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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 | 칼럼·시평 [[문화칼럼]]
“황민왕 씨 프로그램을 듣게 해 주세요”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2022-05-10 09:36:46)

황민왕 프로그램을 듣게 주세요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지난주, 전주에 살고 있는 애청자로부터 민원전화가 걸려 왔다. 퇴근길 속에서 가장 즐겨듣던 프로그램 황민왕의 <노래가 좋다> 3 개편되어 전주 지역에서 듣게 되어 서운하다고 말했다. 전통음악을 즐겨 들어왔는데, 방송 추세가 갈수록 전통음악보다 퓨전이 많이 나와 짜증난다고 하면서, 묵어서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주는황민왕의 <노래가 좋다>, 다시 듣게 해주세요라고 간청했다. 


황민왕 씨는 현재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전통노래 위주로 선곡하여 구수한 입담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Black String에서 타악 연주자로 활약하며, 비나리를 포함한 노래솜씨도 일품인 예술가이다. 국악방송으로서는 이렇게 프로그램과 진행자를 집어서 좋아하고 애청하는 분들의 사연이 가장 두려우면서도 고맙다. 속내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을 이겨낼 재간은 없지 않은가.


국악방송 라디오는 지난해 전반까지만 해도, 녹음방송 진행 비율이 높았다. 이는 한국고전음악의 범주가 한정적이고, 작품 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녹음으로 진행한다고 해도 애청자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출근길, 점심시간, 퇴근시간 프로그램만 생방송으로 진행했고, 나머지 프로그램은 대체로 녹음방송으로 진행해왔다. 물론 방송을 제작하는 PD들도 그러한 제작 관행에 익숙했다.


그러나 고전음악 자료를 녹음해 내보내는 것과,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방송은 애청자와의 스킨십 자체가 달라진다. 녹음방송일 경우는 정돈된 진행자가 깔끔하고 매끄럽게 진행하지만  온기가 없다. 진행자의 버벅거림을 편집해서 내보내기 때문에 완성도는 빼어나다. 그러나 생방송으로 진행할 때는 진행자의 삼키는 소리, 혀가 꼬여 더듬는 것까지도 그대로 애청자에게는 정겹게 전달된다. 무엇보다도, 생방송의 맛은 애청자들이 보내는 댓글들을 진행자가 일일이 읽어주면서 원고에도 없는 즉흥적 대응을 하는 것이다. 나는 10 무렵 라디오와 함께 청춘을 보냈다. 특히 심야시간에 생방송이던 <별밤>이나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 호흡을 함께 하면서 들었으므로. 혹시 내가 보낸 엽서 사연을 읽어주는 밤은 정말이지 이루면서 새우기 일쑤였다. 


지난해 가을, 나는 국악방송 운영자가 되었다. 나는 라디오 방송이 녹음으로 진행되는 것이 문제라고 판단하고 생방송으로 진행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생방송을 하면 애청자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그래서 애청자의 곁으로 진행자가 즉각 다가가는 느낌이 생겨난다. 가을 프로그램 개편 때부터라디오는 살아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전체 프로그램을 생방송화 해달라고 라디오제작부장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아침 7 출근시간부터 12시까지 전체 프로그램이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한다고 했을 담당 PD들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생방송하는 라디오라는 명분이 워낙 좋다 보니, 자의 타의 반으로 방침에 모두 동의했다. 프로그램들이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되다 보니, 우선 방송국 스튜디오가 북적거려서 좋았다. 방송이 한결 생생해지고, 애청자들의 반응도 한층 뜨거워졌다.  


이쯤에서 우리 국악방송의 프로그램을 한번 되돌아볼까. 국악방송은 전통음악을 가장 귀하게 편성하고 있다.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되는 <국악산책>,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진행하는 황민왕의 <노래가 좋다>, 그리고 8시부터 9시까지 평론가 현경채 선생 진행의 <FM국악당> 국악방송의 시그니쳐 프로그램이다. 시간은 우리 전통음악만으로 오롯이 채운다. 아정한 음악인 정악과 민속음악, 그리고 풍물과 무속음악에 이르기까지 PD 전문성과 노련함을 통해 깐깐하게 선곡된다. 송지원 선생이 진행하는 <국악산책> 강의처럼 진행되기에 애청자들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라는 진행자 멘트가 떨어지자마자 프로그램의 댓글창이 활기를 띤다. 전문프로그램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데 애청자들의 생생한 반응이야말로 뜻밖이었는데, 이야말로 국악방송 라디오는 살아 있다는 방증이 되었다.


엄격한 한국음악 감상시간과는 달리, 출퇴근 시간과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어야 오후에는 한국전통음악 아니라, 새롭게 창작된 국악 곡들, 그리고 재즈를 포함한 월드뮤직까지 들려준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애청자들의 출근길에 동행하는 <창호에 드린 햇살>, 12시부터 2시까지 전주 한옥마을에서 이진영 씨가 진행하는 <음악이 흐르는 마루>, 그리고 퇴근 시간 잠비나이 멤버 김보미의 <맛있는 라디오> 제각기 특색있는 매혹적인 선곡으로 애청자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 <바투의 상사디야>, <최고은의 밤은 음악이야>, 시인 황인찬이 진행하는 <글과 음악의 온도> 국악방송의 저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국악방송은 이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켜놓으면 쉽사리 다이얼을 바꾸지 못하는 우리들의 친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방수미·강길원 소리꾼이 진행하는 <온고을상사디야> 특히 재미있다. 전주한옥마을에 오시는 분들은 국악방송 스튜디오에서 생방송하는 모습을 직접 통유리 너머로 있다. 코로나가 풀리면 아마 운집한 애청자들로 스튜디오가 명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다시 황민왕 이야기로 되돌아가야겠다. 지난 3 28, 국악방송 정기 프로그램 개편이 있었다. 황민왕 씨가 진행하던 전국방송 <노래가 좋다> 서울권역으로만 송출되고, 광주와 대전 국악방송에서는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사실 황민왕의 <노래가 좋다> 듣게 해달라는 전주의 그분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황민왕 프로그램이 서울 지역으로만 송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애청자와 시간가량 통화했다. 애청자는 라디오로 황민왕을 들어야겠노라고 강변했다. 


이런 애청자의 진정어린 목소리는 우리 방송국의 정체성을 다시금 성찰하게 해준다. 개편으로 아쉽게도 지금 당장 원상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지만, 국악방송을 사랑하는 애청자의 의견이기에 가능한 빠르게 원상태로 돌릴 있도록 애써보겠다. 이렇게 국악방송을 아끼는 애청자들이 있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국악방송의 제작팀에게 힘과 격려가 된다. 


내가 국악방송에 이후 가장 먼저 일은 직원들과의 연봉계약이었다. 직원들의 복지상태가 생각보다 열악했고, 그럼에도 좋은 방송을 만들고자 애쓰는 식구들이 정겨워졌다.  다행히 요사이 국악방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반가운 소식으로, 한국음악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기업크라운 해태에서 명인명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라면서 3 원을 우리 방송국에 협찬해주었다. 이런 일은 방송국 직원들에게 격려가 되고, 궁극적으로 한국음악의 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지금 나는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황민왕의 <노래가 좋다> 듣고 있다. 황민왕 방송은 시간이 조금 필요하나, 전주 권역에서 온전히 듣게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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