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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 | 특집 [종이 위 작은 기적]
“기록이 붙잡은 삶의 순간들”
삶을 돋아내는 일상의 기록들
황경신(2016-03-15 10:45:35)





반찬 값 걱정, 자식 향한 서운함
엄마의 가계부 일기

안방 문갑 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엄마의 가계부는 10권이 훌쩍 넘는다.
12월호 여성잡지를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빨간 커버의 가계부를 받기 위해서였고, 가계부에 적은 지출금액과 현금이 맞지 않으면 밤새 잠이 안 왔다. 콩나물 값, 두부 값이 빼곡이 적힌 지출항목 보다 눈길 가는 곳은 위 아래 자리한 빈 칸에 꾹꾹 눌러쓴 엄마의 생활촌평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300원, 500원이 더 오른 반찬거리 물가를 타박하는 엄마의 걱정에 얼마 더 붙여 부른 책 값이 후회된다.
가계부라고 생활의 쫀쫀함만 있을까. 따로 일기장을 갖고 있지 않은 엄마는 가계부 이곳 저곳에 그때그때의 심경을 털어놓고 있었다.
해놓은 반찬만 달랑 들고 가는 딸 자식이 서운했고, 베란다 창 밖으로 날리는 낙엽은 해가 다르게 늘어가는 흰머리도 감출 수 없는 나이 임을 확인시켰다. 갑상선 수술을 해야 한다는 둘째 딸 소식에는 어김없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눈물 자욱 맺힌 한 줄이 전부다.



그 때 그 시절 우리 할머니,
손자손녀가 써내려간 특별한 자서전

어렸을 적부터 영리해서 별명이 '여시(여우)'였다는 손계은 할머니는 노래를 잘해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시계공장을 운영하다가 영업사원의 잘못으로 큰 빚을 지지고 사업을 정리한 사정, 리어카를 끌며 고물을 모으던 이야기. 이야기를 들어도 상상이 가지 않는 그 때 그 시절. 평범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손자손녀 뻘 아이들의 손으로 쓰여지고 그려졌다. 손 할머니의 목소리를 녹음기에 담아 글로 풀어내고, 그림을 그린 작가들은 바로 김제 치문초등학교 아이들. 이 특별한 자서전 'A letter from grandmother(할머니로부터의 편지)'는 전라북도교육청의 세대 간 소통을 위한 프로젝트에 의해 출간, 아이들과 할머니는 이제 서로를 기다릴 만큼 끈끈해졌다. 지난 2월 15일 전북도교육청에서 열린 '특별한' 출판기념회에서는 초중고 학생 52명이 할아버지, 할머니 28명의 삶을 기록한 책 15권이 소개됐다. 무주중학교 양채연 학생이 고복녀 씨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인생', 부안 백산중 학생 8명이 김성철 씨 등 할머니·할아버지 10명의 삶을 엮어낸 '응답하라, 나의 청춘', 전주사대부고 학생 8명이 양기순 씨의 인생사를 적은 '산너머 산이랑께' 등 다양한 삶의 기록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모두 책으로 만들어졌지만 할머니·할아버지가 가정사 부분의 공개를 꺼린 탓에 공개되지 못하는 책도 더러 있다.







60년의 세월이 담겨진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

'너를 낳은 시간: 단기 4278년, 서기 1945년 8월 13일(음력 7월 6일). 새벽 3시 15분. 나는 모든 엄마가 하듯이 죽음을 걸고 너를 낳았다. 너의 첫 울음소리는 몹시 맑고 뾰족하였다.'
'30년 전 막내딸을 시집보낼 때나 요즘이나 혼수니 예단이니 하는 허망 된 습관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식의 결혼이 축하할 일이 못 되고 눈물 흘릴 일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는 아이의 성장기록을 넘어선 가족사이다. 다섯 남매(1남4녀)의 엄마였던 박정희 할머니는 23명의 대가족 일상에서는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가족의 모습과 삶의 현장을 기록해나갔다.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미처 전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마음까지 살아 숨 쉬는 엄마의 이야기에서 육아와 가족에 대한 의미가 오롯이 전해진다.
다섯 남매(명애, 현애, 인애, 순애, 제룡)에 관한 육아일기(1부 1945년~1960년대 중반)와 23명이라는 대가족을 꾸려온 박정희 할머니의 가족 이야기(2부)로 구성, 종이 한 장도 귀한 시절 이면지를 이용해 만든 일기장에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 손으로 글을 쓸 줄 알 때까지 어떻게 태어났으며 자랐는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원하는 것을 모두 선물하고픈 마음을 가진 부모들에게 박정희 할머니는 진정 우리가 물려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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