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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 칼럼·시평 [문화시평]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정기연주회 ‘천년지악(千年之變)’
천년 역사 담은 관현악, 천년 음악 잇길
김보현(2016-12-16 16:21:40)




국악의 가치가 원형을 보전하고 전승하는 데 머문다면 과거의 것에 불과하다. 전통이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원류에 시대 의식을 반영한 새로움이 더해져야 한다. 국악에도 창조와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11월 16일과 1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열린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의 정기연주회 ‘천년지악'은 백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북의 천 년 역사와 전통을 이야기하면서도 풀어내는 방식은 실험적이었다. 전북의 역사를 주제로 한 창작관현악을 선보인 기획성이 호평을 받은 이유다. 다만 구현된 무대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립국악원 관현악단은 올해 국악원 개원 30주년과 지난해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백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북의 과거, 현재, 미래를 국악관현악으로 들려줬다. 이 땅에 흐르는 천년의 숨결을 이어 받아, 앞으로 천년의 음악을 만들어가겠다는 야심찬 의지를 담았다.
천년 역사 속에서 태초를 시작으로 백제의 탄생과 융성, 백제의 영웅 견훤의 삶, 임진왜란 등에 맞서온 항쟁의 역사, 근현대사 속 전북 등 6개의 주제를 선정했다.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에 맞는 창작국악 관현악 6곡을 새로 작곡했다. 도내 작곡가인 강상구 강상오 이승곤 안태상씨가 참여했다. 시대적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연과 어울리는 무용과 영상도 더했다.
국악관현악 공연에 서사적 구조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평소 연주에 잘 쓰이지 않는 백제의 고(古)악기 공후, 생황, 배소, 종적이 동원되고, 서양중창단과 소프라노, 서양타악기인 팀파니 등도 무대에 섰다. 과거와 현재의 전통 음악을 동시에 선보이는 한편, 서양 음악도 우리 음악에 녹여내 전통 음악의 스펙트럼을 전방위적으로 넓혀가겠다는 의도다.
화려한 위상을 추억해서인지 무대는 대체로 역동적이고 성대했다. 이승곤 작곡가의 ‘백제의 꿈'은 초반 리드미컬한 연주로 시작해 후반부에는 시조창과 함께 관현악이 연주되는 노래곡 형식으로 구성했다. 강성오씨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견훤'에는 공후, 배소, 생황, 종적이 부분적으로 등장해 청중들을 귀 기울이게 했다. 안태상씨의 ‘약무호남, 시무국가'에서는 엄중한 국악관현악의 흐름 속에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결의를 표현하는 판소리 합창이 이어졌다.
단순히 관현악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 곡들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특히 전북의 역사를 풀어낸 것은 기획력도 좋았고 공립예술문화단체로서 역할과 고민도 엿보였다. 검증되지 않은 초연곡들만 선보이는 것도 도전이었지만 단원들의 탄탄한 기량에 김성진 객원지휘자의 섬세한 리더십이 더해져 비교적 안정적인 연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4명의 작곡가가 참여하다보니 전체적인 무대 흐름과 분위기의 통일성이 미흡했다. 개별 곡에서도 시대적 이미지와 이야기가 잘 드러나지 않아 악보에 주제를 끼워 맞춘 것처럼 다소 어색했다.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주제와 구성, 줄거리에 맞춰 곡을 의뢰했음에도 그동안 이들이 선보였던 작품들과 이번 무대가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었다. 곡과 주제의 연계성이 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기획의도가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다양한 시도 중 하나였던 백제 고악기 연주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성량 자체가 작은 고악기는 다른 국악기와 소리 균형이 맞지 않아 협연이 힘들다고 한다. 백제 음악을 단적으로 상징하기엔 적절했지만 소리가 튀거나 묻혀 음악적 감동을 더하지는 못했다. 무대에서 연출적으로도 부각되지 못했다.
소프라노 솔로나 중창단, 창극단의 합창, 무용, 영상 등은 무대의 화려함을 더했다. 일부 곡에서는 악기 선율과 목소리의 웅장함이 더해져 더 깊은 울림을 냈다. 하지만 모든 무대에 연출을 집어넣으면서 일부 어색한 조합은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현악단의 연주는 가려졌다. 정기공연인 만큼 관현악단이 주인공이 돼야 하는데도 부수적인 연출들이 더 시선을 끌었다는 평가가 컸다. 한 곡쯤은 단원들의 역량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순수 관현악이 구성됐어야 한다는 국악인들의 의견도 나왔다.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은 지난해에도 정기공연에 단원과 객원 출연자들 간의 협연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렸었다. 차이가 있다면 지난해는 전통과 보전을 중심으로 명인·명창들과 함께 공연했고, 올해는 실험과 대안에 무게를 더 실었다. 협연을 통해서도 관현악단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매년 관현악단이 객원에 가려진다는 평이 나왔다는 점에서 공연의 방향성 또는 완성도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악원은 이번 작품 중 일부를 다듬어 고정 레파토리 작품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국악원의 30년을 돌아보면 수많은 크고 작은 공연들을 올렸지만 이렇다 할 대표 곡목이 없었다. 전국에서도 손꼽는 역사와 역량을 가진 공립예술기관으로써 아쉬운 일이다.
분명 관현악단의 이번 정기공연은 의미와 성과가 있다. 실험적 시도는 앞서 말한 대로 국악 발전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기획성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만큼 곡과 연출 등의 완결성을 보완한다면 국악원의 스펙트럼도 확장될 것이다. 이번 공연이 수정·보완돼 앞으로 천 년을 이어갈 국악원의 대표 레파토리로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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