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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 | 칼럼·시평 [연극평]
연극평그 여자의 소설
이광기 전일고등학교 교사(2003-03-26 16:54:25)

연극이 시작하기전의 객석.
짧은 시간동안 관객들의 가슴은 야릇한 설레임과 두려움, 그리고 왠지 모를 떨림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 시간동안 미리 사두었던 프로그램을 읽어본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무대를 유심히 보게된다.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는 앞으로 전개될 극의 동선을 대강 예측해볼 수가 있다.
간간이 몇몇 연극들은 무대세트를 보는 순간에 '아! 이 극은 어떠한 동선을 갖고 움직이는 지를 알겠어...'라는 느낌이 온다. 몇 번 연극을 본 관객들은 배우들의 입장 퇴장이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어떻게 동선이 처리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연극을 보는 관객들은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어린 시절에 많이 읽었던 만화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유감스럽게도 만화의 결론을 이미 독자에게 간파 당한 경우, 그 만화는 휘휘 넘기게 되어있다. 가끔 쓸만한 장면이 나오거나, 주인공이 누구와 만나는 그런 정서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그런 곳에서만 잠시 눈을 멈출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 이 작품의 무대세트에서는 그런 예측이 불가능했다.

무대는 중앙을 기준으로 양 옆쪽으로 꽃 장식을 한 검정빛의 천들을 삼단으로 배치하였다. 배경으로 한 여닫이문의 격자무늬 창살은 이 극이 현대물이 아님을 은연중 상징하고 있다. 암전과 함께 무대 위쪽에 떠오르는 '××년 여름'이라는 선명한 글씨는 오래 전의 사진첩에서 보았던 흑백사진들을 연상시킨다.
부모님들께서 특별한 날에만 사진을 찍어 안방 천정쪽 잘 보이는 곳에 갈무리해두곤 했었던 사진들. 그리고 그 사진 아래쪽엔 하얀 글씨로 ××년 ××월 ×일 이라는 글귀가 항상 써있었다. 마치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무대가 밝아지면서 정면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여인들. 한쪽은 정갈한 부자집 안방마님, 그 반대쪽은 궁핍한 아낙네. 이렇게 극은 시작된다.

극의 내용은 주인공 작은댁이 입에 풀칠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시댁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남의 집 대를 이을 씨받이로 들어간다. 그래서 주인공 작은댁은 본처에게 갖은 구박을 당한다. 본처인 큰댁과의 갈등 속에서도 작은댁은 마침내 아들을 낳지만 부자집 남편 김씨의 폭력과 괴팍한 성질 때문에 본처인 큰댁과 작은댁 그들 둘 사이엔 어느샌가 자매애(姉妹愛)가 생기게되며 둘은 친자매처럼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그런데 6.25 동란중 큰댁이 미군에게 윤간 당하고 목 메달아 자살을 한다. 작은댁은 큰댁을 암매장한다. 부자집 남편은 의처증이 점점 더 심해져 작은댁은 절에 의탁한다. 그러나 남편이 풍에 맞고 쓰러지자 작은댁은 다시 산에서 내려오고, 남편의 노망과 폭력에 한계를 느낀 작은댁은 남편과의 한바탕 싸움으로 자신의 삶을 반전시킨다. 참으로 암울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우리 어머니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담겨져 있다.

연극은 우리네 인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연극은 감동적일 때가 많다.
물론 영화도 그렇지만, 배우와 관객이 제한된 공간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호흡을 느낀다는 점에서, 연극이 주는 감동은 영화에 견줄 수 없다.
특히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거의 없는 소극장에서의 연극은 극의 흐름에서 단 한순간도 관객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극의 진행에 있어 가능한 많은 변화를 주어 관객들이 간접체험케 하고, 관객들에게 사고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
당연히 배우들이 그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자칫 무겁고, 신파조의 최루성 작품이 될 수 있었던 이 연극을 [귀분네]를 비롯한 모든 연기자들의 능숙한 연기로 순간순간 재미있고, 약간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우선 [귀분네]의 역을 한 전춘근의 연기는 노련미가 가득했으며, 등장인물들의 전반적인 호흡의 완급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자칫 밋밋한 2차원적인 인물로 머무를 수도 있는 [귀분네]를 극의 흐름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우리 주변의 넉살좋은 아주머니로 만들어 놓았다. [남편]역을 맡은 오진욱의 능글맞고, 가히 폭력적이며, 실쭉실쭉 거리는 비아냥, 그리고 여성들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무시해버리는 태도 등의 연기도 훌륭하였다. 그의 연기는 아주 강력해서 단 두 번의 등장으로 극 전체에 긴장감을 주었다. 극 내내 그가 무대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연극학에서 말하는 '복잡화과정'은 주인공이 점점 눈앞에서 출구가 막히는 것을 목격함을 말한다. 극 속에서 [작은댁]의 그 막막함을 잘 설명해주는 듯하다. 한없이 여리기만 하고, 어리숙하며, 모든 것을 자기 잘못으로 돌리는 우리네 어머니의 어머니들. 그런 배역을 천연덕스럽게 잘 소화해낸 [작은댁] 정경선의 역량에도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던 연기자는 [큰댁]의 김경미이다. 그이의 발성은 아주 정확했으며, 한 호흡으로 가져갈 수 있는 대사에 무리를 두지 않고 정확하다. 그래서 그이의 대사는 아주 또렷하며, 연기에 무리가 없다. 그의 연기엔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조연 몇몇의 연기엔 어색함이 흐른다. 극에 몰두하지 못함이리라. 대사의 양이 적을수록 그 역을 맡은 배우는 그 대사가 완전히 자기 몸에 베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극의 흐름에 무리가 없을 듯하다.

특히 연출은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했을 때 무대에서 흔히 나타나는 주연배우의 잦은 등퇴장과 암전을 아주 슬기롭게 극복하였다. 암전이 잦으면, 그 암전 시간이 극의 흐름을 빼앗는데 연출 류경호는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자막 처리와 같은 독특한 방법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암전의 시간을 느끼지 않게 했다. 따라서 배우들의 연기에서 유연한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연출의 무대활용이 류경호식 동선이라는 점이 느껴질 만큼 공식적이다. 연출이 갖고 있는 연출형식은 다소 파격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각설하고, 이 [그 여자의 소설]이란 작품은 우리 어머니세대에서는 흔히 일어났었던 일이지만,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그러면서도 실제(實際)하는, 그래서 답답하고,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를 연극이란 매체를 사용하여 우리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우리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모시고 함께 보았으면 하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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