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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 | 칼럼·시평
[문화시평] 남궁 산 목판화 장서표전‘전북 사람들’
관리자(2012-05-14 10:58:38)


 남궁 산 목판화 장서표전‘전북 사람들’(2012.4.10~4.29 / 전북도립미술관) 책에 시치미를 붙이다 하미숙 시인 “남궁 산은 알겠는데 장서표는 누구지?”전시회를 둘러보기 전 관람객의 이 한마디에 귓가를 휙 돌아가며 키득거리는 바람처럼 따라 웃을 수밖에……. 꽃과 고봉밥, 행간을 비추는 반딧불, 가만히 앉아있는 산, 나무, 바람, 새, 물고기들. 모두 남궁 산의 장서표에 나오는 소재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책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면?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남궁 산 장서표전 전북 사람들’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동양에 장서인藏書印이 있다면 서양에는 장서표藏書票가 있었다. 장서표는서적의 소장자를 식별하기 위해 책의 뒷면에 붙이는 표를 말한다. 영어식으로는Bookplate지만 장서표에는 일반적으로국제적인 공통표시로써 라틴어‘EXlibris’와 소장자의 이름을 명기한다. 장서표는 판화의 형식으로 보통 5~6센티미터 이며 크게는 엽서만한 크기도 있다. 아직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기 때문에 예의 관람객이 장서표가 인명인 줄착각하는 것도 당연지사, 하지만 관람을마치고 오는 관람객들은 자신도 애장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장서표를 소유하고싶다는 욕심이 생길 것이다.책, 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을쓰는 저서著書, 책을 읽는 독서讀書, 책을 보는 간서看書, 책의 내용을 뽑아 쓰는 초서抄書, 책의 내용을 평가하는 評書, 책을 간직하는 장서藏書아, 이렇게도 많으니 책으로 밥을 벌든 취미로 삼든 책과 가까이 하는 일을 떠날 수 없다.하여, 장서가들은 자신의 표식을 어딘가에 해두고 싶은 욕망이 있다. 장서의장藏은‘감추어 저장하다’‘마음에 품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감춘다는 것에매혹이 있다.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했던 적이 있다. 두꺼운 성문종합영어나정석이라는 수학참고서에 자신 이름의이니셜을 펜으로 새겨 넣은 경험들, 공부를 열심히 할는지 말는지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시쳇말로‘찜’부터 하고 보는것이다. ‘이 책의 주인은 ○○것이다’그리하여 애독하고 나면 장서하고 싶고나만의 표식을 남기고 싶기 마련이다.책에 시치미를 붙이는 것이다. 남궁 산의 장서표전‘전북 사람들’을 둘러보면 표주들 각각의 개성이 살아 꿈틀거린다. 표주들의 문형紋形은 그야말로 현재까지 밟아온 삶의 문신紋身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걸어온 발자국의 무늬,색깔, 취향이 농축되어있다. 그래서 자신이 애장하는 책에 표식을 남기는 행위는 자기를 과장하여 드러내지 않고 겸손과 소박함으로 두 손바닥에 공손히 얹어 보여줄 뿐이다. 타인과 거리를 구분하는 영역이나 경계가 아니다. 판화의 매력은 화려하지 않은 담백함에 있다.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거기에 절제된 미적 감각이 뛰어난 남궁 산 작가의 손끝에서 살아난다면? 화려함에 이끌리는 현혹이 아니라 이런 질박한 것들에 현혹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여담이지만 이번 전시가 전북작가 회의에서 주최한 것을 계기로 남궁 산 작가의 본명이 남궁 형인 걸 알았다. 이런! 발음상 연상되는 걸 어쩔 수 없어 뜨악해하며 알은 체 할 수 없었지만 속사포처럼 연상되는 고리 하나가 철커덩 채워지는 순간 이미 끝인 것. <사기>를 쓴 사마 천은 흉노족과의 싸움에서 항복한 이릉李陵을 모든 사람들이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때,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를 변호했다. 마침내 한무제의 미움을 사 궁형宮刑을 당하면서 까지도 <사기> 집필에 매진한 의지의 한나라 사람, 그가 그런 것처럼 남궁 산 아니, ‘남궁형’작가도 표주들의삶의 궤적을 쫓아 하나하나 판에 새기는과정과 닮았다고 하면 조금 과장이라고할까? 그래서 그의 책 제목처럼 장서표를 작업하는 일은‘인연을 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장서가들과의 삶에 밀착해야만 장서표의 도안이 제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생각이 멀리 간 김에 떠오르는또 하나, 장서가라면 누가 뭐래도 이 사람이 생각나는 걸 어쩔 수 없다. 이덕무(1741~1793), 스스로 자신을 간서치看書痴라 부르며 추운 겨울에도 책으로 바람막이를 하고 베개와 이불로 삼으며 날만 새면 창호지 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화로삼아 책만 읽는 선비, 조그만 책상에 앉아 해가 넘어가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방안의 햇빛조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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