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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 | 칼럼·시평 [문화칼럼]
사드 배치, 우선 시간이라도 벌어야 한다
진성준(2016-09-19 09:17:55)

미국이냐 중국이냐? 사드 배치는 결국 이 문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편에 설 거냐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란 빠른 속도로 성장해 오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여 패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미 해·공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시키고있다. 미사일방어체계(MD)는 그 핵심에 해당한다. 미국이 성주에 들여오려는 사드가 MD의 일부분임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해군은 2020년대 후반에 건조될 차기 이지스함 3척에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통합전투체계인 '베이스라인9'를 장착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통합전투체계가 장착되면 탄도미사일을 150~500㎞ 고도에서 요격할 수 있는 SM-3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게 된다. 국방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부인했으나, 사드에 이은 SM-3 도입은 MD 참여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그러므로 중국이 MD를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사드 배치에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MD는 '상호확증파괴전략'에 입각한 중국의 핵·미사일전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므로 양국 사이의 전략적 균형이 무너지고 중국은 군사적 열세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AN/TPY-2, X-밴드 레이더)가 중국의 탄도미사일 동향을 훤히 들여다보게 되지 않는가? 한류 금지, 비자 제한 등 중국의 보복조치가 시작되었다.


사드가 우리에게 별 효용이 없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남북간의 '전장 종심'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북한이 바보가 아니라면 값비싼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각도를 높여 가면서까지 쏠 이유가 없다. 그저 단거리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훨씬 많이 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드의 요격범위에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중·장거리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사드에 걸릴 고각이 아니라 저각으로 발사하면 된다. 국방부장관도 서울이 사드의 방어권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우리의 최대 위협은 일본 열도와 태평양을 넘어서 날아가는 중·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남한을 직접적인 사정거리에 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과 장사정포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최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군사적 상식에 속한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로 사실상 사드 배치를 묵인하는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한미동맹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차라리 솔직하다. 사드 배치가 군사적 실효성은 없지만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니 한미동맹 차원에서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미국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들여오는 사드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선 자위권적 조처라고 강변한다. 미국의 요청이 없으므로 논의도 없고 따라서 결정된 바도 없다는 '3노(NO)정책'을 하루 아침에 뒤집어버린 데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더 나아가 사드 배치에 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하고 사드에 반대하는 국민을 북한이나 중국을 편드는 자들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국민이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대통령과 정부에 분노하고 모호하기만 한 야당에 실망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국가이익을 사수하려는 치열한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의 거듭된 MD 참여 요구를 기술적, 재정적 한계와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단호하게 거부했다. 더 나아가 미사일방어조약(ABM Treaty)을 파기하고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려는 미국에 대하여 "미사일방어조약은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핵무기 감축 및 비확산에 대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기반"(한·러 정상 공동성명 2001. 2. 27)이라며 맞섰다. 그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겪어야 했던 외교적 수모와 고초는 상상 외로 컸으나 균형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고 국가이익을 지키려는 대통령의 고뇌와 노력은 우리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과 똑같은 모습을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난망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지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일단 양자택일의 곤궁한 상황만이라도 모면해 보려는 노력을 기대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인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정부의 딱한 상황을 우선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국회가 사드 배치에 따른 정치군사적 득실과 경제외교적 손익을 판단하는 동안만이라도 시간을 벌어 미국과 중국 둘 다 놓치지 않는 제3의 길을 찾아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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