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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2 | 칼럼·시평 [문화칼럼]
都市化 時代의 地方 藝術家
이보영 문학평론가, 전북대 교수(2003-09-26 11:10:48)

都市化 時代의 地方 藝術家

이보영 ·문학평론가·전북대교수


지금 한국의 지방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예술가에게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에 대한 열등콤플렉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정치·경제·문화의 서울 집중현상에서 빚어진 부산물인데, 실은 근래의 일이 아니라 뿌리깊은 유산이다.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의 새끼는 제주로 보낸다는 속담 그대로 지난날 출세다운 출세는 서울로 올라가야만, 혹은 그럴 있는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한국은 보다 민주주의적인 행정과 교육을 위하여 地方自治의 시대가 도래할 문턱에 있는 만큼 조선시대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학문이나 언론·출판, 특히 예술의 경우는 여전히 서울의 방면의 동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시혜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藝總본부가 서울에 있고 여러 지방에 <支部> 설치되어 있는 사실이 端的인 증거이다. 어찌하여 다른 분야는 몰라도 예술분야에서 따로 중앙본부가 있고 산하에 지부들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지 얼른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것도 정치적 중앙집권 체제의 부산물이므로 지방분권(지방자치)시대에는 하루 속히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직도 엄존하는 예술의 중앙집권적 체제에는 땅의 현실을 두고 그런 체제가 수긍되는 면이 없지도 않다. 왜냐하면 서울의 연도가 오래 文學 잡지들은 거의 모두가 서울 거주 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섹트的으로 편집되고 있어서 지방 거주 문학자에게는 紙面이 할당되지 않는데, 藝總 산하의 한국 文協會에서 발행하는 문예지(「月刊文學」) 지방 거주 회원들의 작품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 많은 지방 문학자들은 문학가협회의 支部회원이 되어 잡지에 글을 보내고 있다. (지방에서 同人誌 활동을 하면서도 지부 회원으로 있는 문학가가 아주 많다.)

이런 현상은 다른 무엇보다도 발표 지면의 확보가 문학가의 사회적 존재이유와 직결되기 때문에 불가피한 노릇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가의 작품활동의 이상과 현실의 乖離라는 문제를 반성하게 하는 사례라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는 예술가 자신의 내면적 현실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여기에 비할 예술가의 지방 거주로 인한 발표 지면이나 작품 전시장의 제약 같은 현실문제는 비본질적, 외면적인 문제요, 실상 사소한 문제이다.

그러면 근본적인 문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대에 있어서 과연 예술가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예술가로서의 <> 무엇인가? 굳이 예술에 종사하는가? 나에게 예술은 절망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종교와도 같은 것인가? 당신의 예술에 있어서 자아의 근대성이란 어떤 성질의 것인가? 세속적 명예나 행복과 예술은 양립할 있는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할 서울과 지방의 예술가가 각자 처해 있는 환경적인 차이 같은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地方化와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의 성격이라는 문제를 直視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都市化는 단지 산업화나 離農이나 인구의 도시집중 같은 현상 못지 않게 심각한 정신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都市化로 인하여 촉진된 인간의 소외라는 문제이다. 현대인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소외로 인하여 뿌리 없는 주변적 인간, 군중 속의 이름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결과 이런 정신적 상황에 남달리 민감한 예술가는 방황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성실성이 그런 정신적 방황과 현실사회에서의 방황으로 나타나곤 하는 것도 당연하다. 고흐는 예술가로서의 종교적 사명에 떴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정한 집이 없이 암스텔담으로 런던으로, 파리로, 아를로 등지로 떠돌아 다녔고, 포올 고갱도 마찬가지이며, 샌프란시스코가 발원지인 미국의 비트族 예술가들도 떠돌이였다. 중의 작가 케루악의 대표작의 제목이 「방랑」(혹은 「길 위에서」) 것은 암시적이다.

그와 같은 예술가의 방랑을 충동질한 것이 대도시에서의 비정한 생활의 분위기이다. 사회의 都市化는 근대화 과정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다수운전통사회의 공동체의식은 급속히 解體되고, 예술가의 경구 그는 都市的인 不安을 극복하기 위하여 창조적인 실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 실험의 정신에 전통의 부정과 자기부정으로 표출되는 근대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첨단적인 현대미술의 본고장이 파리, 런던, 뉴요크,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였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런 대도시에서는 방랑자로서의 예술가는 너무도 당연한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심하게 행동하고 살아가는 곳의 소시민층이 경멸하거나 기피하는 대상이 되면서도 부랑자는 당당한 예술가이다. 뉴요크의 시인 윌트휘트먼은 자기가 <부랑자>라고 詩에서 공언한다.

그러나 지방의 小邑을 포함한 중소도시의 예술가로서는 사정이 다르다. 그런 곳에서의 부랑자 예술가는 奇人 취급을 받고 따돌림을 받을 것이다. 아직도 전통사회의 요소가 적지 않게 남아 있는 중소도시의 예술가들에게는 향토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이 살아 있어서 그런 부랑자는 이단시되기 때문이요, 예술가 본인이 그런 방랑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와는 달리, 시청과 도청의 건물이 여전히 돋보이고, 예술가와 市長이 흔히 구면의 친구일수도 있는 지방 중소도시의 예술가는 그래서 어쩌면 본인은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딜레마를 안게 된다.

藝總支部 회원, 혹은 향토의식이 강한 예술가로서의 창작활동에 만족하거나 여기에 安住하느냐, 아니면 그의 근본적 문제, 혹은 존재론적인 문제라고 있는 예술가의 종교적 사명이나 근대정신이라는 문제로 자주 방황해야 하느냐의 딜레마이다. 그런데 상당한 수의 지방 예술가들이 거의 자기도 모르게 택하고 있는 것은 前者의 길이다. 아직도 가족주의적 思考, 재래의 지역의 텃세를 자랑으로 여기는 사고에 찌들어 있는 중소도시의 예술가일수록 그렇다.

그러나 선량한 지방 예술가들은 대신 값비싼 댓가를 치루지 않을 없다. 그에게는 전통적인 자아의식이나 장르를 포함하여 모든 전통을 회의하거나 부정하는 근대정신의 모진 시련이 서먹서먹한 他鄕의 일처럼 된다는 대가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여 지금도 마소의 새끼는 시골로 보내고, 詩人, 畵家는 대도시로 떠나야 한다. 다시 번이고 귀향할지라도 대도시의 주민이 되어야 한다. 스산한 그곳의 부랑자였다는 자의식이나 체험이 없는 예술가는 존경받는 중소도시의 有志급 예술가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황폐한 世紀末의 상황과 자기가 지향하는 예술의 사명이나 근대성이라는 문제로 괴로워하는 예술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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