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6.6 | 특집 [여행은 일상이다]
풍경과 사람, 그리고 주변이 머무는 여행
문성희(2016-06-16 14:19:26)




가장 작은 단위의 우주, 텃밭에서 이뤄지는 축제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간다. 넘쳐나는 미디어와 정보에 눈과 귀는 쉴 틈이 없다. "어제 그거 봤어?", "너 거기 가봤어?", " 너 그거 먹어봤어?" 등등 내 손 안의 작은 세상 스마트폰은, 하루 종일 재잘재잘 떠드느라 바쁘다. 스마트폰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느라 우리의 생각은 쉴 틈이 없다. 그래서인지, 딱히 하는 것이 없어도 삶에 피곤함을 느낀다. 머릿속은 쉴 틈 없이 생각을 하지만 그 많은 생각 속, 내 진짜 생각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옆 사람과 여행을 하는 건지, 스마트폰과 여행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다. 맛있는 맛집을 검색하기에 바쁘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 유명한 곳을 사진으로 인증하기에만 바쁘다. 그렇게 '유명한' 곳으로만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만 봐도 메인거리라 불리는 곳에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그 외 한 두 블럭만 벗어나도 사람들의 발길이 한산하다. 우리는 너무 똑같은 모습으로, 공장에서 찍어놓은 듯 여행을 한다.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비슷한 풍경들뿐이다. 주변을 볼 시간도 없고, 함께 공간을 여행을 하는 사람들과 상냥하게 인사할 여유도 없다. 이렇듯 우리의 여행은, 너무 단순해 졌고, 빨라졌으며, 그리고 주변이 없어졌다.


걷는 속도 = 생각의 속도
나는 낯선 곳에 도착해 느끼는 설렘과 그 이면에 공존하는 두려움을 좋아한다. 혼자 여행의 처음 시작은, 20대 중반쯤. 제주도 올레길 여행이었다. 3박 4일 내내 나는 제주도에서 걷기만 했다. 방향을 알려주는 파란색 주황색 띠와 바닥과 벽에 보일랑 말랑 표시해 둔 이정표를 보며, 하루 종일 8시간 이상을 매일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딱 걷는 속도만큼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만큼의 속도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속도. 나는 걷는 여행을 통해 그 속도를 찾아 갈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시간만 되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걷기를 즐긴다. 어느 여행을 가서도, 걷기는 필수코스다. 특히 올레길이 만들어 지고 난 후부터 걷기 좋은 여행길이 많이 생겼다. 소비만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여행길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하거나 대화하고, 주변의 풍경과 자연을 관찰하고, 그곳에 오롯이 존재했던 과거의 흔적들을 느껴 볼 수 있는 여행. 주변이 있는 여행. 걷기 여행을 하면서 걸음으로써 모든 길은 여행이 되고, 새로움이 되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방황하는 위험한 계절
'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인 채로 인생의 허무와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뜨며, 사랑과 성의 열병을 앓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방황하는 위험한 계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문구다. 이 문구를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수첩에 적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방황하는 위험한 계절이라는 문장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지금 청년들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을까? 사실, 바쁜 삶 속에 청년들은 의미를 찾을 시간조차 뺏기고 있다. 그럴 때 일수록 청년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봐야한다.
나침반으로 자기 삶의 방향을 찾으며 지금의 나와 마주하는 연습을 하지 못했던 우리의 청년들은, 아직 어떤 모습이 나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일에 가슴 뛰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올레길을 만들었던 서명숙 이사장도, 나름 승승장구하며 평탄한 삶을 마주한 40대에 직장을 때려치고, 어머니와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산티아고 까지 갔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길 원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위험한 계절에게 순풍을 불게 할 수도, 비바람을 몰아치게 할 수도 있는 거대한 사건이다. 빠른 속도로만 삶을 살아가고, 자기의 생각은 점점 없어져가는 세상에서, 청년들은 여행을 통해 자기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여행이 아닌, 뭔가를 더하려는 여행이 아닌, 머물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주변을 볼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의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획들이 각각의 지역에서 운동처럼 번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