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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 | 칼럼·시평 [문화시평]
뜨거운 메갈리아 논쟁. 티셔츠 한 장이 뭐라고!
메갈리아 논쟁
이윤애(2016-09-19 09:40:11)




연일 폭염으로 한반도가 타들어간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리우올림픽중계는 열대야를 식혀주기보다는 중계방송 속의 수준 낮은 성차별적 표현이나 경기력과 상관없는 여자선수들의 외모에 대한 평가로 불쾌감을 상승시킨다.
올림픽보다 앞서 온-오프라인에서는 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여성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슬로건이 적힌 한 장의 티셔츠가 발단이 되었다. 페이스북 측이 여성주의 페이지인 '메갈리아'를 일방적으로 폐쇄한 것에 대한 항의표시와 새로운 페이지 개설을 위한 기금모금 프로젝트 티셔츠였다.
한 여성이 페이스북에 티셔츠 인증샷을 올렸다. 이 여성은 한 게임회사에 소속된 성우였다. 게임사용자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치자 회사는 성우를 교체했다.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정의당에서는 즉각 기업의 노동권 침해로 규정하고 논평을 냈다. 그러자 당원들이나 누리꾼들로부터 메갈리언을 옹호하는 것이냐, 정체성을 밝혀라, 탈퇴하겠다는 강력반발에 결국 공당의 쪽팔림을 감수하면서까지 논평을 철회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진보논객 진중권교수도 티셔츠논쟁에 '해도 너무한다. 나도 메갈리언이다'라는 비판칼럼으로 응대했으나 집단공격을 받자 마녀사냥이라며 절필을 선언했다. 노사모 대표일꾼이었던 노혜경시인도 에스엔에스 상에서 메갈리언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무차별공격을 받았다. 메갈리아에 대한 객관적 의사표명 마저도 '메갈 지지자'라며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올 여름 대한민국에서는 마치 '메갈리언과의 전쟁'을 치르는 듯 했다. 티셔츠 한 장으로 공당이 입장을 바꾸고 '십자가 밟고 가기'처럼 스스로 메갈리언 지지자가 아님을 증명하도록 압박하는 힘은 진보정당이나 진보지성마저도 쩔쩔매게 만들었다.
'메갈리아'의 탄생은 작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메르스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단은 메르스갤러리에서 "메르스도 한국의 개념 없는 여자들 때문에 확산됐다"라는 글과 함께 마스크도 안쓰고 돌아다니는 여성관광객 사진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메르스갤러리에 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베를 중심으로 여성혐오나 성범죄, 성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용자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오던 시기여서 자연스럽게 반여성혐오적 연대가 형성되었다. 이들 연대는 독립적인 페이지 '메갈리아'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메갈리아'는 메르스갤러리와 이갈리아의 합성어로 '이갈리아'는 여성주의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책에서 차용한 용어이다.
메갈리아의 사용자 메갈리언들의 활동방식은 '미러링(mirroring)'이다. 상대의 행위를 거울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미러링 방식의 기대효과는 역지사지의 공감능력의 발현이었다. '내 행동이 그랬었구나', '좀 심했네' 등과 같은 반성을 촉발시키기 위해 시도한 방식이었다. 더 나아가 그동안 남성들의 여성혐오 언어를 전복시키거나 여성혐오집단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조롱할 의도도 분명 있었다. '김치녀'로 시작된 여성혐오의 언어를 '씹치남'으로 되받아쳤다. 여자들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는 중요한 의미이다.
그러나 미러링 방식으로 자신들의 외모가 평가되고 폄하되는 것에 대해 남성들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메갈리언들의 언어나 행위를 남성혐오로 인식하면서 '여자일베'로 규정해버리거나 절대악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마치 정의로운 행동인 것처럼 여겨지는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의도는 간과하고 맥락을 무시한 채 단편적이거나 과격한 면만을 확대·부각시켜 문제 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다.
미러링은 남성혐오가 아니다. 여성주의자 벨 훅스가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정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메갈리언의 미러링은 '여성혐오를 혐오'하려는 전략이다. 메갈리아 활동범위도 '성폭행 할 사람은 여기 모여라'는 소라넷과 같은 폭력적이고 저급한 성문화에 대한 퇴치운동을 주도하거나 강남역 살해사건 등과 같은 여성혐오 범죄를 지적해 사회문제로 드러내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대다수가 성차별이나 여성혐오의 문제가 개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깨닫고 공분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메갈리언들의 행동은 정치적 연대활동이다. 즉 여성들이 안전하게 생존하기 위한 연대방식이다. 이런 활동들도 남성혐오라 딱지 붙이려 든다.
혹자들은 여성혐오를 용어의 과잉으로 보는 이들도 종종 있다. 또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낯설다고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잉이라 말할 수 없고 전혀 낯설지 않는 이유는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성차별적 행위와 사회구조, 문화가 사실은 여성혐오적 태도로부터 기인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연예인은 에스엔에스에서 여성혐오 진단표를 만들어 일상속에서 점검해 보자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여자에게 지시를 받으면 왠지 기분 나쁘다, 밥은 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공간 지각력이 떨어져서 운전을 못한다, 여자에게는 큰일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말머리마다 '여자는'을 붙인다, 그래도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여자가 (섹스를) 밝히면 좀 그렇다, 여자는 좀 모자란 듯해야 매력 있다, 여자는 감정적이라 이성적인 판단을 못한다, 기가 센 여자는 별로다, 여자들 사이에 진정한 우정은 없다…' 등등
말 많았던 티셔츠 판매의 목표치는 1천만 원 정도였다고 하는데 1억 5천만 원치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올여름 서점가나 출판계는 페미니즘 서적으로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다른 세상을 기획해 보자'는 운동도 시작되고 있다. 이제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분명한 흐름이 되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성평등 운동에 동참하고 싶어 티셔츠 한 장을 구입했을 뿐인데 일로부터 분리시키고 티셔츠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집단공격을 유발하는 당사자들에게 합리적 답을 듣고 싶다. "여성혐오가 아니었다는 증거를 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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