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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 | 칼럼·시평 [문화시평]
생의 깊이와 문화에 대한 환희가 충만하다 이경태 개인전
이건용 군산대 교수·미술학과(2003-03-26 16:40:49)

이경태 개인전이 군산시민문회회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그는 나름대로 그 자신의 예술에 대한 소견과 지지자(fan)들을 갖고 있다. 물론 이번 개인전은 열한번째이고 그간 공식적인 전시장에서 개최해 왔지만 군산의 괜찮은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면 그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문화담소의 장을 공식화된 전시장보다는 어떤 면에서 선호하고 있기에 모더니즘적 감상의 장의 위계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의 팬(fan)은 다양하다. 중학생으로부터 3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음악애호가나 여류시인들, 4∼50대 문화취향적 중년 부인들도 꽤나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여성취향적이라거나 회고적 향수가 전부라는 비판적 언급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나름대로 조금은 별난, 그리고 그 자신으로서 솔직한 문화적 발언과 행동을 갖고 있는 그이기에 그의 예술에 대한 그 자신의 열정 만큼이나 확실한 그의 성격을 그는 갖고자 한다. 그것은 또한 그의 음악에 대한 집착과 음악적 생활화는 클래식에서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이며 그가 연재하고 있는 이 지역 모일간지 신문의 대중성 그리고 예술(미술 음악 문학)적 정서가 유효하기 때문이고 그의 회화 작품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일부터 설연휴가 시작되기 전주부터 설기간을 전시기간으로 잡은 듯 하다. 이 기간은 모든 전시자가 기피하는 기간이지만 그는 오히려 삶과 예술이 근친한 기회로 받아들이고 그의 전시도록 중간에 '봄날은 간다'라는 대중가사와 함께 부둣가에서 찍은 꽃무늬 치마를 입은 중년시절의 그의 어머니 스넵사진을 들뜬 우리네 명절속의 그의 전시 만큼이나 특별한 정서를 자극하고 일상과 예술을 회화화하는 특별함을 느끼게 한다.
가는 이번 전시명을 <미술에세이>라고 하였듯이 쓰다버린 서랍이나 굴러 다니는 단추들, 여기저기에서 잘라낸 천조각이나 털옷조각, 나뭇가지 등등을 칠하거나 바느질하여 그가 그은 선묘적 선들과 어울려 하나의 그림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의 화실에는 10미터가 넘는 종이에 그린 그림이 말려있는 경우도 있는데 하루라도 화실을 출근(?)하지 않으면 그의 삶이 불안할 것만 같이 열심히 제작에 몰두하는 그에게 음악과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는 일상의 연장으로 보여진다.
가끔 그의 귀여운 어린 아들은 작은 액자나 소도구를 그를 위해 주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는 이러한 아들의 봉사(?)를 마다하지 않고 감동으로 받아들인다. 어떤때는 곡식알까지 물감과 함께 화면에 붙이거나 컴퓨터 칩, 작은 돌멩이, 마대, 동판 등을 사용하여 손과 함께 의식이 가는데로 물감을 바르거나 긁어 매일같이 창작한 작품이 50평 화실 가득히 넘치고 그 일부가 이번에 전시된 것이다.
그의 창작태도의 장점은 주저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태도이다. 그는 삶의 사유와 행동방식에 있어서 지엽성과 함께 그것들이 갖는 서로 다른 사소한 기억과 장소와 맥락을 한 순간에 하나의 싸이트로 만드는 예술적 풍부성과 상실되고 잃어버린 시간과 장소들을 되살려내는 점이다.
그는 자주 말하기를 지금보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채근하면서 지나간 시간과 장소 속에 그의 의식을 일깨우는 모든 사물들과 사건이 얼마나 그의 작품의 요소로써 중요한가를 그가 있는 지금 여기에서 긍정하거나 후회하는 것 만큼 현재를 충만하게 하고 서술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또한 아름다운 천조각 속의 무늬에 유혹되거나 이유없이 걷거나 레스토랑 의자에 앉아있다가 크게 용기를 내어 화실로 질주하거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하나로 수십미터의 화폭에 도전하는 것이 그의 삶이요 예술행위로 생각된다. 그는 현재 아파트 지하에 화실을 갖고 있지만 전에 화실은 더욱 습기가 차서 제습기가 고장나도록 돌렸으며 전기세를 톡톡히 지불했지만 그의 종이작품과 잘못 보관한 작품은 습기와 곰팡이로 못쓰게 되는 것을 그는 가슴아파했다. 이런 한국적 현실은 이경태만의 일이 아니겠지만 보다 더 개방적이고 전향적으로 화가와 작가들의 아트리에에 대한 국가적 대책과 제도화는 시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이경태는 언제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이 역시 대부분 한국작가가 거의 마찬가지이다.) 낭만과 용기를 갖고 미친 듯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를 좋아하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탈렌트나 가수나 영화배우, 문인들 같이 미술가들도 자기 몫의 팬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는 가끔 "나는 재주가 없어요. 그런대신 꾸준하고 성실하게 남보다 더 열심히 작업해야 한다고 다짐하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가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문화를 향수하려는 많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매혹하고 있고 그의 회화의 일관된 장점 때문에 그의 팬이 현존하기에 우리들의 기억속에 현존하며 살아있는 것이다. 그는 필시 새로운 타입의 [미술에세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있으며 성공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어떤 측면에서도 그의 작업은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으며 성급하게 그를 평가하는 일은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최근 그의 그림속에는 환한 빛으로 충만하고 생에 대한 깊이와 문화에 대한 환희([탱고는 춤이 아니고 문화이다])가 있으며 구원에 대한 소망(사다리, 십자가)을 엿볼 수 있다.([백색지대], [나무가 기도하는 집]) 이와같이 자신의 내면의 자전적이며 에세이며 가까운 그 많은 작품들이 하나도 손상됨이 없이 특별한 계기를 통하여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기대한다.

이건용/군산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파리비엔날레, 쌍파울로비엔날레 까뉴국제회화제 등에 한국대표작가로 참가했다. 75년 이후 퍼포먼스를 지속해 오면서 광주비엔날레 등 국제전에서 설치미술을 발표하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그의 회고전을 1999년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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