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1.3 | 칼럼·시평
[꿈꾸는노년] 오정희의「동경」
관리자(2011-03-04 18:30:02)

오정희의「동경」 노년의 일상과 죽음의식 - 전흥남 한려대 교양학부 교수·국문학 


오정희의「동경」은 오정희의 초기소설에서 보이던 고립된인물의 파괴 충동에서 벗어나 일상의 무의미함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로 오정희는1982년 제15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대부분‘능란한 언어구사와 섬세한 묘사’에 후한 점수를주었으며,‘ 예리한 통찰과 완벽한 구상’,‘ 은유와 암시를 곁들여 엮어지는 독특한 문체’에도 주목하였다.오정희의「동경」은 노부부의 하루를 그린 소설로 오랜 병석에 계신 아버지의 일상에서 단서를 얻었다. 정년퇴임 이후노년의 일상을 살고 있는 그를 초점화자로 삼아, 그와 아내의 한나절의 생활을 점묘적으로 그리는 가운데 노년의 삶을응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품의 주요 서사는 노인들의 삶의 공분모적 요소들인 무료한 일상과 무력한 육체, 죽음에대한 강박적 의식 등의 문제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에서 노부부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사뭇 대조적인 태도와 의식을 드러낸다.그럼, 두 노인이 어떻게 다른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남편은 육체적 노화와 무료한 일상, 죽음에 대한 강박적 의식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그것들에 대한 저항선을 형성한다. 그가 점심 식사 시간 전이면 식욕이 돋워지도록 산책에 나서는 행위나, 흰 머리 올이 나면서부터 염색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검고 단정한 머리칼”을 유지하는 행위는 모두 늙음에 대한 그의 심리적인 저항선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저항감은 틀니의 문제에 이르러 보다 완강하게그리고 보다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그는 노년의 무료한일상이 버겁고, 또 그마저도“한 순간에 정지할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의식하면서도, 자신 앞에 주어진 일상에“육체와생활을 지배하는”나름의“규칙과 리듬”을 부여함으로써 노년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선을 구축한다. 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죽음의 의식에 대해서도 그는 저항한다.


 죽음의 의식은 무료한 일상의 텅 빈 의식을 뚫고 문득문득 들어서곤 한다. 한마디로 그는 죽음의 의식에 대해 포용적이지않다. 죽음이 생명이고 빛이라는 그의 역설적 인식 속에서그가 결코 죽음을 죽음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암시해 준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강한 저항선을 구축하고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 결과 그는 생명에 대한 지향성을 드러낸다. 이는 여섯살 난 이웃집 아이를 대하는 그의 태도와 의식을 통해서도확인된다. 이웃집 아이는 나이 상에서 노부부와 대비적 맥락을 형성하면서 죽음의 영역에 맞닿아 있는 노부부와는 달리생명의 영역을 상징하는데, 그가 무력해진 육신이 원활하게기능할 수 있도록 지팡이를 짚으며 느릿하게 산책을 하는 동안 아이는 팽팽히 알이 선 종아리를 드러내 놓고 자전거를타며 비탈길을 달려 내려와 그의 곁을 지나가거나, 그가 여름 정오의 햇살이 내리비치는 뜰의 꽃과 나무 들을 바라보며어느덧 냉혹한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에 아이는 산 자의 요란한 울림을 알리듯 자전거의 날카로운 경적을 울리며 그 앞을지나간다. 아이의 그러한 거침없는 움직임은 노년의 일상이드러내는 무력과 권태와 공포를 여지없이 파쇄하며 생명의활력을 과시한다. 


그는 그러한 아이를 향한 지향적인 의식을분명히 드러냄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의 지향성을 드러내는것이다.이에 반해 그의 아내는 그와는 대비적인 의식과 태도로노년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녀는 노년의 현실에 대해 보다순응적인 것이다. 그녀의 육신 역시 제 기능을 잃기는 그와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에 대해 그녀는 무덤덤하다.노년의 무료한 일상이 그녀에게 이르면 좀 더 분주한 기운을드러낸다. 그녀가 노년의 무료한 일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러한 순응적 태도는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들의 죽음은 어머니로서 수용할수 없는 아픔이다. 결국 그녀의 호호한 백발은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은 어미의 아픔을 증거하는 셈인데, 그녀는 그러한 백발을 그대로 유지한다. 죽음이 아픔이고 고통일망정그녀는 그것을 그 자체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드러나겠지만, 결국 작품에 등장하는‘그’와‘아내’는 죽은 아들을 회상하거나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별달리 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삶 속에서의 죽음을 체험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가 하면 영로는 이미 이십 년 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부부의 마음속에, 마당의 그늘 한 켠 땅 속에 여전히살아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죽음 속에서 살아있는 인물이 영로라면, 삶 속에서 죽어있는 인물이 바로 그와 아내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종교를 찾고 부지런히 맥 나쁜 꿈을 잡아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인 맥은이승과 저승 할 것 없이 평안한 휴식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반영한다. 이 맥을 아내의 할아버지가 무덤에까지 넣어달라고 부탁하였다 한다. 이때의 맥은 동경이나 토우와 마찬가지로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부장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죽음의식을 달고 있는 징표로‘동경’‘맥’외에도‘심방’‘정년병’등을 들 수 있다. 


이소재들은 작품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인식을 지배하고 분위기를 형성하며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초점화된다. 을 만들고, 틀니와 염색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야 말로 오정희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며, 이러한 그들의 삶의 모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동경」인 것이다.이런 점에서 아이가 사용하는 거울은“비치는 대상의 감춰져 있는 면 혹은 감추고 싶은 어떤 부정적인 면을 숨김없이들춰내는 역할”을 한다. 아내가 감추고 싶은 그 어떤 부정적인 면이 바로 늙음과 죽음의 그림자인 것이다.“애, 애야, 제발 저리 가, 그러지 마라”아내가 우는 소리를 내며 애원했으나 아이는 아내의 돌연한 공포가 재미있는지 작은 악마처럼 깔깔거리며 거울을 거두지 않았다. 아내는 빛을 피해 그가 누워 있는 방에 주춤주춤 들어왔다.빛은 이제 눈물에 젖은 아내의 조그만 얼굴과 그의 눈시울, 무너진 입가로 쉴 새 없이 번득였다. 그것은 어쩌면 아득한땅속에묻힌거울빛의반사인듯도싶었다. 오정희,「 동경」,『 바람의넋』, 문학과지성사, 1986, 180쪽. 이하인용한쪽수만 말미에 표기한다. (180쪽)이 때 아이의 손에 쥐어진 거울은 동경과 차별성을 지님과동시에 동일성을 지닌다. 거울이 만화경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서 유년기 혹은 생성의 상징이라면, 동경은 부장품으로서의 소멸 혹은 죽음의 메타포이다. 즉 전자가 삶에 대한 욕망기제라면, 후자는 죽음에 대한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거울의 빛이‘땅 속에 묻힌 거울 빛의 반사’인 듯 싶다는 대목을 눈여겨본다면, 거울이 자연스레 동경으로 전이되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 본 바대로 그와 아내는 노년과 죽음의 문제를두고 저항과 순응이라는 대립적인 의식과 태도를 드러낸다.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노년과 죽음은 피할 수없는 현실이며 고통이고 공포를 드러낸다. 결국 노년과 죽음은 인간이 어떠한 대응을 취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수용되고포용될 수 없는 인간 삶의 한계이며 질곡인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한계와 질곡을 더욱 버겁게 하는 것은 그것들이 공유조차 불가능한, 소통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것이다.그러한 단절성은 비단 노년의 삶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닌,인간 삶의 보편적 속성이기도 하지만, 이를 다시 역으로 재진술해 본다면 노년의 삶도 그러한 단절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가 된다.이러한 점은 작품 말미에서 아이가 강한 거울 빛을 아내에게 쏘다 공포에 휩싸여 그가 누워있는 방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이제는 울음을 감추려 하지 않는 아내에게 그는 무언가 위무의 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는 다정한말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소년 같은 수줍음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입을 열었으나 아내는 어눌하게 새어나오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내는 유언이라도 듣는 시늉으로 그의 입에바짝 귀를 갖다 대며 안타깝게 되물었다. 뭐라구요? 뭐라고하셨어요? 누가왔느냐구요?(347쪽)위의 인용을 보면 슬픔과 공포에 울부짖는 아내보다 그러한 아내를 위무해 줄 수 없는 그의 처지가 더욱 비극적으로다가온다. 그 무엇도 노년과 죽음의 굴레는 뛰어넘을 수 없음이 재차 확인되면서 그것들은 결코 누군가에 의해 위무될수 있는, 그리하여 공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이 드러난다.결국「동경」은 누구하고도 공유할 수 없는 노부부의 고독과 죽음에 대한 자의식을 그린 소설이다. 작품의 주요 소재인‘동경’은 이들 부부의 현재적 삶의 모습을 반추하는 기능을갖는다. ‘ 동경’은삶과죽음의경계를무화시키는독특한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본래‘동경’이 갖고 있는 이중적인 속성에서 기인한다. ‘ 동경’이란 부장품의 일종이다. 부장품이란‘시체를 무덤 안에 안치할 때 함에 넣는 물품’을 말한다.가족 친지 등의 죽음을 슬퍼하고 주검을 무덤으로 처리하면서 망자(亡者)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을 매장하는 풍습에서유래한 것이다. 하지만‘동경’은 거울의 일종으로 그것이 설령 구리로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살아있을 적에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외적인 미추를 판단하게 하며, 간혹 자기애적환상의 몰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물로 기능한다.이런 점에서‘동경’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비추고 자기애적 환상을 갖게 하는, 그래서 삶에 대한 욕망을 품는 기제로서의 거울과, 이미 죽은 자의 곁에 안치되어 그의 넋을 위로하는 부장품으로서 죽음에 대한 확인이 그것이다. 이‘동경’의 이중성의 바탕 위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도 끝도 알수 없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을 그린 소설이 바로「동경」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노년소설 논의의 범주에 머물지 않고 삶의궁극의 문제를 투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정희 소설의 격조와 기품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 점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제공해 준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