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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 | 칼럼·시평 [문화칼럼]
'거리로 불려 나온 가로수'와 함께
박종관(2017-07-24 13:31:07)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문화의 민주화"라는 원칙에 집중하였다. 사는 곳과 생활 형편에 따라 문화를 누리는 인간의 기본 권리에는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골의 지지자였던 말로는 1958년 드골이 프랑스 5공화국 시대를 열자 문화부 장관이 되어 그 이후로부터 10년간 문화부장관으로 재직하였다. "문화란 지식의 부속물도 지식의 연장도 아니며 또 지식의 보상도 아니라"는 복잡한 말은 전 국민이면 누구나 문화를 충분히 누림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 되었다. 가능한 한 보다 넓게 위대한 프랑스 문화를 프랑스 사람들에게 가장 넓게 접 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체 국가예산 중에서 얼마는 반드시 문화에 비중을 실어줘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긋고 일정한 예산을 확보해 나가는 방식도 그때 도입되었다 한다. 이러한 정책의 골격이 문화의 중요성을 전 국민적으로 일깨워 이른바 창의성, '생각하고 보다 훌륭한 것을 만드는 것의 중요함을 환기'시키고 전 프랑스 사회를 창의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한 착한 순환 고리를 염두에 둔 정책이었음도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전국에 <문화의 집>을 만들어 지역별로 문학을, 어디는 연극을 이렇게 특화하여 문화 공급소와 같은 장소를 마련한 것도 그때의 일이라 전해진다. 

그 뒤를 이어 1980년대 집권한 미테랑 정부의 문화부장관 <자크 랑>은 이른바, 68혁명 이후 세대로 문화의 대중화 정책에 집중한다. "문화민주주의", 이미 사람들은 단순한 감상자이기를 거부하며 만들면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되었음으로. 예술교육과 취미 대중 아마추어 풀뿌리 대중 예술 활동이 만들어지고 이를 견지하는 정책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문화정책을 지역으로 고르게 나누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구분과는 달리 전 프랑스를 총 7개의 문화권역으로 구분하고 거기에 지역문화사무소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어떻게 각기 특화할 것인지에 대해 최대한 자율권을 주고 전문가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통로를 열고, 예산의 권한은 중앙정부가 갖지만 집행은 지역문화사무소를 통해 집행되도록 하는 통로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자크 랑>의 문화정책은 그 시작이 <앙드레 말로>의 끝과 서로 닿아 있다.

정책은 결국 사회적으로 합의를 이룬 어떤 결정을 문서화 하고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1960년대로 이후만 살펴보아도 우리도 훌륭한 정책의 역사는 얼마든지 있다. 문화예술단체의 지원의 당위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해야 한다."는 근거로 쓰이는 문예진흥법은 1972년에 제정되었다. 그렇게 보면 참 오래된 제도이기도 하다. 문화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자주 거론되는 <창의한국>이 만들어 진 것은 2004년 일이다. <창의한국>은 '창의성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기술함'으로 그 의미를 갖는다. 그 이전까지의 문화정책은 한 정부가 들어서면 대체 어떻게 문화와 관련한 예산을 어디서부터 집중하여 나눠 쓸 것인가를 그럴듯하게 어려운 용어로 포장하여 문화정책이라고 제시하던 것에 비교해, 한 정부 한 정권의 범위를 벗어나는 문화의 백년대계를 세웠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 때문에 그 이후 나타나는 정부의 문화정책의 중심 진원지 같은 역할을 꾸준히 감당하게 되었다.

창의한국이 가진 의미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고 가장 잘 작용되고 있는 정책은 바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이었다. 문화융성, 창조경제, 문화예산 2%로 대표되는 지난 박근혜정부의 문화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의 문화정책에 비해서도 우수하였다. 그럼에도 그 끝은 심히 초라하였고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하여도 엉망진창이었다.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하여 행정과 문화현장은 서로 믿지 못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럴듯한 구호나 목표는 결코 정책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가?

블랙리스트, 검은 명단은 정부가 <세월호 시국 선언자> 등등의 9,743명의 명단을 만들어 꾸준히 관리하며 각종 정부지원금과 정부제도, 그리고 정부사업의 심의위원 등에서 배제 해 왔다는 의혹이 중심이다. 법률은 이것을 사회적 배제, 권력을 초헌법적으로 남용하여 부당한 배제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권력의 무차별적 적용으로 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이렇게 초헌법적인 지시가 내려지고 이것이 별다른 저항도 없이 행정이 행동대장이 되어 2년 이상 별 문제도 없이 진행되었는가에 있다. 전근대 왕조나 나치즘이 횡횡하던 시기에나 가능했던 이런 일이 현실이었다니. 물론 그 때문에 촛불이 곳곳에 들려졌고 그 때문에 조기대선이 이루어 졌고, 그 결과 지금의 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울 수 없는 필연적 결과이지만, 우리사회가 생각보다 형편없는 사회였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이 깊은 상처는 어떻게 책임 질 것인가?

1960년대에 이미 어떤 우리나라 시인은 "황토 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는 세월을 갈구하였다. 그리고 우리도 <앙드레 말로>처럼 <자크 랑>처럼 시 쓰는 장관의 출연을 함께 맞이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 도종환은 장관 취임 전 자신의 처지를 깊은 숲속에 살다가 그저 '길가에 불려나온 가로수 처지'라고 설명하였다. 그와 함께 나란히 서서 한국문화의 숲을 이루고 싶다. 저 뒤안길에 버려져 형편없이 녹슬어도 곳곳에 문화가 살아 숨 쉬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지역문화의 낡은 구호를 다시 꺼내고 다듬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여기'이다. 지역에 산다는 단순한 이유로 이류 국민이 되지 않는 나라, 변방은 곧 중심이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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