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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 | 칼럼·시평 [문화시평]
한류(寒流)를 녹여내는 촛불!
유상우(2017-01-20 11:13:37)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들고 가요계에 등장했던 1992년, 나는 막 스물이 된 대학 새내기였다.
때는 노태우정권 말기였으며, 민주정부 수립의 열망이 무척 큰 한 해였다. 우리는 '난 알아요' 보다 '민중가요'를 더 많이 불렀지만 노래방에 가면 서태지의 음악을 열창하기도 했다.
당시 멜로디와 서정성 짙은 트로트 혹은 발라드 음악이 주류였던 한국가요의 틀에서 벗어난 서태지는 젊음을 열광케하는 자유스러움이 있었다. 그해 어느 프로그램에서인가 처음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가 있었는데 심사위원들의 혹평이 인상 깊었다. 그 방송이 나가고 서태지는 한국가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우리가 서태지의 신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가 던진 사회에 대한 메시지였다. 학교교육의 문제점 혹은 분단 등의 내용을 음악에 담아내었다.
1993년 이후 문민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서해훼리호 참사,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허약하고 거짓되었나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기성세대가 만든 고학력의 세태 속에서 고졸 중퇴의 서태지는 대학에 갇힌 우리들에게 참신했으며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 세대는 80년대를 거치며 극심한 가난을 겪지 않았고, 87년 6월 항쟁의 영향으로 학교도 예전처럼 병영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밤별이 뜬 야간학습을 마친 늦저녁이면 왜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고뇌를 했다. 이것이 나와 나라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친구들과 학력고사를 앞두고 백일주를 마시며 괴로워했다.
우리는 20년의 생애동안 서태지의 음악을 잘 흡수할 수 있는 귀명창이 되었던 것이다. 마치 70년대와 80년대의 젊은 청춘들이 군부독재시절의 암울함을 통키타와 청바지, 장발, 생맥주, 미니스커트로 견뎌낸 것처럼.
서태지는 은퇴했지만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에 의해 90년대 후반부터 한류가 세계 각지에서 움트기 시작한다. 한류는 대중음악과 드라마 등에서 출발을 했지만 갈수록 문화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억눌린 사회분위기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밝고 역동적인 한국의 대중문화는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 한류의 토양을 만든 이들이 지금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4.19혁명, 5월 광주, 87년의 뜨거운 여름 등 고비마다 우리사회는 변화와 혁신을 시민들이 이루었다. 그런 힘들이 사회를 정화하고 퇴행에 발목 잡히지 않으며, 자유분방하게 외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한류는 어느 특정 기획사나 단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열망한 시민들의 값진 희생과 역사로 만든 공동의 재산인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차은택은 박근혜정부에서 문화융성추진위원을 맡고 이후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된다. 관련 기관인 문체부에는 그의 스승 김종덕이 장관에 임명되고 한국컨텐츠진흥원장은 차은택의 지인이 차지한다. 청와대의 교육문화수석 또한 차은택의 외삼촌이 자리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은 냉정하게 예산지원이 끊겼지만 그는 승승장구하며 그가 관여한 사업마다 막대한 정부예산을 증액시킨다. 뿐만 아니라 미르재단 설립 등 각종 인허가나 계약 등도 하루아침에 처리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들의 측근들을 각 영역들에 포진시켜 이익추구를 극대화한다.
차은택 혹은 최순실 휘하의 회사인 아프리카픽쳐스, 더플레이그라운드는 재계에 압력을 넣어 손쉽게 광고를 따내고 정부기관도 일감을 몰아주었다.
물론 청문회에서 정몽구현대차 회장은 더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를 몰아준 일에 대해 기억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차은택의 변호인도 회사자금 10억 횡령 이외에는 모든 공소사실을 부정했지만.
박근혜정부의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기조가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한류다. 그러나 최순실, 차은택은 지난 수십 년간 성숙한 시민사회가 만든 한류의 토양을 순식간에 엎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드배치로 중국에서의 한류는 꽁꽁 얼어붙었다.
한류(韓流)가 한류(寒流)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다시 2017년 봄이 오기 전까지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힘이 저 차가운 한류(寒流)를 충분히 녹여낼 것이다. 이미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촛불과 함께 하는 문화공연은 이미 축제의 장이며 소통의 공간이 되었다.
겨울의 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유난히 맑다. 그 맑음이 이제 우리 사회를 관통해야 한다.
차가운 새벽 누군가를 감싸 안는 일은 자기가 추위 밖에 서는 일.
그러게 흘려보낸 역사와 사람들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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