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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 | 칼럼·시평 [문화칼럼]
‘나홀로 사회’에서 공동체를 상상하다
권경우(2020-02-10 13:25:42)


2년 전부터 애쓰고 있는 습관이 있다. 거주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일이다. 수 십 년을 산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신축 아파트에서는 서로 얼굴을 알더라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인사를 하면서도 어색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1년 넘게 꾸준히 인사를 했더니 이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대부분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하는 습관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어쩌다가 우리 사회는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어색할 정도로 이상한 공동체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단절의 경험이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예로 든 아파트의 거주 인구가 늘어난 것도 그 요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전체 한국사회 거주 세대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정작 ‘공동주택’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있는 아파트는 전혀 ‘공동’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쓰레기 문제나 관리비 등 주로 개인의 이익에 해당되는 경제적 할당을 위해서는 일사분란하게 공동으로 움직이지만 ‘공동체의 가치’를 위한 움직임에는 가장 소극적으로 작동하는 곳이 바로 공동주택으로서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립과 단절의 사회가 가장 잘 드러난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1인 가구’일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나홀로족’ 혹은 ‘나홀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가족이나 친구, 이웃 등 누군가 함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나홀로’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식사와 여가 활동이 대표적인데, 혼밥이나 혼술은 기본이고, 영화나 공연 관람, 여행도 나홀로 즐기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문제를 넘어 소비시장을 비롯한 미래트렌드에 직접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2017~2047년 장래가구특별추계'에 따르면, 평균 가구원 수는 2017년 2.48명에서 점차 감소해 2047년 2.03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비혼과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인구감소가 주요 요인이겠지만, 기본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비율이 줄어드는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1인가구 통계이다. 2017년 558만3000가구에서 2047년 832만가구로 증가해 전체 가구 대비 28.5%에서 37.3%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2인가구까지 확대하면 1-2인 가구 비중은 2017년 55.2%에서 2047년 72.3%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사회에서 ‘나홀로족’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1997년 말 IMF 경제 위기였다. 당시 위기를 겪었던 세대는 일종의 '경제적 개인주의'를 온 몸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한국사회는 '나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게 되었다. 당시 사회로 진입하던 청년세대, 즉 1980년대생들은 국가와 사회 등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사회 전반적으로 공동체성이 무너지고 있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정과 학교, 마을 등 전통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실제로 공동체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학교에서는 왕따와 학교폭력 등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있으며, 가정은 핵가족화가 가속화되면서 더 이상 친척이나 조부모 등 다양한 공동체의 경험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을공동체는 신도시와 재개발 등 도시계획으로 인한 도시 이주 문화의 확산과 아파트라는 획일적이고 분절된 주거환경으로 인한 공동체성의 붕괴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전세살이와 같은 잦은 이주의 경험은 '이웃'이라는 공동체의 중요한 경험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휴대폰 모바일문화로 대표되는 기술과 매체의 문제가 있다. SNS와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매체 환경으로 인해, 같은 공간에 거주하는 가족 구성원들 내에서도 함께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하는 일들이 점차 줄어 ‘나홀로’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나홀로족은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조건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은 미국사회에서 사회적 연대나 참여가 줄어드는 ‘나홀로 사회’를 분석한 <나홀로 볼링(Bowling Alone)>(2000)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지역공동체와 국가공동체라는 정체성이 약화되고 점차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해지는 현실을 분석한 것으로서, 퍼트넘은 인구변화에 따른 세대교체의 영향과 새로운 매체, 즉 TV의 영향을 꼽았다. TV 시청이 하루 1시간 증가하면 시민활동이 10% 정도 감소했으며, 그 외의 요인으로는 시간과 재정의 압박, 장거리 출퇴근 등이 있었다. 퍼트넘의 분석을 2020년 한국사회에 적용해 본다면 상황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밀집되어 있으며, 하루 평균 출퇴근 시간이 2시간이 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경제적 압박은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에게나 닥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술 발달에 따른 모바일 문화는 통계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통계에서 드러나듯이 나홀로족은 점차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나홀로사회'로 바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거스르는 움직임이 있으며, 사회적 단절에 대한 대안으로 연결과 연대를 향한 지속적인 운동이 존재한다. 기술 발달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한 수많은 네트워크로서 연결망들은 그러한 시도들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 다양한 시공간을 활용하거나 초월한 커뮤니티 활동은 ‘나홀로 사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최소한의 ‘제 3지대’를 확보하려는 노력들이다. 쉐어하우스와 같은 공동주거, 혼밥과 혼술이라는 현실을 넘어서려는 공유부엌 혹은 공유식당, 취미와 여가를 함께 공유하는 취향공동체의 증가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외에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통한 사회적경제, 마을만들기와 같은 마을공동체 활동, 지역 단위에서 다양한 영역과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미디어, 육아와 교육, 놀이 등을 통한 마을커뮤니티 활동, 청년과 예술가 등 다양한 주체들의 네트워크 실험 등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의 기대나 의사와 상관 없이 ‘나홀로 사회’는 도래하고 있다. 그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인간이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던 근본적인 물음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 물음은 우리가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통의 믿음과 맞닿아 있는데, 그것은 또한 인간의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타인의 삶을 통해서만 내 삶이 가능하다는 단순한 진리에 기초한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 할 수 있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만 하더라도 어느 것 하나 나 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제 ‘나홀로 사회’에 살아갈 때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 물음 위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상의 다양한 목록을 올려놓고 하나씩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단순한 느낌과 취향 너머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류라는 보편적 정체성으로서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은 축적된 경험과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권경우(문화평론가,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nomad7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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