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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 | 칼럼·시평
[서평]『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장편소설
관리자(2011-02-14 11:20:01)

『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장편소설 신학과 철학의 긴 역사로 - 김잠선 전북대학교 철학과 석사과정 


원작과 근작 모두『7번국도』에는, 절단된 텍스트들이 두서없이 밤을 채우는 꿈처럼 늘어져있다. 친절한 소설식 서사구도가 소멸되어버린『7번국도』에서 사건들은 분절되어 각각 하나의 음들을 파열한다. 이렇게 해체된 사건들은 상세하게 그리고 세부적으로 섬세하게 확대되어, 각각의 사건들은 상호 연관성을 엎어버리고 개별적인 각각의 주제가 되어 열거되어 있다. 


추론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를 유희나 은밀한 제약처럼 구성하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내러티브가 분명한 형식에 익숙한 독자라면 분명 한바탕 신경질을 냈을법하다. 20대의 가슴을 훑은 20대와 20대의 가슴을 들여다본 40대의 관점 1996년 8월 7일에 썼던『7번국도』와 2010년 12월24일에 다시 쓰인『7번국도』는 약간의 추가된 내용들(소주제들에 사용된 용어들, 내용에 덧붙여진 약간 좀더 섬세해진 설명들) 이외에 텍스트의 행간마저도 거의 그대로 옮겨져 있다. 


하지만 다시 쓰인『7번국도』는, 원작에서 14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형성된 저자의 시선이기에, 보르헤스의『돈키오테』만큼이나 원작과는 별개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즉 단편적으로 파편화된 채 뚝뚝 떨어지는 내용의분절은 원작『7번국도』나 다시 쓰인『7번국도』나 매한가지겠지만, 소설 속에 함의된 의미들은 다른 차원에 해석을 유도한다. 14년 전 원작에서는 소설 속 20대 주인공의 권태나 절규, 일상적인 외로움 같은 것에저자의 음성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쓰인『7번국도』에서 저자는 어쩌면 과거에 지녔던 그 감정들을 철저하게 메타와 시킴으로써 좀 더 객관적인 의미에서 주인공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20대의 가슴을훑은 20대와 20대의 가슴을 들여다본 40대의 관점은어떤 식으로든지 많은 차이를 낼 것이다. 7번국도, 그 길을 다시 가다 인터넷 검색창에‘7번국도’를 치면 부산과 포항을연결하는 국도라고 나온다. 이 의미에서 7번국도는 길이다. 이 길(道)은 현실에서 실재하는 길이다. 이 길의의미를 좀 더 확대 시킨다면 인간사를 연결하는 관계망과 지적 토대를 이루는 모든 책들, 그리고 문화와 종교를 아우르는 일체의 맥락에서 길은 모두 연결되어있다. 소설에서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의 길을띄워놓았다.소설에서 7번국도는 외계인과 유령이 등장하고 오아시스가 있는 공간이며, 죽어버린 나무와 카페의 이름이고, 우체부 할아버지의 삶의 지평이고, 전염성이있는 병이기도 하며, 억압과 기억을 환치시켜주는 변환에 차원이기도 하다.


전체줄거리는 주인공이 7번국도로 자전거 여행을하는 전후의 사건들을 열거하였다. 주요 작중인물로‘나’와 최재현과 서연, 세희가 있고 약간의 성격들을묻혀내는 카페 주인과 소화물 창구의 역원, 숙직선생들, 세희의 외삼촌과 외할머니 그리고 아빠, 우체부 할아버지가 있다.위에서 열거한 작중인물의 역할은 원작『7번국도』서처럼 다시 쓰인『7번국도』에 그대로 계승되었지만인물들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설사 텍스트의 형태가 그대로 옮겨졌다 할지라도 주인공‘나’의 관점이 달라진 만큼 작중인물들의 성격 역시 달라졌다.원작에서 작중 인물‘나’는 그의 시점으로 소설전체가 흘러가지만, 그렇다고‘나’는 결코 어떤 사건에든지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원작에서 전체를 다 읽고도 감 잡을 수 없었던 나의 성격이, 원작‘오랜만에 기분 좋은 하루’가 다시 쓰인이번 작품에서‘된장찌개 국물에 반쯤 잠긴 두부’로바뀌면서‘우리가 가장 소중이 해야 할 것’에서 새로운 인물임을 도무지 의심할 바 없다. 


원작의 주인공‘나’에게 구원은 책 전면에서 흘러나오는 팝처럼 머뭇거림과 동시에 부질없는 희망 같은 것이었다면, 다시 쓰인『7번국도』에서 주인공은 작중인물 마우로펠로시처럼 변절한 듯이 보인다. 물론 이런 변화는세희를 향한‘나’의 감정이 달라진 탓으로,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다면’에서 보인‘나’의 능동성은 책을 덮은 후 여느 때처럼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최재현과의 관계 맺음에 관하여 보자면, 원작에서재현의 돌발적인 행동과 어휘가‘나’를 힘겹게 함과동시에 그저 함께할 대상이었다면, 새로 쓰인『7번국도』에서‘나’는 재현의 행동을 관조함과 동시에 이해하며 사랑해야할 사람 중에 하나로 바뀐 것이다.서연을 완전히 보낼 수 있게 된 재현의 희망역시, 원작에서보다는 더 진취적이며 낙관적이다. 


다시 말해원작에서 재현의 분노와 절망은 다시 쓰인『7번국도』에서 잃어버렸던 손가락(억압과 분노의 잉여물)을 되찾음으로서 극복되었음이‘짜장면’을 통해 보여준다.원작의 세희는 최재현과‘나’사이에 있으면서도그 둘 중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일찍 조실부모할한 탓에 그리움이 뭉쳐서 그렇다고‘나’는 생각한다.아무에게도 의탁하지 않는 세희의 몸은 새털처럼 가볍게 옮겨 다닌다. 그러나 다시 쓰인『7번국도』에서세희는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만난 재현과‘나’둘을 모두 사랑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난 이후 그녀는 아이를 낳고 사는 일상적인 여자가 됐다.


그밖에 우주인과 교류하는 카페 주인은‘나’가 7번국도를 여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으며, 7번국도 희생자 리스트를 수집하는 소화물 창구의 역원은 나와 재원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으며, 비틀즈의노래에 취한 숙직선생은 일상의 편재성을 그리고 우체부 할아버지의 광기는 쓸모없는 일에 대해 묵상하는 법을 일깨워 주었다. 7번국도, 그 이후 『7번국도』가 지닌 텍스트의 분절성과 폐쇄성이 다시 쓰인『7번국도』에서는 어느 정도 와해된 느낌이든다. 재배치된 구성은 좀 더 체계적으로 변했으며,‘나’나 재현 그리고 세희와 서연의 엉거주춤했던 성격들이 안전하게 자리잡아버렸다. 소제목들 간의 두서없던 연관성들의 상호교차 지점이 자주 발생하게되었고, 7번국도에 이름 붙여진 다양한 의미들은 그럴싸한 자연적 의미를 내포하는 바람에 언어의 자의성이 깨져버린 느낌조차 든다. 어쩌면 이런 평가는이미 원작을 읽은 뒤, 저자의 텍스트가 익숙해져 버린 채 새로 쓰인『7번국도』를 앞에 둔 독자의 시점이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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