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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칼럼·시평 [칼럼]
열린전북 11월호 이정덕 비판에 대한 반론
홍성덕 정부기록보존소 학예연구사(2003-07-03 13:49:18)

이글은 전북대 이정덕 교수(문화인류학)가 {열린전북} 11월호에 실은 '{문화저널} 10월호 특집에 대한 반론'에 대한 홍성덕 학예연구사(정부기록보존소)의 재반론이다.

문화저널은 지난 10월호에 최근 붐처럼 일고 있는 지자체의 도시정체성 찾기가 자칫 역사상업주의로 흐를수도 있다는 내용의 '도시정체성 찾기와 역사상업주의'라는 특집을 다뤘었다. 이교수의 반론은 문화저널 특집 중 장세길 기자의 "도시정체성 찾기는 '또하나의 건설?'"과 홍성덕 학예연구사의 "온고을 전주의 역사 느끼기와 만들기"에 대한 반론이다.

이교수는 이 두 개의 글이 "전주역사에서는 팔아먹을 거리로 조선시대의 것이 가장 낫다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 보인다며 "역사와 역사마케팅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 역사에 대한 연구를 역사에 대한 마케팅과 자꾸 혼동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편집자주


{문화저널} 10월호에 "온고을 전주의 역사 느끼기와 만들기"라는 글을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전북대 이정덕 교수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열린전북}에 역사마케팅을 옹호하는 반론을 게재하였다. 이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전주의 이미지 마케팅 관점에서 역사가들이 밝혀낸 사실들을 기초로 어느 것이 가장 유리한가에 대한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시대의 유형적 무형적 문화유산이 전주에 남아있고 우리의 사고방식, 생활, 건물, 국악, 음식, 공예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역사적 인물 가운데 전주와 연계시킬 만한 사람 중 이성계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성계를 역사마케팅의 관점에서 강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교수의 주장과 필자에 대한 비판에 대해 반론이라기 보다는 몇가지 궁금증과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필자를 비롯해서 적어도 특집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역사상업주의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적은 없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만일 이교수가 그렇게 이해했다면 그것은 독자의 몫이므로 중구난방으로 재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교수의 반론을 보면 적어도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식, 즉 역사를 왜곡하고 과대포장하는가를 문제삼아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이교수의 글 중에 "내가 조선이라고 제시한 분야가 상업성이 있을 것이라는 전문적인 분석을 해 본 적이 있느냐? 없다.… 체계적인 분석을 위해 용역을 줘도 용역결과가 도나 시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아 그 결과를 믿기도 어렵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상품화하려면 조선시대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주역사에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니 정체성도 그쪽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필자는 이교수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용역의 결과를 놓고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의적인 평가이다. 이교수의 말처럼 조선이라는 분야가 상업성이 있는지 분석하지 않고 조선을 '상품화'하고 정체성도 '유도'하라는 주장은 이교수의 생각일 뿐이다. 용역의 결과가 조선으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과를 선정해 놓고 용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용역을 매도할 것이 아니라 과연 조선이 전주의 역사마케팅의 주요한 요소인지에 대한 용역발주를 시나 도에 재촉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예향과 맛과 멋의 고장, 풍류의 고장으로서의 전주 이미지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교수는 "그것이 유효한지에 대한 긍정적인 자료는 별로 제시하지 않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같은 질문을 이교수에게 반문하고픈 심정이다. 필자는 견훤이나 이성계에 대한 작금의 주장이 전주의 종래 이미지에 대한 비판없이 진행되어 왔음을 지적하였다. 즉 새로운 마케팅의 주제로서 이성계를 선택하고 그것이 맞다고 주장하려 한다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마케팅 주제였던 이미지들(예향, 맛과 멋, 풍류 등)이 왜 상업성이 없으며 전주의 정체성이 될 수 없는가를 주장해야 되고, 아울러 그렇다면 견훤이나 이성계는 타당한가를 검증해 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교수는 분석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이성계가 전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전주시민이나 국민들이 다 알고 느끼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유효하다"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자료를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논리적인 모순이다. 자신의 생각은 자료가 없어도 되고 타인의 생각은 자료가 있어야 되는가?

적어도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성계보다는 맛과 멋, 풍류, 예향 등의 이미지가 전주의 이미지로 일반인들에게 크게 인식되어 있다. 이점에 대해서 이교수는 "권삼득이나 전주대사습놀이가 있다고 전주가 소리의 고장인가? 그렇다면 다른 곳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예향이나 국악 등의 이미지에 대해서 다른 지역도 존재하는데 왜 전주가 그런 이미지를 띠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역시 동일한 질문을 다시 하고 싶다. 조선문화와 이성계는 전주만의 이미지인가? 이성계는 왜구토벌 때 잠시 전주를 들른 것과 그가 전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성계와 전주의 역사성은 극히 미약하다. 조선문화 역시 전주보다도 풍부하게 상존하고 있는 지역은 전국에 걸쳐 있다. 이교수가 현재도 예향인지에 대한 심포지움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듯이 그것은 이성계나 조선문화와 전주에 대해서도 필요한 요소이다.

이쯤해서 생각해보면 이교수의 역사마케팅에서의 전주 이미지는 무엇인가에 대해 마케팅선정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교수의 주장에는 공간적·시간적으로 '전주'를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역사마케팅의 측면에서 상업성 있는 스타의 선택이 필수적인데 '전주'라는 공간 속에서는 조선시대와 이성계 가장 낫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케팅은 '전주'라는 공간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팔릴만한 것을 선정하는 것은 내부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조선시대의 문화'와 '이성계'를 선택하는 것은 그것이 전주의 역사발전과정에서 가장 고부가가치를 가지기 때문이어서는 안되며, 다른 지역에 비해서 볼 때 '경제성'이 있어야 마케팅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문화특구에 큰길을 뚫어 놓고 가게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는 방식이 과연 다른 지역에서 개발해 놓은 것과 차별성을 가지고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개발방식인가 하는 것이다. 전주 교동지구의 특징은 '골목'과 낮은 처마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골목문화는 전주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이것을 민속촌이나 보문단지처럼 만든다면 과연 그것이 장사꺼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조선시대의 문화와 이성계를 역사마케팅으로 선정하는 것 역시 전주만의 특징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경제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안동의 하회마을에 만일 큰길을 뚫어 대형버스들이 마음대로 들락거리게 만들면 그것이 곧 개발일까? 결국, 역사마케팅을 선정하고자 할 때 그 공간적 범위는 전주가 아닌 우리나라 전체로 확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교수는 "지역민이 느끼고 있을 때만 역사가 살아 움직이게 된다"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공감하기까지의 과정"은 말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언제까지 민중이 자발적으로 느끼고 참여하고 선도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 나아가 리더가 민중이 동조할 가능성이 큰 이미지를 찾아내고 이를 민중에게 설득시키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사회발전에서의 '올바른'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 필자 역시 모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리더가 말하는 동조할 가능성이 큰 이미지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이다. 즉 과거 군사독재정권 때에 그러했듯이 왜곡하고 과대포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역사마케팅이라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역사적인 진실이 얼마만큼 과대포장되지 않고 온존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마케팅은 역사적인 소재를 관광자원화함으로써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다. 즉 역사적인 사실은 무기일 뿐이고 목적은 경제이윤에 있다. 초기의 순수함과는 달리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 그것이 경제적이든 아니면 정치적·사상적이든간에 역사적인 진실은 조금씩 왜곡되었던 것이다. 전주와 조선시대의 문화 그리고 이성계가 역사마케팅으로 성공했을 때 혹, 전주만이 조선시대 문화의 보고이고 이성계가 전주에 역사적으로 큰 공헌을 했다는 편견과 왜곡은 만들어지지 않을까? 역사마케팅의 자본주의적 잉여생산이 진전되었을 때 과연 역사적인 진실을 수호하려는 민의 의지가 역사마케팅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을까? 역사마케팅이든 역사상업주의든 그것의 목적이 이윤 창출에 있음을 우려하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담석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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