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2.2 | 칼럼·시평 [문화칼럼]
아듀 새만금
김성환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2012-02-06 13:57:14)

새만금이란 신기루


우리 시대에 새만금은 바다 위의 신기루다. 신기루는 사막이나 극지방처럼 불안정한 대기층에서 빛이 굴절해 생긴다. 새만금 역시 대한민국 국토를 유령처럼 떠도는 공간지배의 불안한 욕망 위에 떠있다. 지난 20 여러 정권의 권력자와 관료들, 언필칭 국내외 전문가들, 환경운동가들이 백사장의 모래처럼 많은 언사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실은 그들도 안다. 그게 어떤 실체가 있고 책임지는 말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바다 가운데서 벌이는 거대한 토목공사에 덧붙이는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부가 정한 새만금의 브랜드 슬로건이새로운 문명을 여는 도시. 그러나 실은 누구도새로운 문명따위에는 관심이 없다.토목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새만금을 지배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힘은 공간을 지배하려는 욕망이다. 권력을 추구하는정치가와 관료는 공간을 개발하고, 동원하고, 구획하고, 점령하고, 전복시킴으로써 권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그들이 국민의 혈세로 자신들의 절친이자 돈줄인 건설토목꾼들과 잔치판을 벌일 , 누군가는 옆에서 떡고물이라도 맛보려고 수저를 얹는다. 탐욕의 복마전에서 경제, 관광, 과학, 공학, 산업, 환경의 온갖 미사여구로 굴절된 새만금의 신기루가 생산된다. 하지만 그것이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여전히 없다. 토목공화국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건설족들은, 단지 새만금에 새로운 공간을 구획하고 영토를 지배해 권력과 금력을 얻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욕망은 어차피 역사 속으로 사라질 신기루다. 지역과 중앙의 정치가와 관료, 한국농어촌공사와 거대 건설업체 가운데 과연 누가 오래도록 남아 새만금을 지키겠는가? 그들은 단지 외형적 경관만 남긴 권력의 무상함을 증명하며 사라질 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은 당대의 약자인 지역민과 미래세대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지역민과 미래세대야말로 새만금을 지키며 오래 살아야 당사자들인데, 정작 그들의 운명과 이익과 공동체는 국가적 토목사업에서 줄곧 관심 밖이다.



새만금 증후군


게다가 지금 전라북도의 불행과 무기력이 역설적이게도 새만금에서 비롯된다. 지난 20여년의 우여곡절 끝에 전북도민에게 새만금은 단순한 지역개발사업을 넘어 거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전북에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구원의 새만금’, 전북이 추구해야할 모든 가치가 그리로 귀결된다.오직 새만금만 바라보고, 새만금을 위해 뭔가를 해야 훌륭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쁘다는 맹목적인 생각이 사람들의 뇌리를 점령했다. 다른 생각, 다른 상상은 이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사라졌다. 심지어 그것이 당장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해도. 예로, 지난해 FTA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고 전북에서 벌어지는 일은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일으킨다. 최소한 상식에서는 그렇다. FTA 전국이 들끓고, 여파가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2012 정국의 핵이 되었다. 그런데 전북은 어찌 이리도 조용한가? 굳이 반외세 자주를 외쳤던 동학농민전쟁의 전통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도민의3분의1 농어업인구인 전북이다. 국회의원 11 가운데10명이 FTA 무효화가 당론인 민주당 소속이다. 도지사는 물론 14 자치단체장도 거의 그렇다. 한데 FTA 대한 전북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대응은 무기력을 넘어 무관심에 가깝다. 언론도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장면 하나. 지금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중요한 아젠다들이 거론되고 있다. 언론자유, 경제민주화(재벌개혁), 남북문제, 복지정책, FTA 하나 같이 향후 국가는 물론 지역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중대 사안들이다. 한데 얼마 전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표 경선 TV토론회를 지켜보다 짜증나 전원을 꺼버렸다. 정작 중요한 이슈들은 건성으로 넘어가고, 후보자들에게 새만금에 대해서만 그리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가? 전북이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서 간여할 있는 몫은 그저 새만금밖에 없는가? 새만금사업이 잘되도록 도우면 내편이고 아니면 적이라는, 노골적이고도 유치한 논리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전북 정치권의 무지와 무감각에 혀를 수밖에 없다. ‘새만금 증후군 사회병리 현상이 전북을 뒤덮고 있다. 미래의 새만금에 목을 나머지, 현재의 모든 가치가 새만금으로 귀결된다. 만사가 새만금으로 통해, 새만금만 앞세우면 국회의원도 되고 도지사도 되고 시장·군수도 된다. 그러니 전북을 초토화할 FTA에도 무감각하고, 전국에서 제일 가난해 어디보다 절실한 복지정책도 뒷전이다. 과거 노골적인 지역차별로 재벌 하나 변변히 키우지 못해 있을 법한 재벌개혁의 비판은 고사하고 푸념조차 듣기 어렵다. 이렇게 당면한현안에 무능하고 무기력한 정치인과 자치단체장들이, 새만금과 관련된 행사라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달려가 열에서 사진을 찍고 마디씩 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한듯이 여긴다. 오직 새만금만 남고 만사가 뒷전이다. 이게새만금 증후군 병증이다.



아듀 새만금


이런 징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새만금을 둘러싼 논쟁이 10 년간 지속되면서 전북도민이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가? 우여곡절 끝에 중단됐던 공사가 재개됐을 , 열병을 앓고 죽다 살아난 자식을 대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니 자식을 애지중지하는 당연한지 모른다. 그러나 귀하게만 키운 자식이 출세해 부모를 배반하는 속정(俗情)처럼, 거의 종교적 맹신의 대상이 새만금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전북사람들의 감성과 판단을 마비시키고 있다.단지 공간을 개발하고, 구획하고, 동원하는 것으로 권력을 얻어 행사할 있다면, 정치인과 관료들 그리고 어용 전문가들에게 그보다 좋은 권력의 원천은 없다. 이는 전라북도를 떠나 공간의 지배로 권력을 얻으려는 모든 정치인과 관료들의 로망인데, 말하자면 전라북도는 새만금으로 인해 이런 유형이 권력이 성장할 최상의 조건을 갖추게 셈이다. 그러니 권력자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없고, 끊임없이 새만금의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자신의 권력을 손쉽게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새만금개발은 어차피 대형 국가사업이다. 그것은 앞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최소한 20년은 지나야비로소 뭐가 되도 것이다. 당연히 활용과 결실은 미래세대의 몫이다. 그보다 당장 눈앞에 심각한 문제들이 많다. 그런데 언제까지새만금 외치며 이런 과제들을 뒷전으로 미뤄둘 것인가? 물론 누군가는 새만금에 주목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북의 거의 모든 에너지와 관심과 이슈가 새만금에 집중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지금은 새만금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야 전라북도의 현재가 비로소 보일 테니까. 당장 총선부터 문제다. 새만금으로 권력에 무임승차하려는 정치인들이 줄을 태세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서더 이상 알량한새만금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그보다시급한 당면 과제들, 지금 국가적 아젠다가 되는 경제정의·FTA·복지·교육·지역균형·민주주의·통일 등에 대한 그들의 판단과 비전과 능력을 확인하고 싶다. 하여, 나부터 새만금과 작별하려고 한다. 전『새만금문화권』이란 책을 뒤로 여기저기 속절없이 불려 다녔다. 하지만 2012 세운 목표 하나가 새만금에 관한 발언과 외부활동을 접는 것이다. 아마도 글이새만금 제목을 마지막 발언이 되리라. 아듀 새만금!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