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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 | 칼럼·시평 [모악일기]
따뜻한 세상
박남준(2003-07-03 14:52:18)

한해가 가고 또 그렇게 한해가 시작되는군. 오늘 하루는 뭐 하고 놀까. 그릇을 있는 대로 꺼내 썼으니 설거지도 잔뜩 밀렸구나. 개울가에 나간다. 이크 손 시려워서 빨래는 못하겠다. 겨우 설거지를 마친다. 손이 잔뜩 곱았다. 아랫목에 들어가 언손을 녹인다. 담배도 떨어졌군. 잘됐어. 담배를 사러 집을 내려가다 아랫마을 아는 분의 집에 들렸다.

시내 나가나 봐요? 담배가 떨어져서요. 음반도 한 장 사고 그리고 고무장갑도 사올려고요. 이 기회에 담배를 한번 끊어봐요. 음... 뭐 담배 끊는 일도 해볼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제가 좀 시키고 담배들 피워. 술집에 오소리를 잡으러 왔나.

가방에 뭐가 그렇게 가득 들었어요. 담배요. 아참 새해부터 담배 값이 오른다고 해서 조금 더 샀어. 어어 그거 사재기 아냐. 뭐 사재기? 하긴 그렇네 사재기는 사재기네. 나 잠깐 나갔다 올께. 어디? 사재기 신고하러. 아이고 그래 신고해라 신고해. 잘난 담배 두보루 사재기로 걸려 들어갔으면 좋겠다.

물가는 오르고 주머니는 텅텅 비고 올 겨울은 눈 구경도 힘들구나. 술이 취해 집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저러나 그 사람들 나도 걱정이 되는구나. 아랫마을에서 들었던 이야기. 러브호텔에서 함께 차를 타고 나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두 사람 다 실려갔다는 그 사람들 양쪽 집안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걱정도 팔자다. 그런 사람들 걱정 해줄 필요도 없다. 돌아보면 이 어려운 시대 따뜻한 손을 건네며 함께 건너야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힘겹게 삶의 고된 강을 건너는 사람들만이 진정 생색내지 않는 따뜻한 손을 건넨다. 그들이 밝히는 등불이 있어 세상은 아직 빛을 거두지 않는다. 따뜻하다. 창호지에 가득 밀려오는 저 환한 문밖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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