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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 | 칼럼·시평 [서평]
탈산업화 시대의 농촌 그리고 시
<자두나무 정류장> 박성우 지음
이동재 시인·소설가(2012-01-05 14:10:21)

시집을 읽다보니 어쩔 없이 전주와 그곳 사람들이 생각난다. 세상은 지금 산업사회의 너머를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의 지방 중소도시들이 대개 그렇듯이 전주도 여전히 농경사회에 끈이 닿아 있으며 사람들의 정서 또한 농경 정서의 끝자락에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느꼈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립고 애틋하다. 이런저런 모임에 휩쓸리고 알듯 듯한 사람 사람에게 치이는 생활을 하다보면 단조롭지만 한곳에 뿌리를 박고속 깊은 대화에다 깊은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전주의 시인들이 그립다. 그런 모임의 자리에 박성우 시인이 있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때 그는 해맑은 청년이었고 재능 있는 시인이었다. 그런 그도 어느새 결혼을 해서 딸을 두고 전주와 정읍 근처를 오가고, 때로는 처가로 추정되는 서울을 가끔은 오가며 소박한 시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시집을 통해 알게 됐다. 시집은 이렇게 한동안 잊고 지낸 사람들의 안부를 전해주기도 한다.


김용택의『섬진강』을 어떤 평자는 농경시대의 마지막 정서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말은 우리 근대사의 흐름과 시사적 경향을 정확히 짚고 있는 말일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당위로서의 역사의 진행 방향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뢰나 동승에서 드러나기 쉬운 조급성과 획일성 그리고 거시적인 잣대가 드러낼 수밖에 없는 성기고 거친 안목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산업 사회든 탈산업 사회든 인간은 여전히 땅에서 것을 먹고살며, 누군가는 땅에서 곡식과 가축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농촌 모습은 누군가에겐 낯설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낯익은 풍경이다. 농촌에 살고 있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 되지 않고, 그나마 노인들만이 남아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더라도 그곳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우리가 매일 먹는 것들이 그곳에서 오고 있다는 사실과 현실은 부정할 없다. 박성우의 시집『자두나무 정류장』엔 사람들이 빠져나가 헐거워지고 더욱더 쓸쓸해진 시골 마을의 풍경과 그래서 더욱 애틋해진 인정이 담겨있다. 「어떤 품앗이」는 시대의 농촌 풍경을 가슴 시리게 대변하고 있는 시다.


구복리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한천댁과 청독댁이 구복리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구년 , 한천양반 돌아가셨다 그만울어, 두말없이

구복리댁과 청동댁이 한천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다시 십일년 , 청동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구복리댁과 한천댁이 청동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연속극 켜놓고 간간이 얘기하다 자는 전부라고들 했다


바깥양반이 먼저 세상을 뜨고 혼자서 보내야 하는 처음의 며칠을 시골의 늙은 아낙들은 품앗이 하듯이 서로 돌아가며 집에 가서 자준다. 그게 전부다. 어느 갑자기 혼자 남은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그들은 서로 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멀리 있는 가족은 가족이 아니다. 평상시 그들은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같은 처지의 이웃이야말로 그들에겐 가족이고 친구다. 이제 그들은 시린 서로의 처지와 등을 온기 삼아 하루하루 힘겹게 목숨을 보전해가고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늙은이들만 남아서 지키고 있는 시골 마을에 이젠 상여를 사람이 없어서 단위 정도로 현대식 장례식장이 들어선 지도 오래다. 노부부가 살다가 어느 한쪽이 세상을 먼저 떠나고 사람만이 남아서 쓸쓸히 지키고 있는 시골집들이 전국의 농촌에 널려있다. 그래서 농촌의 노인들은 낮에는 마을 회관에 함께 모여 밥을 지어먹고 놀다가 밤이면 집으로 돌아가 혼자서 잔다. 마을의 인구라야 얼마 되지도 않지만 이제 그들은 식구다. 잠만 어쩔 없이 각자의 집에 돌아가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갈 밖에 없다.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이 더욱 귀하고 반갑다. 사람이 드물고 귀하다보니 어쩔 없이 농촌을 배경으로 박성우의 시에는 , , 염소, 오리, 누에, 까치, 고라니와 같은 가축이나 동물들 그리고 해바라기, 참깨, 마늘, , 살구나무, 이팝나무, 자두나무, 감나무, 무말랭이 같은 나무나 채소, 식물들의 이름이 사람을 대신하고 있다. 시인의 시선이 이들 주변의 동식물에게 머무는 시간이 길고도 깊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그들의 몸짓을 좇아 다녀야 하는 대도시 인간들의 피곤한 눈과는 자연히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시인은 짐승들과도 대화를 하고 나무들하고도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볼일 보러 변소로 가면/살구나무가 치마 내리는 것을 훔쳐보다가는요/엉덩이 까고 후딱 앉으면 후딱/시치미 떼고 있는 엉큼한 살구나무가/한눈에 들어오는 변소가 있는데요/ 쳐다본척하다가는요/ 볼일 보고 치마 올리고 일어서는 순간에요/후딱 변소 안을 들여다보는 엉큼한 살구나무가 있는데요( 살구나무 변소」부분)에서처럼 속의 화자는 살구나무와도 밉지 않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시인은 전주나 전주 외곽의 어디쯤에 서울 출신의 아내와 살림을 차리고 어린 딸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면서 노모가 살고 있는 고향 마을을 오가며 살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고향마을에 계신 노모에게 어린 딸아이를 맡겨놓고 가끔씩 오가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속에서 느낄 있는 것은 이러한 가난한 시인의 고단한 삶이지만, 그리고 시인의 시선에 담긴 세상은 외롭고 쓸쓸하고 한적하지만, 따스하고 가슴 뭉클하다. 꺼져가는 인간의 온기와 체취가 안쓰럽지만 그래서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지금 우리의 농촌은 그렇게 꺼져가는 모닥불처럼 소멸해가며 질기게 연명해가고 있다. 시의 운명처럼. 무릇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들은 순박하다. 그의 시도 소박하고 순박하다. 그것이 그의 시의 자연적인 힘이다. 박성우의 시집『자두나무 정류장』은 누군가에겐 잊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누군가에겐 찾아가야 인간의 고향 풍경을 엿보게 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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