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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 | 칼럼·시평 [문화칼럼]
아무에게도 보여지지 않는 죽음, 고독사
김종건(2017-09-19 10:46:25)

고독사는 엄밀한 개념이 아니다. 한 인간의 죽음이 사회적 존재로서 존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지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는 한 인격체를 상상하면서 고독사를 얘기하면 조금 더 와 닿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돌볼 가족이 없어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할 확률이 큰 노인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고독사는 '죽을 때에 죽는다'는 통념이 적용되는 연령 기준이 무너진다. 실제로 지난 6월 이후 부산에서 발생한 고독사로 돌아가신 26명 중 65세 이상은 9명, 60세~64세는 5명, 50대 는 8명, 40대는 4명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의 비중이 높지만 고독사는 노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것이다.
고독사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역시 지난 6월 이후 부산에서 발생한 26건의 고독사 중 남성은 22명, 여성은 2명, 너무 늦게 발견되어 조사시점(변사보고서 작성시점)에서 성별이 파악되지 않은 경우가 2명이었다. 학자들이 고독사의 근본 원인을 사회적 관계의 단절에서 찾는데, 그 관점에서 남성은 여성에 비해 월등히 취약하다. 남성의 사회적 관계는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는 직장을 통해서 주로 형성되는데 고용불안정과 조기퇴직은 이 관계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남성의 사회적 관계가 일터 중심적이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생활터에서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 갑자기 처하게 되면 그 위기는 더한 강도로 느껴질 것이다
고독사는 건강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부산의 사례에서 지병을 갖고 있는 사람이 23명, 조사 시점에서 파악되는 못한 경우가 3명이었다. 고독사를 자살과 유사한 패턴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치료하지 못해 종국에 죽음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의료적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한 설명이다. 사회학적 설명은 좀 다른데 자살에 이르는 사람의 환경과 자신의 관계에 관한 심리사회적 패턴은 부정-수용-포기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포기의 끝이 자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독사는 자기 의사가 있는 포기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혹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볼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질병이 있어도 치료를 받을 능력이나 조건이 안 될 경우, 질병이 있는데 폭염 또는 열악한 주거여건 등으로 인해 급격한 위험에 대처할 수 없는 경우, 앞의 두 가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그렇다. 결국 앞의 두 가지 경우는 개인의 능력 부족에서 고독사로 가는 경로를 설명한다. 마지막 경우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Amartya Kumar Sen)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할 능력의 부족을 빈곤으로 정의하였다. 그가 특히 주목한 능력이 사회의 온갖 제도와 수단에서 배제되지 않는 참여였다. 쉽게 풀이하면 한 개인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거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회적 산물에 연결되어 있지 못한 것, 제도에 포착되어 있지 못한 것, 사람들과 엮여 있지 못한 것을 빈곤으로 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고독사는 관계의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자살 말고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종착점인 것이다.
그래서 고독사는 계급문제다. 부산 사례를 보면, 26명 중 기초생활수급자가 14명, 비수급자가 5명, 파악되지 못한 사람이 7명이다. 그리고 발생한 지역도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이 밀집되어 있는 빈곤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왜 이런 정언(定言)이 나오는지 이해가 된다. 자산 처분이 가장 먼저 이루어지고 그것이 효력을 다하면 자산의 소득화를 통해서 자산이 제로인 상태가 되고 이 과정에서 부족한 자산을 신용으로 대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신용은 상환불가능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사회적 관계의 해체가 뒤이어서 온다. 물론 가족으로부터 분리 또는 이탈도 동시에 진행된다. 최근 1인 가구 증가 추세에서 위기요소는 바로 빈곤화 경로에 있는 독신가구이다. 그것이 자발적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프리케리아트(불안한 상태를 뜻하는 영어의 'precarious'와 무산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불안정고용층에 있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실업자를 의미함)가 많아지고 사회의 빈곤화가 중단되지 않으면 고독사 또한 증가할 것이 자명하다.
그래도 고독사는 사회적으로 마무리된다. 뒤늦게 가족이나 이웃 또는 아는 사람이 나타나서 사회적 관계를 정리하려는 작은 의식이라도 가지려 한다. 하지만 발견 후 그런 연고자가 올 때까지는 누군가의 관여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고독사는 끝이 아니다.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관여로 그들에게 남은 과정이 맡겨진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과 공동체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사회단체가 고독사로 인해 '엮여 들어간다'. 경찰의 조사(조서 작성)에 임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장제급여(75만원)를 초과하는 장례비용을 부담하고 기초자치단체에서 정한 장례지도사를 만난다. 장례식 후에는 열악한 안치 여건을 만난다.
이렇게 고독사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 민낯을 조금이라도 가려주는 복지는 여전히 개인의 능력을 보완해 주는데 그치고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시켜 주고 강화시켜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것보다는 기존의 것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결시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의 관계를 보다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야말로 중지(衆智)를 모아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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