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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 | 칼럼·시평 [문화칼럼]
자연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멀리 있을 뿐이다
김성호(2019-05-31 15:14:33)



'소박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언제나 소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소박하다'는 것은 꾸밈이 없고 까다롭지 않음을 일컫습니다. 꾸밈이 없으니 거짓이 있을 수 없고, 까다롭지 않으니 무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거짓 없이 무던하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루에도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겉과 속을 이리저리 꾸미기에 바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가 더 서로에게 까다로울 수 있느냐를 두고 경쟁이라도 하듯 헐뜯으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심이 꿈틀거리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자연으로 향합니다. 거짓이 없고 무던한 모습의 중심에 자연이 있으며, 그 소박한 삶의 꼴을 고스란히 닮고 싶기 때문입니다.


참 좋은 계절 5월입니다. 오래도록 버텼던 갈색이 녹색에 온전히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이제 제대로 푸름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사정이 다릅니다. 파란 하늘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살아도 그렇습니다. 그저 비가 오시기를 기다릴 뿐인데 드디어 하늘이 무거워집니다. 하늘은 밤을 새워 조금씩 자신의 무게를 모두 비웠나 봅니다. 파란 하늘이 살아나며 아득히 서있던 산이 하룻밤 사이에 바로 내 앞으로 성큼 다가섭니다.


산이 좋습니다. 좋은 벗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리만 오롯이 지키면서도 철따라 몰려오는 세상살이의 풍파를 꿋꿋이 견뎌내는 들꽃이 있습니다. 스스로 푸르고, 스스로 향기롭고, 스스로 깊어지는 들꽃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푸른 풀빛이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는 듯 당당하고 떳떳하게 서있는 나무도 있고요. 다양한 형태에 아름다운 빛깔까지 몸에 두른 버섯은 땅과 나무를 오가며 펴있습니다. 크고 작은 곤충은 꽃과 나무와 버섯 사이를 분주히 스며듭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서면 계곡 주변에서는 양서류와 파충류를 만날 기회도 틀림없이 맞을 수 있습니다. 자연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버티다 보면 몸집이 큰 산짐승의 맑은 눈을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같은 곳으로의 산행이 어느 정도 쌓이면 그 안에 깃든 모든 생명들이 수상쩍은 눈빛을 멈추고 슬쩍슬쩍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차분히 저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내 가슴에도 무언가 고이는 것이 생깁니다. 저들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까지 마련되니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적절히 멈춰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더러 외국까지 나가게 됩니다. 지난 일 년 정도를 돌이켜보아도 참 많이 다녔습니다. 두루미를 만나기 위해 작년 10월 중순부터 올해 3월 중순까지는 철원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산양의 맑은 눈 한 번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고 싶은 마음에 강원도 깊은 산 절벽을 꽤 여러 번 찾았습니다. 손과 발이 잘려나가는 듯한 추위는 당연히 맞서야 했습니다. 두루미와 산양의 자연 서식지가 그 곳이니 그 곳으로 가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점박이물범을 만나기 위해 백령도에도 갔었습니다. 남원에서 출발해 인천여객선터미널로 가는 것이 시작입니다. 적잖은 시간이 걸립니다. 배에 올라 소청도, 대청도 지나 백령도에 이르기까지는 4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멀미납니다. 큰 배에서 내려 또 다시 작은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이동해야 점박이물범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외국까지 향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거나 볼 수 있어도 만나기 너무 힘든 친구들을 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토록 고생고생하며 자연에 깃들인 생명을 만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도시 인근에서도 자연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생태공원입니다. 생태공원은 자연생태계를 보호‧유지하면서 자연학습 및 관찰 장소 제공, 생태연구 및 교육의 장 도모, 여가 및 휴식 공간으로의 활용 등을 목적으로 1952년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조성되어 현재에 이릅니다.


우리 전라북도 지역에도 금강습지생태공원, 내장산단풍생태공원, 줄포만갯벌생태공원, 평화생태공원, 용담댐자연생태공원, 가력도생태공원, 뜬봉샘생태공원, 요천생태습지공원, 용안생태습지공원, 유천생태습지공원을 비롯한 여러 생태공원이 있습니다. 나름 개성이 뚜렷한 좋은 생태공원입니다. 하지만 만날 수 있는 생물종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거리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생태공원 본래의 뜻을 제대로 살린 멋진 장소가 생기고 있는 것은 더없이 반갑고 기쁜 일입니다. 바로 전주생태동물원입니다.


5년 전만해도 전주동물원은 우리나라의 '가장 슬픈 동물원'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전주시는 전주동물원이 멋진 생태공원으로 거듭 나기를 소망했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바탕으로 전주생태동물원 다울마당이 구성됩니다. 동물 분류와 동물 행동 전문가, 동물 복지 전문가, 식물 분류 전문가, 조경 전문가, 환경단체, 시의원 등이 운영위원으로 함께 했습니다. 다울마당 운영위원으로 위촉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동물원에 직접 가보는 일이었습니다. 참담했습니다. 비좁은 동물사는 악취가 심했고, 많은 동물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아 똑같은 몸짓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같은 길을 계속 오가거나 머리 또는 몸통을 전후좌우로 쉬지 않고 흔드는 행동이 그 예입니다. 저들과의 만남이 도무지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희망이 보였습니다. 다양한 나무와 들꽃을 품은 아름다운 숲이 있다는 것, 규모가 하루에 다 돌지도 못할 정도로 크지 않고 아담하다는 것, 새롭게 거듭나기를 소망하는 전주시와 전주동물원 직원들의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동물에게서 우리가 빼앗은 복지만 되찾아준다면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전주생태동물원의 동물들이 무척 행복해합니다. 바뀐 우리에서 생활하는 동물의 경우 정형행동이 사라졌습니다. 저들이 자연에서 살던 환경에 가장 가깝게 해주려 애썼고, 행동이 풍부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함께하기 참 좋은 계절 5월입니다. 자녀들 손잡고 강, 산, 들, 바다 어디라도 좋으니 나들이 한 번 가실 것을 권합니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시다면 전주생태동물원에 들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애써 만든 곳이 생태공원이니까요. 싱그럽고 향기로운 숲 사이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저들의 모습을 만나며 여러분도 더불어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자연,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멀리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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