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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 | 칼럼·시평 [문화칼럼]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밝히는 촛불
김용택(2017-01-20 10:18:47)

어제의 말이 오늘 다르게 들리고 오늘 절실했던 말이 내일은 설득력을 잃는다. 격동이란 말들이 격렬하게 부딪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촛불은 시대적인 사명을 다 한 낡은 말들을 정리하고 새 말을 찾자는 국민들의 열망이다. 기득권 세력들의 시대착오적인 말들이 그 시효를 다 했다는 증거다. 식민지 잔재를 이은 부패한 유신세력의 몰락은 고스톱 용어로 말하면 '자 뻑'에 가깝다. 자 뻑은 고스톱을 친 멤버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부정과 부패에는 반듯이 협력자들과 방조자들이 득을 같이 나누기 마련이다.

87년 체제가 들어서면서 민주주의는 뒤로 물러 설수 없는 말인 줄 알았지만, 이명박과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목숨을 바쳐 이룬 민주주의 대한 모욕이었다. 우리들에게 경제 위기라는 말은 늘 위협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들은 또 다시 박정희 경제성장신화의 향수를 따라가고 말았다. 민주주의는 뒷걸음 치고 권력의 엄호를 받고 성장해 온 재벌들은 성장을 볼모로 권력과의 부당한 흥정을 대를 이어 지속시켰다.

문화는 체제를 지탱시켜주는 나라의 혼이다. 문화는 철학 없는 대통령과 재선만을 노리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좋아 하는 축제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끊임없이 문화로 교육된다. 그 동안 군사 문화를 청산 하지 못한 자리에 경직된 관료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예산을 지원하는 손이 문화의 주인노릇을 해 왔다. 국가 기관의 무사안일주의와 경직된 관료주의의 총체적인 적폐는 '세월호'에서 그 끝이 어딘가를 청와대가 보여주었다. 따라서 지방 토호세력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터전이 된 '지방 토호 자치'는 재선을 위한 단체장들의 사업장이 되어왔다. 이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점수와 경쟁에 매달린 이 나라 철학 부재의 대학교육은 지성을 포기하고, 공동체적인 건강한 발전을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몰아가는 일종의 고급취업'학원'이 되었다. 어떻게 하든 돈을 벌고 출세만 하면 된다는 사회정의의 타락은 치명적인 사회양극화를 초래했고 사회전반에 걸친 도덕과 윤리의 몰락을 부추기고, 상식과 원칙을 몰아냈다. 온 나라에 좀비들이 득실거린다.

한 시대를 정리하는 말의 들고 나오는 것은 언제나 민중들이었다. 집회현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연단에 올라 서툴게 외치는, 그 떨리는 말들이 얼마나 절절한가. 늘 정답이 하나라고 강요받아 왔던 시험지 앞에 이게 답이 아니라고 거세게 항의 한 것이 20대 총선이었다. 새로운 촛불은 거기에서 발화되어 오늘로 이어졌다. 남과 북, 가짜 보수와 낡은 진보, 전라도와 경상도 중 하나의 답만, 하나의 정면만을 강요받아 왔던 정치구도를 깨트린 것이다. 진영논리와 패권주의, 독선과 배타적인 배격을 일삼는 패거리조폭 수준의 정치 지형을 깨트렸던 시민들의 선거혁명은 오늘의 촛불로 타 올랐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저 거리의 촛불은 단순히 지도자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개조하는 전반적인 사회개혁을 원한다. 시민들이 차려놓은 이 엄숙한 경고와 아름다운 협박의 밥상을 제대로 받아 들지 못하고 수저만 들고 뜨뜻한 아랫목에 앉으려드는 세력들은 도태 되고 소멸 될 것이다.

87년 체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적으로 그 역사적인 명운을 다 했다. 우리들은 한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를 틀고 앉은 낡은 세력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하고 얼굴을 바꾸어가며 기득권을 누려 왔다. 우리 지역 문화 예술계도 그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학과 다른 예술장르의 인적 구성원들을 볼 때 신진세력들의 등장이 필연적인데 그 대가 끊겨가고 있다. 새로운 작품과 그 작품에 따른 공연의 순환이 문화 예술 흥망성쇠의 열쇠다. 새로운 작품 생산 없는 공연은 문화를 시들게 하고 소진 소멸시킨다. 눈에 뜨이게 꼬리가 자라지 않고 몸통이  잘려나가고 있는데,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그 얼굴을 가지고 그 자리를 맴돌면서 패거리를 새로 만들어 지루하고 고루한 사업들을 우려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문화예술은 갈수록 초라해진다. 문화는 얄팍한 일회성 전시용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문화의 융성'은 오래 된 마을의 징검다리를 부수고 그 위에 새로 다리를 놓는 건설사업이 아니다.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세상을 밝히는 촛불은 모든 기득권 세력을 불사르고 있다는 것을, 이대로 살다가는 우리가 다 어둡고 추운 밤으로 쫓겨 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항거하고있다. 집회 때마다 소등과 점화를 거듭하는 그 깊은 뜻을 우리들은 안다. 우리가 촛불을 끌 때 기득권세력들은 암약한다.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말을 우린 찾아냈고 또 확인했고 확신 한다. 이러다가 어차피 우리에게 표를 줄 것이고, 이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촛불은 또 사그라질 것이라고 행여 꿈 꾸지 말라. 우린 이제 믿는 구석이 생겼다. 꺼질 것 같았는데 다시 타오른 촛불은 경고한다. '이제 우리가 나라를 가지고 간다!' 촛불 끝에서 새로운 권력은 탄생 할 것이다. 정치적인 긴 잠에서 깨어 살아난 젊은이들은 시대의식은 촛불 끝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 우리도 이제 인간다운 희망과 행복을 말할 수 있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문화저널'은 새로운 '문화'와 '저널'을 꿈꾸며 87년에 태동했다. 열악한 문화예술적인 토대위에서 놀랍게도 문화저널은 끈질기게 그 사명에 복종 해왔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우리는 또 다른 말을 찾아 나서야 한다. 새로운 30년 앞에 선 '문화 저널'이 설자리와 갈 길은 멀고 험하다. 촛불이 밝힌 그 빛으로 길을 찾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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