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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 | 칼럼·시평
[서평] 공감의 시대
관리자(2011-01-06 14:36:23)

공감의 시대 만인의 투쟁시대는 끝날 수 있을까 - 이재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적자생존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공감생존의 시대이며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호모 엠파티쿠스)”라는 제러미 리프킨의 진단은 과연시대에 대한 예감을 넘어 지배적 현실이 될 수 있을까.『엔트로피』, 『수소혁명』, 『노동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등 화제작들을 통해 미래학자로서 무게를 더해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워튼스쿨 제러미 리프킨 교수의 최신작『공감의 시대』는 그전 저작의 완결판처럼 보인다.800쪽이 넘는 꽤 두꺼운 책에서 리프킨은 공감(共感·empathy)을 주제어로 인류사의 여러 저작물을 꼼꼼히 훑어본다. 

철학, 심리학, 신학, 정신분석학, 생물학은 물론 다양한 문학작품을 거론하며 종횡의 지적 향연을 펼친다. 인간 본성의 특성‘공감하는 능력’ 리프킨은 제1부에서 인간이 과연 공감적 존재인지에대한 고찰을 펼쳐 보이고 2부에서는 인류사를 공감의진화과정으로 설명한다. 이 진화과정을 리프킨은 엔트로피적 입장에서 에너지-커뮤니케이션의 변화과정과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에너지 제도의 고도화에 따라 인간의 소통 방법도 고도화되고, 다차원으로변화되었다는 것이다.제3부에서 리프킨은 이제 현대는 공감의 정상을 향해달려가는 시기라고 한다. 20세기를 경과하며 도시형인간이 탄생하고 여행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며 언어에서도 세계어가 탄생한다. 인류가 각자의 정주 영역을넘어서 가치관이 유사해지기 시작하고 보편적 인권에대한 공감도 확대된다. 그런데 동시에 공감적 감수성이극대화된 한편 엔트로피 수치도 극대화되면서 전 지구적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지금까지 서양의 세계관은 토머스 홉스에서 연원하는투쟁적 인간관, 사회관이 지배해왔다. 홉스는 저서『리바이어던』(1651)에서 인간은 저마다 자유롭고 평등하여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권리인‘자연권’을 가지고 있으나, 각자가 모두 그와 같은 권리를무한히 추구하면 결과적으로‘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자연상태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인간의 무자비한 투쟁상태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인간은 사회계약에 입각한 강력한 국가, 즉 거대한 리바이어던을수립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홉스 이래 서양 철학과 정치학은 이러한‘성악설’적 기조 위에서 개인의 욕망과투쟁, 사회적 구성 원리를‘경쟁’과‘국가’로 집약시켜왔다.자본주의와 국가의 발전은 여기에 젖줄을 대고 있는 것이사실이다.‘ 인간은모든인간에대해늑대’라고규정한 프로이트도 인간의 근본적 이기심을 성적 욕구로 치환하여 설명했다.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의 핵심은 적자생존론으로자본주의 사회 인간관은 어떤 덧칠을 해도 이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삶의 질로 관심이 달라지는 사회 제레미 리프킨은 이 주류이론에 대항하여 다른 분석틀을 제기한다. 리프킨은‘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현재의 사회시스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공감의 진화과정’을 통해 펼쳐 보이며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경제 패러다임의 종말을 선언하고 경쟁의 문명은 결국은 폐기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원리라고 단언한다. 20세기 지성사의 문을 연 마르크스 등은 당대 자연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사회적분석에 투영했다. 리프킨의 가설은 거울신경세포(별칭공감뉴런 empathy neuron)란 유전학의 발견 성과에기대고 있다. 

공감 의식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서 거울신경세포가 인간의 투쟁적 본질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리프킨은 이전 저작에서 제시했던 개념들을‘공감’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로 통합해낸다. 유러피안 드림,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등을 총괄하는 문제의식이 오픈 소스와 3차 산업혁명의 시대, 공감의 시대로 수렴된 것이다. 적자생존의 낡은 원리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체제의 개념틀은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글로벌 경제를지칭하는 분산자본주의, 재생가능한 에너지 시대로 전환하는 새로운 에너지 혁명으로서 제3차 산업혁명, 유러피언 드림으로 표상되는 경쟁 일변이 아닌 사회 전체의 삶의 질 증진, 생물권 의식 등과 같은 것이다. 

20세기가 적자생존 약육강식으로 표상되는 무자비한독점자본주의 시대였으며 재산의 양과 질이 가치의 중심에 선 시대였다면 이제는 관계의 질과 의미, 즉 삶의질로 관심이 달라지는 사회가 21세기 세계인의 꿈이고상식이 된다는 것이다. 절멸의 위기에 처한 인류 문명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지켜나가자 그것을 리프킨처럼 <공감의 시대>라 명명하든 또는 자본주의 이후의 어떤 세계로 이름 붙이건 그 세계가 저절로 우리 앞에 자연발생적인 역사적 연속성으로 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 같은 미래학자들은그런 시대적 징후와 발전코스를 종합적으로 개념화할뿐이다. 장기적인 역사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공감의 시대가 널리 읽히는 이 시각에도 현실자본주의,아메리카 독점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적자생존의 세계화는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통합하며 낮은 곳을 무릎 꿇린다. 선진제국의 입장에서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며 후진국의 산업발전을 통제하고, 엔트로피를 낮출 것을 강요할 때 후진 개발사회는 또 다른 제국주의의 그늘을 목격하는 역설이 발생한다.누가 어떻게 이름 붙이건 결국 우리 인류문명의 대안이속도주의에 기초한 대량사육 대량살육과 대량소비, 무제한적 경쟁과 소유의 문명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인류가 도달할 사회는 리프킨이 개념화한‘네트워크화된 분산 자본주의’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어떤 사회이다.리프킨도 마지막에‘공감의 문명’이 이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썼다. “우리는 지구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생명권과 전체 인류에게로 공감적 범위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기후 변화와 대량살상무기의 증식이라는 형태로 무섭게 속도를 올리고 있는 엔트로피라는 괴물과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프킨은‘우리는 제 때에 지구촌의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는 질문으로 책을 마감했다. 결국 공감의 시대를 현실화하는 것은만인의 투쟁시대를 마감하려는 우리의 의식과 집요한실천에 달려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절로 주어지는것이 아니라는 아픈 자각이 여기 숨어있다. 계급적 분열과 국가간 충돌을 넘어선 협력과 공유의 세계, 진정한세계시민의 세계를 우리 세대 안에 실현할 수 있을까.두터운 책을 내려놓으며 나 또한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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