기서 예술은 단순히 하드웨어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종의 장치로 작용한다. 공간을 해석하고 이해해나가는 예술가들의 정신은 성과에 맞추기 급급한 도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런 복잡한 요인 안에서 잘 정비된 기성세대와의 관계가 일을 진행하기에 편할 테다. 그리고 그런 기성세대 밑에서 자신을 대신해 움직이는 동력이 필요할 테다. 그때 바로 젊음이라는 동력이 필요한건 아니었을까? 

젊음은, 젊은 문화예술가들은 싼값에 효율이 좋은 특정인들이 아니다. 그래서 적은 월급과 낮은 지위 불안정한 미래 따위를 늘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딴지를 걸고 싶다. “내가 니 나이 때는” 이라는 곤조 가득한 이야기보다는 이 나이 때 부조리하게 겪어야할 상황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단순히 패기만 넘치는 절절한 층이 아니다. 세대와 세대가 문화예술을 이해해 나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교두보이자 동시대를 같이 목격하고 그 길을 같이 걸어나가고 있는 동지이다. 이러한 연대의식 없이는 문화예술의 엄청난 다양성은 뒤로 한 채 오직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구조로서 형태만 남아있을 테다. 

구구절절 하수상한 심정을 풀어놓았지만, 결론은 하나다. 제대로 주인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난 답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의 거리에는 예술인이 주인이 되고, 축제현장에서는 축제를 즐기는 관객이 주인공이면 좋겠다. 현장에 차려진 관공서의 탁상이 거둬지면 좋겠다. 

서울생활을 접고, 지역의 진정한 문화일꾼이 돼보겠다고, 어려운 길을 택한 한 동네 친구가 술잔을 기울이며 이름도 생소한 공무원들을 향한 욕지거리를 반복하지 않으면 좋겠다. 

몇 개월을 애쓰게 준비한 작은 축제가 ‘예산 나중에 줄게’란 말 한마디로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우리도 ‘시키는 대로’하는 문화예술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