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7.8 | 칼럼·시평 [문화칼럼]
다시 맞는 8・15 광복, 72년간의 숙제 ‘역사바로세우기’
고석규(2017-08-28 14:29:01)

전북 문화저널이 탄생한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그러고 보니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7년은 한국현대사에서 기억할 만한 중요한 한 해였다. 시민이 주도한 민주화운동의 첫발이라 할 수 있는 '6월 항쟁'이 있었고, 그 결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였다.
그리하여 아홉 번째 개정한 제10호 헌법이 탄생하였다. 수차례의 개헌 중 제헌헌법과 현행 헌법인 제10호 헌법만이 제대로 된 여야 합의를 거쳤다. 그래서 그런지 이 두 헌법에서만 '공공성'과 '경제민주화'가 강조되고 있다. 특히 현행 헌법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역경제 육성도 의무화하였다.
우리는 현행 헌법 제정 이후를 "87년 체제"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미숙한 민주화에 그쳤다. 이는 결국 2016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시민혁명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현실에서 확인함으로써 민주화의 성숙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지난 72년 동안 5·16, 10·17, 10·26, 12·12, 5·18, 6·10 등등 이런 숫자들만 나열해도 금방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우여곡절 때문에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좌와 우로 진영을 나누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정치과잉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처럼 좌와 우가 치열하게 대립해 온 한국현대사, 거기서 역사의 주도권 잡기 싸움이 있었다. 그 때문에 역사가 정치에 휘둘렸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 정권에서 저질렀던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였다. 외형적으로는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추게 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친일파 문제의 희석,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에 있었고, 이를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내세워 정당화하려 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친일파 문제가 그 출발점이었다.
이처럼 현대사의 첫 번째 굴레는 바로 '친일 청산 없는 정부 수립'이었다. 반민특위의 좌절로 친일파 청산작업이 막을 내렸다. 친일파가 바탕이 된 분단세력이 집권세력이 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겉으로는 반일을 내세웠지만, 안으로는 친일파가 친미파로 색깔만 바꿔 지배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
그 후에도 여전히 친일파를 규명하는 일에 딴지를 걸고, 『친일인명사전』의 제작이나 배포를 방해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편에서는 이를 가리기 위해, 반공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민주화세력을 탄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편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는 '개발 독재'라는 말과 짝을 이룬다. 개발은 좋은 의미이고 독재는 나쁜 의미이다. 개발독재란 국가 주도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나, 군사문화의 확산, 군의 탈법적 정치개입, 민주적 정권교체의 지연, 산업화의 지역·계층간 불균형 등의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민주화의 노정에 여러 차례 굴곡이 나타나게 된다. 즉 1980년 서울의 봄이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기대했던 민주화의 결과가 '독재 청산 없는 민주화', '처벌 없는 과거사 청산'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이것이 두 번째 굴레가 되었다. 오직 정권을 잡기 위해 지역감정을 동원하거나 타협적 민주화를 반복하면서 자꾸 옛 버전으로 돌아가곤 했다.
세 번째 굴레는 세계화의 물결이 덮치면서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틈입'이었다. 외환위기가초래한 IMF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대책 없이 스스로 불러들였다.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이라 비판하는 데서 보듯이 진보의 아이콘 노무현 정권조차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였고, 이후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계층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가난은 대물림되었다.
이와 같은 현대사의 굴레들을 일거에 끊어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바로 2016년 촛불시민혁명이었다. 그러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아직도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북한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일·중·소 등 외세의 이해관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통일은 지상의 과제가 되어 여전히 현대사의 굴레로 남아있다.
이렇듯 현대사의 여러 굴레들이 정치과잉의 시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화를 넘어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또 촛불시민혁명이 이룬 민주화의 불가역적 정착을 이루기 위해 진영을 뛰어넘는 협력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생각의 차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진영논리화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공과가 있겠지만, 산업화와 민주화 양쪽이 다 필요했던 것만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현대사 인식의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사의 해석에서 윈-윈 하는 길은 없을까? 역사는 옛 것이지만 역사쓰기는 항상 현재의 입장에서 해석, 정리된다. 이긴 자가 역사를 자기중심으로 쓰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 정치적 승자는 5년을 주기로 계속 바뀐다. 승자가 엎치락뒤치락하기 때문에 역사도 이랬다저랬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5년마다 바뀌는 그런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사의 진정한 승자는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이 아니라 집단적 현명함과 열정, 헌신으로 오늘의 선진화를 이룬 '국민'이다. 따라서 이런 국민의 입장에서 정리되는 현대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현대사는 누가 쓸 것인가?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맡기듯 역사는 역사학자에게 맡겨야 한다.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은 '정치'보다는 '연구'를 통해 학문적 성과를 축적하여야 하고, 균형 있는 해석을 위해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좌도 우도 아닌 진정한 승자, '국민'의 기록을 쓸 수 있고, 역사바로세우기도 그때 이루어질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