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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특집 [민선지방정부3년의 문화정책을 돌아본다]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결핍'과 '전략부재'
전라북도 문화예술발전 중장기 계획
손희정 기자(2015-06-16 11:47:54)


 96년 전라북도에 문화관광국이 신설되었고 다시 이듬해인 97년 5월 전라북도는 「문화예술발전중장기 계획서」란ㄴ 두툼한 정책입안서 한권을 내놓았다. 지역문화의 진흥을 위한 전략이 부재하다거나 지역문화의 침체를 딛고 예향으로서의 위상을 전라북도가 앞장서서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소리없는 요구가 전라북도의 적그적인 의지로 반영된 셈이다.

 그 내용의 현실성이나 구체성 여부를 떠나 이러한 장기게획안이 나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성과였다. 비로소 민선지방정부가 늘 이야기 해 온 '예향'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는 계획이 잡혔고 지역문화에 대한 일관된 정책의 계획과 집행이 비로소 가능해 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여기에는 물론 적은 수의 인원과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정리해낸 공무원들의 최선을 다한 노고가 뒷받침 되었다. 적어도 이런 방식의 훈련이 문화전문관료를 만들어내는 지난한 과정의 하나임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중요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들여다 본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의 반응은 일단 '실망스럽다'는 것이었다. '지역문화의 진정한 발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동안 전라북도나 행정관료들이 보여준 지역문화에 대한 일종의 푸대접과, 결정적으로는 계획안에서 제시한 수많은 사업들이 지나치게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하는 하드웨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

 발로 쓴(?) 문화예술발전중강기계획서[문화예술발전중장기계획](중장기계획)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예술분야의 발전을 위한 중·장기족안 계획을 말한다. 목표는 문화예술의 가시적인 발전을 성과로 얻어내는 것이다. 목표를 수립하기 위해 지역문화에 대한 기초조사가 이뤄져 낱낱히 파악된 다음, 우리 지역 문화를 '정체의 늪'(?)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세부목적을 설정하고 그에 걸맞는 사업계획을 생산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중장기 계획의 수립이다.

 그러나 이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도에서는 먼저 서기관 1명과 행정공무원 2명으로 구성된 기초 조사반을 서울, 광주, 전남, 경북 지역 등지로 출장보냈다. 이들 지역은 빠르게는 91년부터 문화예술발전을 위한 중장기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전라북도는 해외 선진국의 문화정책도 분석하면서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수집, 이 자료를 토대로 97년 5월에 중장기계획을 만들어 냈다. 적어도 공무원 혼자 책상 머리에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쓴 기안이 아니라 발로 뛰어 쓴 계획서임에는 분명하지만 남의 다리만 긁는 격이 아니었느냐는 지적도 있다. 타시도의 기본 모형 분석도 중요하지만, 더욱 절실한 문제는 지역문화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조사라는 얘기다.

그래서 96년 3월에 도내 거주하고 있는 20세 이상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된 '전라북도 21세기 발전방향에 대한 도민의식 조사연구'(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전라북도 21세기 도정발전기획단, 표본조사)도 참고자료로 채택됐다. 그러나 이 조사 결과를 문화예술 분야에 반영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다. 조사 대상은 철저한 문화의 향유자이다. 이들은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즐기고,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에만 관심을 가질 뿐, 문화예술계에 대한 속사정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조사 내용을 중장기 계획에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사항목이나 설문내용은 조사자가 이미 중장기 계획에 대한 뱡향에 대해 설정한 한정적인 분야에 대해서만 이뤄졌으며, 다만 중장기계획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이 조사 결과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결과는 원인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지역문화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진행된 추진과정은 결국 우리 지역특성을 제대로 살리지도,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해두지도 못하는 어물쩡한 중장기계획서 한 부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제 문제의 문화예술발전 중장기 계획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도는 이번 계획을 수립하면서 크게 여섯 가지의 기본전략을 세웠다. ▲지역사와 문화의 재발견과 정체성 확립 ▲지역문화예술 창조력의 재고 ▲전통문화예술의 보존 계승 및 세계화 ▲지역문화시설 공간의 확충 ▲문화유산의 완벽한 보존과 전승 등이다.


 오는 2006년까지 6개 분야 36개 사업에 6천7백97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게 될 이번 사업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문화예술계의 예산으 96년 대비 1.7%가 증가한 4.0% 수준으로 향상될 전망이며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문예진흥기금도 현재 43억원 수준에서 200억 정도로 증가하게 된다. 또 기업과 민간, 자치단체의 참여로 설립될 문예진흥재단 1개, 민간문화재단 4개가 지역문화 발전의 재원을 지원하게 된다. 문화시설도 대거 건립될 예정이다.


중장기계획에 대한 회의


 그런데  문화예술인들은 왜 이 중장기 계획에 대해서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번 중장기계획의 수립은 예산지원 수준에 그쳤던 도 문화정책의 계획과 전략이 수립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관련 인사들은 의외로 현실성이나 내용성 부분에 강한 회의를 표방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산확보에 있다. 중장기 발전계획은 확보와 건설, 설립 등,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야만 실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97년 전체 예산 1조1천2백여원 가운데 문화예산은 233억으로 겨우 2%에 불과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예산은 95년 2백6억에서 96년 2백 25억으로 증가했다가 97년 2백23억과 98년 2백18억으로 감소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올해 2백1억 가운데 도 문화예술회관 건립비 1백5억원을 제외하면 문화계에 투입될 예산은 겨우 1%에 불과하다. 문화예술인들은 민선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의욕은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지원과 예산배분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비춰 중장기계획도 단순히 '계획'에 만 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첫삽을 뜨거나 추진예정으로 계획돼 있는 문화예술중장기계획은 36개 사업가운데 17개 사업으로 3백60억7천 3백만원이 투입될 계획이다.(계획수립당시 98년 투자계획 9백39억4천1백만원) 그 가운데 문화예술행사 지원비가 지난해 총 65개 행사에 8억4천9백만원이었던 데 비해 올해 7억5천6백만원으로 삭감된 것이 예술인들의 우려를 반증하고 있다. 또 문화재 보수정비 5개년 계획은 98년 중 1백1건에 2백2억이었으나 올해 보수 계획은 총 107건에 1백8억9천8백만원으로 하향 조정되는 등 대다수의 사업계획이 예산 투자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예진층위원회 한 위원은 "이번 중장기 발전계획은 현실성 없는 전시행정으로 현실에 비해 너무 화려하기만 하다"고 비판하고 "계획보다 못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 당연할 것으로 보인다"먀 하나의 계획으로 두가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효율적인 중장기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장기계획의 목표는 돈?

 

 궁극적으로 우리는 문화예술발전 중장기계획을 통해 전북문화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고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함으로써 21세기 전북도약의 원동력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광주비엔날레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축제와 이벤트의 모델이 되고 있는 광주 비엔날레에서 대다수의 정책입안자들은 그 성과에 주목하지만 정작 광주비엔날레가 어떻게 계획되고 이를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91년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추진해온 광주광역시는 6대 중점시책을 세워놓고 있다. 문화예술 활도의 활성화와 발굴·보존, 문화예술공간과 인력양성, 그리고 광주 비엔날레의 세계적 축제로의 정착, 문화예술 고부가가치 산업육성 등이다. 이 시책의 골간은 문화예술 활동의활성화, 발굴, 보존으로 이어지는 기반 다지기-인재양성과 시설확보를 통한 지역문화의 힘 강화-특화된 문화기반을 통한 부가가치 생성의 3단계로 이뤄져 있다. 지역성을 살리고 지역문화의 자생력이 제대로 발육하지 않으면 어떤 이벤트나 축제도 성공할 수 없다는 행정당국의 의지가 엿보인다.

 전라북도가 중장기발전계획에 포함시킨 세계소리축제는 그런 의미에서 본 다면 '뒷북'치는 격이다. 광주비엔날레처럼 명실공히 전북의 축제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는 높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소리와 인재들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탄탄히 진행되는 것이 순서에 맞다. 소리를 배우고 또 국악공연을 보기 위해 전북을 찾게 하기 위해서 빼앗긴 '춘향전'을 되찾아오는 것이 더 급하다는 얘기다. 세계소리축제뿐만이 아니다. 이번 중장기계획 대부분의 기대효과는 '세계화, 상품화를 통한 관광수익의 증대'에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큰 부담을 안고 있는 행정직 공무원들의 발상이 문화를 관광·상품화하는데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예술발전중장기계획의 성패여부는 예산에 있고 도의 문화정책은 지역문화를 잘 활용해서 관광수입을 올려보자는데 있다. 문화유산의 완벽한 보존과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추진될 문화재 보수정비 사업이나. 마백 문화유산 정비복원, 유천도요지 복원,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건립 등 어느 것 하나도 보존과 전승이라는 측면에 맞춰져 있기 보다는 관광 활성화에 치중돼 있는 형편이다. 물론 관광수익을 증대시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같은 중장기계획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선 먼저 문화예술의 내용성을 강화하고 그 뿌리가 튼튼해질 수 있는 여건들을 마련해 나갈 때만이 중장기적인 문화의 상품화와 관광자원화가 가능해지지 않겠느냐는 지적을 귀담아 듣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터뷰 도의회 교육·사회위원회 허영근 위원


"문화는 사람의 문제다"

문화예술발전중장기 계획 평가

 

 문화예술발전중장기계획에 대한 도의회 허영근 의원(54)의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이다. "문화는 낙후된 지역경제를 회생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문화예술발전중장기계획이 수립된 것은 그런의미에서 볼 때 발전적이고 진취적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도의회 합창단 지휘자로, 호남 오페라단 이사로 활동하면서 지역문화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허영근 도의원은 중장기 발전계획이 우리 지역문화의 부가가치를 향상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예산확보 문제로 연결되는 실효성 문제에 있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세계소리축제나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등 아직도 재검토해야 할 사업들이 많다"는 허의원은 세계화라는 명분아래 시행될 사업계획에 대해 전세계 모든 서예가와 모든 소리를 집산시켜야만 집안잔치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타시도의 시책들을 모아다가 짜깁기 하는 방식 보다는 지역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형사업이 대부분인 중장기계획에 초점맞춰지다보면 지여그이 문화일꾼들이 소외될 가능성도 크다"는 점도 보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의원은 문화를 사람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지역은 무형문화재가 활동하기에 척박한 토양임은 두말할 나위없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 지역의 훌륭한 인재들을 타시도로 뺏기고 있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 전북이 아니면 전북의 문화를 보고 배울 수 없도록 차별화시키는 전략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중장기발전계획 수립을 위해서는 내용상의 보강보다도 집행의 과감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집행 공무원들의 전문성 문제가 중장기발전계획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그는 "앞으로 추진될 중장기계획의 각 사안마다 민간 전문위원회를 구성한ㄴ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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