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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특집 [민선지방정부 3년의 문화정책을 돌아본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인식'
문화전문관료 확보는 없었다(?)
(2015-06-16 15:33:50)


 1996년 10월 전라북도는 직제개편을 단행했다. 직제개편으로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문화 관광국의 신설은 지역 문화예술계를 술렁이게 하는 모처럼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동안 행정에서 가장 소외받고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던 '문화'가 비로소 민선자치의 시대에 와서 제대로 대접받는 것으로 기대되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말로만 외치던 행정관료들이 비로소 문화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기대섞인 분석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민선정부 3년, 그 가운데서도 전북도 문화관광국의 신설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문화관광국의 신설로 대표되는 행정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노력은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을까.


전문성 확보를 위한 노력들(?)


 시대가 복잡해지고 문화에 상품의 논리가 깊이 개입해 들어올수록 문화정책에서 전문인력의 필요성은 날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문화예술단체 지원활동에만 그치던 문화정책이 보다 폭을 넓혀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적극적인 문화보존·육성 및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면 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즉 지역의 개성이 돋보이는 문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전문관료의 확보와 문화를 이해하는 전문인의 배치가 절실할 것이다.

 96년 문화관광국의 신설을 적어도 행정조직면에서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내무국 산하 말단 부서로만 인식돼 왔던 문화체육과를 문화 예술과와 체육과로 분리하고 다시 문화계와 예술계로 세분화하면서 각각의 독립성을 부여했다. 이것은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조류에 편승해 내린 조치였으나, 그 당시 도내 문화 예술계에서는 행정 전문화를 위한 값진 변화라고 평가했었다. 또 다른 노력으로 문화재의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 11명의 전문위원 충원을 계획, 현재 5개 시·군에 배치를 마친 상태에 있다. 전라북도 문화예술과 박영 전과장(현 순창부군수)은 "문화관광국 신설이후 1-2년마다 부서를 바꾸는 순환 보직제가 없어지면서 사업에 대한 노하우 축적이 가능해졌고 그를 바탕으로 중· 장기적인 계획수립도 가능해졌다."며 여전히 부족한 전문관료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내 문화예술인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형식적인 면에만 치우친 조직개편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예술의 독림성을 보장하고 전문적이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문화관광국을 신설했다면 기본적인 재원의 확충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찾을 수가 없다. 예산은 여전히 바닥에서 맴돌고 전문관료 확보는 전무한 실정이다.

 문화관광국 신설 이후 수립된 96년 문화예술 예산은 206억원으로 전체 도예산의 2%. 95년 1.8%에서 미세한 증가율을 보일 뿐이다. 도 전체 예산이 11% 증가됐지만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문화정책의 중요성만 강조되었지 도의 실질적인 지원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관료 확보 측면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체육과에 문화재 전문원, 조경관, 학예연구사가 각각 한 명씩 배치되어있었고, 도립국악원에 계약직 2명이 근무하던 95년과 3년이 지난 현재의 차이점을 찾을 수가 없다. 신설된 문화예술과에는 문화재 전문원 2명과 학예직 1명만이 배치되어 있을 뿐이며 도립국악원 역시 별정직 1명만이 전문분야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회관의 경우 95년이나 지금이나 전문관료가 한 명도 배치되어 있지 않는 것 또한 전혀 변함이 없다.

 또한 미비하게나마 존재했던 전문 관료직의 임용과 인사정책도 문제점은 여전했다. 95년 10월 도립국악원장 임명에 있어 4급 일반직 공무원을 별정직 공무원으로 바꾸어 배치하면서 전라북도의 전문인 임용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96년 개편된 문화관광국장은 1년에 무려 세 번이나 주인을 바꾸어야 했다. 의욕적으로 문화정책을 추진한다는 도는 제 1대 문화관광국장을 정년퇴임이 임박한 관료를 임명함으로써 8개월만에 임기를 마치게 했고, 제2대 국장은 진안군수 시절 비리문제로 인해 5개월만에 그 자리를 내놓아야했다. 현 3대 국장은 97년 12월에 임명된 상태. 도의 한 관계자는 "문화예술과에 근무한지 2년이 조금 넘으니까 이제서야 문화예술정책의 방향성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2년만에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문화예술분야의 총괄자가 1년에 3번 바뀐다는 것은 문화예술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도의 문제(?)


 이런 현실에 대해 도 관계자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현행 공무원 채용의 문제점-문화행정직 분야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공무원을 채용할 때 문화 행정직 분야를 별도로 채용하지 않기 때문에 문화예술과에 전문관료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문화재는 별도이지만). 그러나 행정처러리가 아닌 부문별 특성이 적극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도립국악원과 예술회관의 경우를 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간 3백여 건 이상의 전시화와 1백 95건의 공연(98년 현재)을 치르는 예술회관에 17명의 직원 가운데 문화 예술전문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국악의 고장을 대표하는 도립국악원의 실정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광주의 경우를 보면 전라북도의 전문관료 확보가 얼마나 미천한 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문화행정직이 없는 관계로 문화예술과에 일반행정공무원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광주도 마찬가지. 그러나 광주시가 직접 관리하는 미술관·박물관·예술회관의 경우는 예외이다. 전문관료의 확보와 배치가 일정 정도 마무리되어 있다.

 같은 공무원제도를 적용하는 전라북도와 광주와 이처럼 차이를 보이는 것은 결코 공무원 채용의 문제만으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문화예술정책을 추진하는 지방자치 단체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전문성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어야


 "이벤트 기획능력을 갖춘 전문인의 충원이 요청되고 있다"는 도청 산하 한 관계자의 말은 그나마 행정관료로서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자칫 문화정책의 전문성에 대한 심각한 오해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문화정책은 근본적으로 상업적인 이벤트 기획과는 차원이 다른 사업이다. 이벤트 기획에 대한 감각이 문화전문관료가 갖추어야 할 덕성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지만 문화전문관료는 보다 문화예술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지역문화 전반 포괄하는 폭넓은 안목을 필요로 한다. '문화'는 이미 밀도있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차세대 첨단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전문관료의 육성은 하루아침에 깜짝인사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현장을 견학하과 문화예술인들과 소통하며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가 진정한 문화전문관료의 양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인터뷰 한서고대연구소 전영래 원장


상을 차려주어도 못 먹는다


지자체의 문화전문성 평가


 원광대 교수와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한서고대 연구소 전영래 원장은 지자체의 관료들이 "문화의 시대를 이야기할 뿐 문화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고 있다."라고 말한다. 문화를 이해하는 전문성이 미천한 관료들의 문화해엉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파괴되고 있다는 지적하는 전 원장은, "진안 도로를 개설하면서 백제유물인 진안산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부안산성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삼례 토성마저 망가뜨리려 하고 있다." 며 전문성 부재의 심각성을 토로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전문성 확보를 위한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문화유산의 해 기념으로 실시한 초등학교 대상 순회강연을 제외하고 직접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시·도의회 의원들을 교육하는 자리는 한번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설명한다.

 전 원장은 비전문가를 전문관료자리에 배치하는 임용정책이나 현 문화재 위원회(문화재 심의결정기구)의 문제도 지적한다. "전문가라고 다 전문가가 아니다"는 것이다. 또한 사무실에서만 앉아서 실제 조사나 발굴작업 하나 없는 위원들이 어떻게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안배 형식으로 임용된 문화재 전문위원(문화재 조사위원)들이 아전인수식 문화유산 지정활동을 펼쳐 실질적인 조사·발굴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빠트리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관료들과 도내 전문가들이 발굴조사와 연구들을 통해 문화예술 및 문화유산 보존을 제안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행정처리를 보며 "전라북도는 상을 차려 주어도 못 먹는다"고 전 원장은 결론 짓는다.

                                                                                                                                              /장세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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