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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 | 칼럼·시평 [문화시평]
배우들의 활발한 움직임, 살아있는 무대와의 조우
시립극단 < 모자를 바꿔라 >
김소라(2016-07-15 09:29:09)




고양이를 쉽게 다루려면 어디를 잡아야 할까? 목덜미다. 목덜미만 잡으면 고양이를 잘 다룰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다루려면 어디를 잡아야 할까? 그렇다. 바로 마음이다. 사람은 몸이 아닌 마음을 얻어야 움직이는 존재다. 이번 시립극단에서 올린 제 107회 정기공연 "모자를 바꿔라"는 한 가족이 신기한 모자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 지 배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공연은 코러스들의 재밌는 노래로 시작하지만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실수로부터 시작된다. 낚시가 취미인 할아버지는 아들이 놓고 간 모자를 위층 아저씨의 모자와 바꾼다. 사실 아들의 모자에는 신비한 힘이 있는데 누구든지 그 모자를 쓰는 사람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밀을 모르고 가족들은 위층에 올라가 시끄러운 합창 연습을 그만해 달라고 하지만 모자를 쓰고 있던 위층 아저씨는 오히려 시끄러운 사람이 이사를 가라는 말을 한다. 가족들은 아저씨의 말대로 즉시 이삿짐을 싸기 시작하고 그 때 집에 놀러온 고모는 갑자기 이사를 간다는 가족들이 이상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본다. 곧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고모는 위층에 올라가 모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동안 가족들에게 일어났던 일주일의 일들을 연극으로 구성해 보자고 한다. 가족들은 출장 간 아빠가 깜박 잊고 간 모자를 쓰며 지난 시간을 되돌려 본다. 마침내 모자의 비밀을 알게 된 가족들은 이 과정을 통해 소통의 부재와 자신밖에 몰랐던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게 된다. 

이 공연의 원작은 파울 마르(Paul Maar)의 "모자 바꾸기"다. 그는 독일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에게 주는 '독일 청소년 문학상'등 많은 상을 받은 작가다. 원작이 연극 놀이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공연은 교육적 차원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모자를 쓰기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구성원들은 스스로 모자를 포기하며 동등한 주체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서로 화해하는 장면은 권력의 과시보다는 권력의 분배가, 타인을 억압하는 권력보다는 자발적 권위에 대한 순종이 이 시대 가정과 사회에 필요함을 역설한다. 작품의 해석은 교육적 차원의 메시지에서 연극의 미적인 영역으로도 확대를 꾀한다. 사물은 무대에서 직접적인 언어가 될 수도 있는 바, 마네킹을 통해 꿈의 장면을 해석하거나 의인화된 모자를 통해 은유로서 작용하는 공상의 세계를 나타낸 점은 공연예술의  미학적인 측면을 경험하게 한다. 요즘 청소년 연극은 학교 폭력과 성적 문제 등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루지만 이것을 뛰어넘어 학생들에게 예술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미적 쾌감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우선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연극 평론가 김영균은 아동 및 청소년 연극에서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친숙함이고 둘째는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마지막이 혹독한 수련에서 오는 전문성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모자를 바꿔라"는 신체연극을 표방한 만큼 배우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살아있었다. 또한 소품의 다양한 활용을 통해 상상력도 자극했다. 시립 배우들의 평균 연령을 고려할 때 부단한 노력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하지만 극 중 배역이 실제 청소년과 얼마나 친숙한 인물인지는 의문이 든다. 기존 청소년 연극에서 수 없이 지적한 문제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작위적인 인물 설정 또한 지양해야 될 부분이다.
오래 된 이야기지만 독일 "지하철 1호선"을 극단 학전이 수정 번안하고 각색했을 때 작품은 완전히 한국의 뮤지컬로 재창조되었다. 원작자인 폴커 루트비히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깊이로 재해석된 작품"이라며 공연 3000회를 돌파 했을 땐 저작권료 일체를 면제해주었다. 이후 극단 학전은 여러 편의 독일 아동극을 번안하여 공연을 올렸다. 그 중에 "우리는 친구다"라는 작품이 있다. 주로 교육극을 연구한 오판진 작가는 "우리는 친구다"에 나타난 번안 원리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원작의 장을 유지하면서 강화하기. 둘째 원작의 한계 발견하고 수정하기. 두 번째 원칙의 세부 항목에는 ' 우리 문화 반영하기' '새로운 내용 첨가하기' 가 포함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이번 "모자를 바꿔라" 공연은 원작의 상당 부분을 각색한 만큼 더욱 치열한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단지 모자를 통한 교훈적인 차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주요 배역의 인물 형상화부터 생명력을 부여 한다면 청소년들이 자신과 무대 인물을 비교해 보며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질문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경기가 불황이라 그런지 일반 극단에서는 아동 및 청소년 극을 잘 만들지 않는다. 공부하느라 바쁜 아이들이 공연장까지 오기도 힘들고 설령 온다 하더라도 성인연극보다 낮은 티켓 가격 때문에 적자만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공연장에 가면 대형 캐릭터를 앞세워 상업성으로 승부하는 아동극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온 가족이 함께 공감하고 정서적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공연은 제대로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번 시립극단이 올린 가족극 "모자를 바꿔라"는 온 가족이 즐겁게 보고 난 후 집에 돌아가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반가운 공연이었다. 앞에 앉은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손자까지 3대가 와서 공연 내내 즐거워하는 표정과 집중하는 모습은 여름밤 무더위를 날리는 상쾌한 바람 같았다. 바람을 안고 집에 오는 길목에서도 아련하게 들려오는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뜨거운 박수 소리가 내내 가슴에 남았다.
앞으로 시립극단의 더욱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변화를 바라며 다음 공연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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