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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 | 칼럼·시평
[문화칼럼] 오후 두 시, 몇 가지 풍경
관리자(2012-04-04 17:49:25)
‘오후 두 시(2pm)’의 아이들이 현란한 리듬에 맞춰 기예에 가까운 춤을 추는 사이에 유럽의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과 중국, 대만, 동남아 등을 누비던 한류스타들의 발걸음이 남미에서도아프리카에서도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티브이가 전해주는 한류의 세계화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대로만 가면 한국의 문화가 머지않아 전 세계의 대중문화 콘텐츠 시장을 석권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오후 두 시, 한 때 흥청거리던 00군청 앞 네거리에는 사람들의발길이 뜸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래야 오래 된 모자를 눌러쓰고지팡이를 든 노인들이 몇, 황량한 삼월 초순의 바람이 아직 앙상한나무들을 휘감아 불고 있는데, 지금은 문을 닫은 영화관의 낡은 간판에서 칠이 벗겨져나간 얼굴의 90년대 하이틴 스타들이 일그러진 채 웃고 있다. 이제 이 도시에는 영화관이 없다. 잘 나가던 중국집도, 만화가게도, 자전거 대리점도 문을 닫았다. 그 먼지 나는 길을 간간이 스마트폰을 들고 이어폰을 낀 중학생들이 고개를 흔들며 지나간다. 종말론적 SF 영화의 한 장면 같다.또 다른 오후 두 시의 어느 큰 도시 네 거리-. 지친 마이크와 연설차와 운동원들이 쉬고 있는 시간, 색색의 플래카드들이 바람에펄럭인다. 자세히 보니, 맞은 편 후보의 연설차에도 건너 편 네거리의 연설원 머리띠에도 경제민주화, 서민을 위한 정치, 지역의 아들 등의 구호가 서로 민망하게 마주본다. 참 서로 많이 닮았다. 후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자신이야말로 문화 마인드가 갖춰진, 준비된 인재로서 새로운 한류와 문화복지 시대를 이끌어갈‘문화후보’라고 자부한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적어도 이 지역의 후보들이 너나없이 나서서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은 이른바 보편적 복지이다. 모두가 다 99% 서민의 편이고 모두가 다 스스로 개혁의적임자라 자처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선거홍보 방식도 많이 세련되어졌다. 이른바 SNS 방식을 통한 선거운동을 못 하는 사람은 아예 후보 축에도 못 드는 세상이 되었다.하지만 이 시대가 진정 문화의 시대인가? 아이돌 가수를 앞세운 한류는 이대로 세계화의 첨병 노릇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한류는 이른바 동시대인들의‘삶의 질’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총선은 나라와 지역의 문화적지형 변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개인주의/가족주의의 심화로인한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가 점점 가속화되는 단계에 와 있다.경제의 양극화, 다문화사회로의 진입 등 사회경제적 변화는 빠른 속도로 이른바 문화생태계의 변화를 촉발하고 있고, 여기에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한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전통적인 문화예술 영역의 경계를 급속히 허물어뜨리면서 이른바 융복합콘텐츠의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하지만 모든 혼돈은 변화를 내포한다. 이와 같은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다면, 이 본질에 부합할 문화의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새로운인간 관계망의 형성을 이끌어내게 될 것이다. 이는 공동체성 함양을 위한 문화와 체육 활동의 가치 증대로 이어질 것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의 문화적 소비 행태를 보일 것이다.무엇보다도 대중들의 여가시간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여가와노동사이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질 것이며, 이로 인한 문화 수요, 관광 수요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이는 일상적 삶에서의문화소비행태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한 마디로 전통적인 여가패러다임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1)그런 점에서 총선을 맞이하는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이른바‘문화의 시대’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후보를 가려내는 일이다. 1%에 편중되어 있는 경제를 99%의 경제로 바꿔내겠다는 의지를 지닌 후보라면, 적어도 99%의 소소한 문화적일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왜냐하면, ‘밥’만이 아니라‘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에는,모름지기 국민 누구에게나 문화적 자존심을 존중 받을 권리가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자존심’이란 곧 문화예술 향유기회를공평하게 제공받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적 소양(감성,이해력)을 기를 기회가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성인이 되기 이전에 충분히,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적으로 교유하는 경험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이다.전국의 아이들과 노인들이, 부모나 자식이 잘 살건 못 살건간에, 틈틈이 영화를 보고 콘서트와 연극을 즐기며, 마음껏 운동하면서 서로의 지친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있는 세상이 문화복지의 핵심 개념 아닌가? 그리고 그런 세상에 대한 비젼과 정책을 지닌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정치적 리더가 되는 과정이 곧좋은 선거 아닌가?안타깝게도, 대중문화에서의 폭발적 한류 확산이 그대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영화와 뮤지컬 몇 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과 우리 동네 영화관과공연장, 운동장과 체육관이 우리 이웃들의 발길로 북적이는 것은 별개의 일임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 문화에 대한 신념과 의지만이 아니라, 현상을 통찰하고 정확한 대안을 내어 이를 실행할 수 있는‘국민의 대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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