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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 | 칼럼·시평
[문화시평] 우진문화재단 <젊은 연출가전>
관리자(2012-03-07 16:08:43)

우진문화재단 <젊은 연출가전>(1월 6일~2월 26일, 무진문화공간예술극장)

삶의 뒤편에 드리운 그림자 같은 쓸쓸함, 그래서 따뜻한


김정수 전주대학교 교수


관객이 어느 정도 들어차고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객석을 감도는 작은 설레임 사이를 비집고 한 사내가 들어선다. 그는 무대가 아닌 무대 앞 통로에서 관객을 향해 선다. 편안하고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며 몇 가지의 경품을 나눠주고,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끄거나, 공연 중 지켜야할 주의사항을 전한다.그런데 이게 완전 연극 공연 수준이다. 참 맛깔스럽게 관객과대화하며, 관객을 무장해제 시켜 교양 가득 찬 관극모드로 전환시켜 놓는 사내, 그 사내가 바로 우진문화재단이 2012년들어 새로이 기획한‘우진연극판-젊은 연출가전’을 기획한박영준이다.1, 2월은 아무래도 연극 공연의 비수기다. 수요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공급이 적기 때문이다. 겨울철이라는 특수성에다 문예진흥기금을 비롯한 각종 지원이 결정되지 않은 탓도 있다.12월까지 소극장연극제에 온 힘을 쏟은 극단들이 잠시 한숨돌리거나 봄 시즌을 대비하는 이유도 있다. 이런 시기를 틈타만든‘젊은 연출가전’은 참 신선한 기획이다. 공백을 메운다는 의미보다는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 사랑스런 시도로 비친다.


1월 편성후 연출의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가 공연된데 이어, 2월에는 조승철 연출의 <슬픈 연극>, 유성목

연출의 <분장실>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 도내에서 연극무대에 가장 적합한 프리미엄급 소극장에서 젊고, 그래서 반짝이는 연출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즐겁고 유쾌한행운이 아닐 수 없다.<슬픈 연극>은 참 예쁜 무대를 가졌다. 객석에 앉자마자 적당히 조명을 밝혀놓은 무대를 향해 슬그머니 카메라를 들이댈정도로 말이다. 가끔 예쁜 얼굴이 정체모를 슬픔의 감정에 맞닥뜨리게 하듯이 예쁜 무대와 슬픈 연극이 묘한 울림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주었다. 어쨌든 <슬픈 연극>의 무대는 참 따뜻하다는 느낌을 주었다.고조영과 홍자연, 이 두 명의 배우가 전하는 이 따뜻한 연극은 티비드라마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촉촉함을 지니고 있다. 한동안 우리의 연극들이커지고, 많아지고, 화려해지고, 예리해지는 쪽으로 달려왔다 가정할 때, 어쩌면이 연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이제 다시‘이야기’가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다는 예감을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전쟁의 상처가 가난으로 남아있던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결혼하고 힘들게 시대를 버티며 살아 이제는 조금 살만해진 부부, 하지만 불치의 병으로 곧 세상을 하직해야만 하는남편과 그를 지켜봐야하는 부부가 전하는 하루 저녁의 대화들, 아니 그들이 살아오고 사랑했던 방식들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연극, 어찌 보면 상당히 흔한 소재였고, 식상한 패턴이었고, 누구나 짐작할만한 플롯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기에 관객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두 연기자에 집중되었다. 그래, 너희들 이걸 어떻게 연기하는 지 보자, 하는 심리일 터였다.고조영과 홍자연은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맞춰온 호흡과 관록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 결코 오버하지 않은 절제된 감정과 무대를 존중하는 섬세한 배려는 모범적이었다. 호흡 하나 단어하나가 확장된 의미로다가올 만큼 이들의 연기는 사뭇 진지했다.잘 농축시켜 끌어왔던리얼리티를 조금 잃어버린 두 사람의 놀이장면이 약간의 아쉬움을 주긴 했지만, 눈길하나 만으로도 관객들의 숨을 죽이게 만드는연륜이 두 사람의 연기에서 배어나왔다. 모처럼 그야말로 연기로만 승부하는 연극을 본 느낌이었다.


또 하나의 연극 <분장실>은 일반에 흔하게 공개되어지지 않는,어찌 보면 은밀한 호기심을 품게 해주는 공간인 극장의 분장실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시미즈쿠니오라는 일본 작가의 작품으로 국내에는 몇 차례 공연된 바 있다.이 <분장실>의 등장인물에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섞여있다. 살았다가 죽게 된 사람까지도…. 삶과 죽음이 공존하거나 서로 얽혀있는 이야기는 우리는 다른 작품에서도 흔하게 보아왔다. 반전의 영화‘식스센스’나‘디 아더스’등에서도 이미봤고, 여러 연극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죽은 자의 등장은 여전히 낯설다. 그리고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주인공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죽은 여배우들, 그들의 혼은 분장실을 떠나지 못하고 늘 그곳을 맴돈다. ‘소리 없는 소리’로 떠들며 분장실에 죽치고 사는, 한마디로 분장실 귀신이다. 그 곳에는 현실적 사용자인 여배우가 있고, 또 그 여배우처럼 되고 싶은 프롬프터 배우가 있다. 살아있는 배우와 죽은 배우들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할 수도 없다. 다만 현실에서 여배우에게 병으로 맞아 살해당하는 프롬프터 배우가그 둘 사이의 교량 역할이라 할 수는 있다.우리는 누구나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삶을 통해 무언가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내가하는 일, 내가 할 수 밖에 없는일은 항상 그 하고자 하는 일과일치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비극적인코미디다.작품 내 죽은 배우들은 전쟁전 세대와 전후 세대를 대표하기도 한다. 그들이 나누는 리얼리즘에 관한 생각차이는 연극론의한 페이지를 보는 듯하다가, 시간이 갈라놓은 세대라는 큰 그림자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작품 안 존재를 통해하나가 된다. ‘끝없는 연습’과‘잘 수 없는 잠을 위해서’건배하는 마지막 장면은 버릴 수 없는 동질의 확인이다.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등장을 기다리고있는 여배우들, 그 죽은 자들의기다림은 살아있는 우리네의 염원을 빼어 닮아있다. 영하의 2월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해준 두 작품. 둘 다 흔한 소재를 흔하지 않게 다루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드라마투루그의 힘이라 할 수 있겠지만, 초청된 연출과 배우들의 이를 넉넉히 소화했다는데 더 큰 즐거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첫 시도였던 우진연극판이 지속적이고 진지한 노력을 통해 전북연극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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