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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 | 칼럼·시평 [문화칼럼]
우리 사회 비뚤어진 성 의식의 자화상
글 이강실 고백교회 목사(2003-03-26 16:36:51)

이번 군산개복동 사건은 성매매의 본질과 실체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실상 성매매는 인신매매일 뿐이다. 성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고 파는 현대판 노예매매가 바로 성매매의 실체이다. 이 개복동사건은 성매매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주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매매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는 성을 파는 여성에 대한 명칭의 변천사를 통해서도 금방 드러난다. 제일 처음 우리는 성을 파는 여성을 윤락녀라고 했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타락한 여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매매의 발생원인도, 모든 책임도 이 여성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성들이 자신의 성을 팔기 때문에 성매매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반면, 성을 사는 남성에 대해서는 윤락남이라고 쓰지 않는 것은, 이 당시 성을 사는 남성은 윤리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이런 여성을 찾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락행위등방지법을 보면 윤락행위는 "불특정인을 상대로 하여 금융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받거나 받은 것을 약속하고 성행위를 하는 것이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성을 파는 여성의 행위만을 윤락행위로 규정지었으며 성을 사는 남성은 윤락행위상대자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법은 철저히 이중적인 성윤리구조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에는 엄연히 성을 파는 여성 뿐만 아니라 성을 사는 남성도 범죄인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러한 이중적인 성윤리구조는 남성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래서 성매매의 모든 책임은 여성이 떠 안게 되었다. 성을 사는 남성은 이중적인 성윤리에 의해 면죄되고 포주의 잘못은 공권력과의 유착관계에 의해 은폐되었다. 오로지 성을 파는 여성만이 윤락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으며 아무리 인권유린을 당해도 범죄인이라는 딱지 때문에 경찰에 고소도 하지 못하고 계속 노예와 같은 삶을 강요당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 여성단체들이 주장하여 나온 용어가 매매춘이다. 즉 성을 파는 여성만을 문제시할 것이 아니라 성을 사는 남성도 문제를 삼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춘'도 아닌 '매매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중적인 성윤리구조를 묵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악을 주장하면서 성매매 여성의 존재를 합리화시키려는 허무맹랑한 이론에 쐐기를 박고자 했다. 이번 개복동사건을 보더라도 그렇다. 경찰서, 소방서, 시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이 곳에 드나든 남성들과 인근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 곳에서 감금에 의한 불법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하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노예 매매춘을 암묵적으로 묵인해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매매춘 여성들의 존재가 필요악이라는 잘못된 편견 때문이다. 만일 이런 여성들이 없으면 강간과 성폭행이 늘어날 것이고 부부관계가 깨지고 군대에서 총 들고 탈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여성들의 존재는 필요악이라는 것이다. 남성의 성욕은 여성보다 강해서 한 여자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여성의 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남성들이 자신의 외도와 무절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여성에게는 순결을 목숨과 동일시하도록 하면서 남성에게는 외도가 마치 남성적인 힘의 과시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이중적인 성윤리구조가, 그리고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사회가 바로 남자들을 성 절제를 못하게끔, 할 필요가 없게끔 만든 것이다. 남성들이 성욕을 억제할 수 없어 성폭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많은 남성들을 모독하는 발언이다. 이것은 남성이야말로 동물적인 본능에 따라 사는 동물과 같다는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악에 의해 수급되는 여성이 내 가족일 경우에도 필요악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분명 비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내 가족 중의 한사람이 이런 필요악에 의해 성상품으로 전락되는 매매춘 여성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하겠는가? 몇 년 만에 시신으로 나타난 딸들, 누이들 앞에서 아연실색하며 절규하는 개복동 유가족들이 바로 우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러나 세 번째로 '매매춘'이란 용어도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자신들은 성을 파는 여성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을 판다는 것은 돈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여성들이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포주가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여성들은 이런 일을 오래하면 할수록 예금이 아닌 빚이 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자신들을 성을 파는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들은 성을 착취당하고 자신들의 성을 파는 것은 포주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매매가 바로 인신매매임을 입증하고 있다. 필요악이나 이중적인 성윤리구조라는 이 시대의 잘못된 성인식을 등에 업고 이를 비호하고 묵인하는 공권력의 힘을 받아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인신매매조직들이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범죄이다. 그러므로 성매매를 근절하는 것은 곧 노예해방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우리 여성단체는 무엇보다 성매매 알선의 고리를 끊어서 성매매를 근절시키는 방향으로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매매 알선자들에게는 5년 이상의 형을 선고하고 성매매로 인해 벌은 부당한 이득에 대해서는 재산을 몰수해서 추징하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여기에 종사했던 여성들을 비범죄화시키며 사회로 돌아가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복귀지원체계를 철저하게 수립해야 한다. 이제 성매매 근절은 곧 인신매매근절임을 깨달아 필요악이니, 인간본능이라는 말은 더 이상 거론할 가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kangsillee@hanmail.net

이강실/1959년 출생. 대학시절 엠네스티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 전북민주여성회를 거쳐 전북여성단체연합 상임의장을 지냈다. 전북민주여성회의 조직화운동을 주도하며 지금의 '여성의 전화'와 '환경을 지키는 여성들의 모임' 등 굵직한 여성단체의 태동을 이끌어냈다. 최근 군산 개복동 화재사건 진상규명과 성매매 근절을 위한 법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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