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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 | 칼럼·시평 [문화시평]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불타올랐던 열정의 시간
제37회 전북연극제
오지윤 극단 자루 대표(2021-05-10 10:33:21)


문화시평 | 제37회 전북연극제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불타올랐던 열정의 시간


오지윤 극단 자루 대표



장기화 되어가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노심초사 준비해야 하는 상황. 그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이번 제37회 전북연극제를 준비하는 주관처와 도내 연극 극단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에 출전을 앞둔 이들의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경쟁이 펼쳐지는 경연의 장이 아닌 코로나로 인한 위기 속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그 치열했던 축제의 현장 속을 들여다보았다.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던 지난해와는 달리 그나마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허락된 객석의 수는 극장 총 객석 수의 반으로 줄었고 연극제 직전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그나마 허락된 객석 수는 더 줄어들었다. 그렇게 긴장과 불안 속에서 드디어 그 서막이 올랐다.




첫째 날 [극단 까치동] “들꽃상여”


동학농민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전봉준. 그리고 그 밖의 몇 명의 이름들을 더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분명히 수많은 농민군들의 혁명이었음을 알지만, 알려지지 않거나 기억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름 없는 동학농민군들이 있다. 연극 ‘들꽃상여’는 그렇게 이름 없이 역사를 써 내려간 동학농민군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지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나라의 역사이자,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역사이기도 한데 어찌 이리 무심했을까? 스스로의 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였다. 


가난한 농민군의 삶. 경제적, 정서적으로 어려웠던 그들. 그저 작은 힘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태고자 했던 그들의 굳은 결심과 그 속에 담긴 간절함이 세세하게 표현되었다. 극 형식을 빌려 ‘전봉준’에 맞춰진 동학농민혁명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준비하던 극단 단원들이 ‘이름 없는 동학농민군’으로 그 초점을 옮겨가며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담았다. 마치 묻혀있던 유물을 발견한 듯, 그래서 그로인해 지난 역사를 새롭게 채워 나가듯 극이 구성되어 있다. 그 과정들이 이 극을 보고 있는 관객의 심리와 절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름 없는 농민군들. 흑백의 그들에게 색을 입혀준 희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극으로 구현됨에 있어 많은 이야기 나열을 쫓는데 급한 느낌이 있었고, 그런 민초들의 삶을 보여주는 주된 인물이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 극 표현에 있어서 구분이 명확하지 않는 등, 극을 구성하는 연출과 극의 주제성이 뚜렷하게 보이는 장면이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다소 아쉽다.




둘째 날 [극단 늘] “돈나푸가타, 여행”


제목이 말하듯 와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필자는 와인과 친하지 않아서인지 와인을 매개로 흘러가는 전개 부분은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작가가 와인을, 그 중 돈나푸가타를, 시칠리아라는 지역을 왜 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것을 궁금해 하며 그 답을 풀어내지 못하는 스스로의 무지함을 자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치 영문 독해를 하는데 갑자기 막혀 버린 당혹감과 비슷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그 속의 의미들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았지만 극이 마무리 될 때까지 그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보다 친절한 희곡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극 중 주인공들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동성애 성향을 가진 인물로 설정되었다. 그 설정이 두 남녀의 동거를 꽤 안전해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극을 다 보고 나서는 굳이 그런 설정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상처 입은 인물 표현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자들을 표현하는 캐릭터 연기가 조금은 과장되거나 불편해 보였던 탓인 것 같다.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겉모습이 크게 다를 거라 생각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성향의 차이라고 볼 때, 겉으로 표현된 모습이 아닌 내면의 이야기들로도 극 중 인물들의 성격과 갈등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이 주고자 하는 주제와 다르게 배우들의 연기는 반대 방향을 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돈나푸가타, 여행’은 2인극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런 만큼 배우들이 채워야 할 것들이 더 많다. 그런 부분에서 배우들의 에너지가 많이 느껴진 공연이었고, 그럼에도 채워야 할 빈 곳들을 무대장치의 상징적인 부분으로 채우고, 조명과 음향으로 장면마다의 세밀한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더 느낌 있게 만들었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이 변하는 과정을 표현한 연출은 매우 흥미로웠고 기억에 오래 남았다. 





셋째 날 [극단 둥지] 짐승:몰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선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두 지역의 지역감정 이야기를 담았다. 

두 지역의 경계선에 놓인 ‘짐승’에 지역감정이 더해지고 정치적 관념이 더해져 2021년이 된 지금도 오래되고 잘못된 관습을 답습하고 있음을 말하는 듯 했다.


그리하여 ‘짐승’에 단순한 짐승의 의미뿐 아니라 양심, 비리 등의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거기에 그 경계선을 바라보는 입장인 제3자들의 여론몰이의 의미도 보태진 것 같다. 프리셋의 무대 구성은 그런 의미들을 상징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렇게 호기심 가득안고 극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극이 흐를수록 길을 잃고, 무너져가는 듯했다. 너무 많은 소재들의 연관성 없는 배열과 흐름이 극의 몰입도나 주제성을 흐트러뜨렸다. 극의 상징적 장면들이 옅어지며 극이 엉뚱하게 흘러 집중력을 흐려지게 만들었고 결국 이야기는 설득력 없이 급하게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제목이 주는, 첫 무대, 첫 장면이 주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컸던 만큼 허무함과 허탈함이 크게 다가왔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공연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계속해서 되짚어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역시 쉽게 정리되지 못했고 아쉬움만 크게 자리 잡았다. 



드디어 제37회 전북연극제의 막이 내렸다. 공연을 보는 내내 그들의 전투력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외줄타기를 하듯 불안했을 그들의 고충도 느껴지는 듯 했다. 그 혼란 속에서도 변치 않은 것은 그들의 열정이었다. 아마 이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무대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는 생존 신고의 의무감이 그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을 서로가 함께 채워 보려 노력한 무대에 흠뻑 젖어 들었다. 다시금 건강하고 활기찬 희망의 날을 기대하며, 이번 제37회 전북연극제가 침체된 연극계에 부흥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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