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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 | 칼럼·시평
[서평] 『시골무사 이성계』- 서권 지음
관리자(2012-05-14 10:59:20)


 내던져진 존재, 일어서다 이영종 시인 인간은 내던져진 존재다. 자유의지로 이 땅에 뿌려진 영혼은 없다. 서권의『시골무사 이성계』도 1만의 왜군 속에 정예 부대의 지원도 없이 던져진다. 1천 병사로 삶도 죽음도 의미없는 전투를 치러야하는 이성계는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일상인이다. 그래서 작가가 새롭게 보여주는“흰 코털이 숨결을 타고 밖으로 삐져나오는 야인 오랑캐”이성계의 모습에 공감한다. “여진족과 더불어 피를 섞으며 들판에서 함께 뒹군 죄”를 가진 사내. 반월형 도끼로 첫 승리의 쾌감을 맛보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전투에 패하는 상처투성이 늙은 무사. 부하에게 목숨을 빚지는 찢어진 갑주 같은 그에게 작가는 연민을 보낸다. 존재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다. 본래자신을 이해하고 본래대로 존재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성계는 변안열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이번 전쟁은 나의 것이지 당신의 것이 아니야.”작가는 이성계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목숨으로 책임을 지려는 존재는 늘 울림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 결단해야 한다. 죽기 전에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병을 만드는 것들은 날마다나와 다투는 것이다. 나와 다투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자신의 존재의미도 자신이 부여한다. 성계는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다. 그래서“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질의를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성계는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아세상을 보다 낫게 만들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오직사람만이 홀로 천지와 짝할 수 있다.”이러한 깨어남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무엇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계는 온 몸을 찌르는 고통으로 주저앉는다. 자꾸 눈이 감긴다.그리고“천지간에 정상적이지 못한 것을 이(異)라 한다. 세상안팎에서 불타오르는 이(異)를, 나는 그것들을 막아야 한다.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라는 소리가 가슴을 뚫는 것을 느낀다.성계는 계속되는 도전에 대해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반응하여 삶의 의미를 발견할 줄 안다. 소설에 흐르는성계의 행동을 작가는“달을 끌어올려 싸움에서 승리”하는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계가 발견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럼 하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오?”라고 묻는삼봉의 질문에“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오.”라고 말한다.아니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종마들과 함께 이끼에 젖은 나무들 늘어선 숲에서, 한없이 달려도 해가지지 않는 곳……나는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어. 언니. 알지? 나는 그것을 위해 싸웠어.”라고 말하는 두란에게서 그들이 추구했던 자유의 냄새를 맡는다.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존재들은 미약하다. “당신들은 가별치를 멸시의 의미로 부르지만, 우리는 도리어 그게 자부심이다.”“변방 끝자락에 놓인 천한 것들이라는 의미”의 가별치를 대하는 권문세족에게 던지는 성계의 목소리다. 위기의 순간에 가별치들은“말은 누워있는 물체를 밟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하고, 말을 쏘지 않았던 고결한 전투 습성도 버린다. 자신의 목이 변안열의 칼끝에 서있을 때 성계가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자신감 없는 스스로가 두려웠을 뿐이었다. 성계는 죽음을 각오하고 처명에게 외친다.“처명! 나서라. 내가 죽는다고 가별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전쟁이 끝난 뒤 자신을 죽이라고 변안열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이미 절정에 올랐다. 간자들을 따돌리고 전원 퇴각하면서 원혼을 달래는 풍등을 올리는 장면은 미학적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공간과 시간, 그리고 등장인물에게 부여한 인내심은 천여 개 풍등으로 환하다. 그리고“수백 개의 번개가 꽂히는 듯 눈부신 빛들이 날아”와 왜군의 군막은 불바다가 된다. 방패 사이로 쏜 살이 슈겐부츠를 쓰러뜨리자 아지발도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 하지만 아지발도는“오직 싸워라. 통곡을 잊고, 그렇게 터져나가라.”고 부르짖으며머리에 살을 맞고 영원히 죽지 않는 가미쇼가 된다. 적장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은 예의바르다. 아지발도가 피 흘리며 죽었다는 바위는 지금도 인월 그곳에서 붉다.당시 고려는 한반도의 숙명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대륙과해양 세력이 늘 부딪치는 땅이 지닐 수밖에 없는 운명을 우리는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이 소설은 미래에도 새로울 것이다.북원의 박티무르와 명나라의 주형장은 쓰러지려는 나라와 일어서려는 나라 모두 평안한 뒷산을 바란다는 것을 보여준다.기존 질서를 고수하려는 포은과 혁명을 원하는 삼봉의 사상싸움은 진지하면서도 어깃장 놓는 말의 성찬으로 가득하다. “주유생활 삼 년이라는데 아직도 눈빛에는 칼끝이 보이니 그대의도학은 언제나 바람을 타고 물에 떠갈 건가. 역성이다.”라는 포은의말에삼봉은답한다.“ 포은종사관나리, 망상이과하시구려. 무와 문은 불과 물인데 물이 길을 잡아 흐른대도 불이 따라오기나 하겠소?”권문세족의 대표인 변안열은 이성계를 멸시하고 사사건건 그의 행동에 딴죽을 건다. 그러나 변안열도 나름대로 고려에 대한 충(忠)을 지니고 있는“몽골족의 적통”인물로 그렸다. 그에게 있어“충(忠)이란 마음에 단 하나의 곧고차가운 심을 박는 것이었다.”아지발도는 무술이 뛰어나나 성정이 급하다. 그를 보완하기 위해 작가는 지략이 뛰어난 슈겐부츠를 그의 스승으로 넣어 이성계와의 대립각에서 소홀함이없도록 배려하고 있다. 왜군은 고려를 정복한 후 남북조를 통일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 노략질이나 일삼는 왜구를 그리고 있지 않다는데 이 소설의 미덕이 자리한다. 이두란과 처명, 가별치들은 이성계를 도와 이 냉엄하고 정연한 살풍경을 상선약수(上善若水)로 어떻게 변혁시킬 것인가. 이러한 공정한 고심으로 인하여 소설은 아름답다. 작가는 일체의 유희를 배제한다. 이 소설의 약점은 로맨스 없는 정갈함에 있다. 아지발도의 아내이자 슈겐부츠의 수양딸인 소분의 죽음 장면은 처연하다. 작고하기 전 어느 선술집에서 여자이야기도 좀 쓰고 세상이 원하는 소설을 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대하소설『마적』출판이 미루어지고 있는 이유가 유희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유희는 좌표가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즐긴 유희는 아홉 개의 구름 너머에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고쳐먹는다.모든 것은 변한다. 황산대첩도 일제에 의해 쪼여나간 비문처럼 누대의 기억 속에서 파손되어 내가 쉽게 복원할 수 있는 것은 몇 줄 정도다. 바랜 기억에 보리 필 무렵 우어회 같은 숨결을불어넣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작가는 기억을 그대로 인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걸러서 상상의 진경을 보여준다. 함께 마셨던 백두산 천지의 물, 고구려 십만 대군이 머물렀다던 봉황산성, 바이주의 향 등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작가를 거쳐 솔제니친의『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를 닮은 이성계의 하루를 낳았다.작가의 문체는 달리는 말의 엉덩이고, 활을 벗어나 후회 없이유영하는 화살이며, 만주벌을 단박에 베어 버릴듯한 도끼질이다. 박진감 넘쳐흐르는 문체의 강에 눈을 담그면 작가가 수행했을 작업이 떠오른다. 외롭고 고단한 삶의 전투 속에서도 방대한자료를 수집하고, 치밀한 고증을 거쳐 냇가에 금모래 같은 언어를 어떻게 흐르게 했는지. 번역을 두세 번 맡겨가며 적확한 사실을 얻기 위해 그가 얼마나 고투했는지. 동북삼성을 여행하던작가가 어느 허름한 마을에 들러 노인을 만나『마적』자료를 얻었듯 작가가 공부했을 많은 자료들로 인하여 소설은 전투의 활력으로 빛난다. 검차, 나기나타. 연노, 굵은 줄, 철화시, 철칠려……묘사력은 "가을비가 마른 잎을 쓸며 길섶을 적시는 날"과도같고, 벌을 달리는 군마들의 코에서 품어 나오는 열기로 우리를아득하게 휘감아 버린다. 1984년『실천문학』신인상 시인답게적절한 비유로 가득한 작가의 입심은 매혹적이다. “선왕이 표변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대들의 한담은 객줏집 장도칼로 도마를 쪼아댄 칼자국 같아서 씁쓸하군.”“허허, 이거 바가지로 개울물 뜨려다가 덜컥 까치독사 한 마리를 퍼올린 셈이군.”“여물씹던 짝눈이 나귀도 날뛸 일 아니오?”“칼이 주위에서 울리는잡소리들을 하나씩 발라내며 빛났다.”서권의『시골무사 이성계』는 내던져진 존재가 어떻게 자신에게 존재 의미를 부여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작가의 상상력과 문체, 열정적인 자료수집, 그리고 묘사력이다. 진중하고 공정한 작가의 성격도 한몫했다고 본다. 그나저나 달밤에 금강에서 백마강까지 뗏목을 타고 가자하던 약속은 이제 어떻게 할까. “취중의 아취를얻으면 그뿐, 깨어있는 자에게 전할 생각을 말아라.”던 이백의『독작』만 반달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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