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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 | 칼럼·시평 [문화시평]
굿모닝 미디어아트
홍남기 전과 전북의 미디어아트
탁영환 미디어아티스트(2013-07-03 22:33:29)

변화를 바라다
1984년 1월 1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한 아티스트가 인공위성을 통해 세상을 연결 짓고 소통시키는 전대미문의 거대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사상 최대의 미디어 퍼포먼스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진행시킨 주인공은 미디어아트라는 생소한 영역을 개척 해오던 백남준이라는 아티스트였다. 시간이 흘러 2013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시점으로부터 30년이 조금 못된 현재라는 시간에서 변화와 소통을 꿈꾸던 아티스트 백남준이 설파했던 미디어아트(당시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는 ‘비디오 아트’라고도 불리었다)는 어디에 서있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변화, 과연 우리에게 변화는 있었던 것일까. 변화가있었다면 무엇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켰을까.위성을 이용한 사상초유의 미디어 이벤트는 인터넷네트워크와 개인용 컴퓨터 혹은 소형화, 첨단화된 모바일기기(스마트 폰을 포함한)들로 인해 내 책상, 내주머니 속으로 들어와 버린 지 오래이고 백남준 작가는 고인이 된지 7년여가 지났고 뉴욕, 파리, 도쿄, 서울을 이었던 획기적인 프로젝트도 이젠 세상곳곳을몇 가지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음란증환자처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일까. 아니 분명 큰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백남준 작가가 1984년 정초에 ‘굿모닝 미스터오웰’프로젝트를 시도할 당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이러한 물리적 변화만을 원한 것은 아니었을 터이다. 새로운 시도와 파격적인 실험들에 대해 보다 더 관대하고그것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 하는 세상, 그리고 그러한시도를 하는 보다 도전적이고 용감한 작가들이 풍부한 세상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아직’이라고 말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른 우진문화공간에서의 한작가의 전시는 ‘조금 더 힘내봐!’라고 나직하고 묵직하게 속삭이는 것 같다.

실험과 탐험
홍남기.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우진문화재단에서는 해마다 소수의 청년작가를 선정하는데 전시장에서는 이번 2013년도에 선정된 홍남기라는 지역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작가가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필을 보니 우리 지역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퍼포먼스는 주로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당연히 낯설만도 하다. 개인 신상은 이정도 털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전시장을 들어서면서 느끼는 감정은 복고였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미디어아트에 관심이 있었던 관객이라면 첨단의 테크닉과는 거리가 있는 복고적 느낌 덕분에 약간의 불안감과 혼돈을 느낄 법하다. 전체적으로 갤러리 안에서 뿜어내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어린시절부터 망막에 담겨져 각인이 되었을 법한 각종 미디어에서 흡수된 다양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맨 먼저 전시장 건너편 전면에 보이는 아크릴화 두 작품은 고전적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캡쳐해 놓은 듯한 복고적 감성의 강렬한 매력을 보여준다. 전시장의 중심을 잡고 있는 이 두개의 평면작품은 ‘저의 환타지 세계에 어서 들어와 보세요.’ 라고 종용하는 듯하다. 그 두 작품에는 시대를 앞선 환타지의 세계를 보여줬던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년~1827년, 영국의 화가,시인)의 광기의 잔상도 언뜻 보이는 듯하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 놓여져있는 복고풍 TV 설치작품과 작가가 터어키 여행중에 벼룩시장에서우연찮게 구입했다는 스틱형 면도크림은 마치 쿠바의 한 어촌마을의 이발소에 들어와 있는 듯 제대로 된 엑조틱(Exotic)한 감성을 자아낸다. 자, 본격적으로 전시의 타이틀인 Not Dead 연작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Not Dead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작가가 개인전 도록 서문에 언급했듯이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보아왔던 좀비라는 존재이다. 죽었으나 죽지 않은 움직이기는 하나 생명은 없는 기이한 존재. 좀비. 이제는 영화의 소재로서도 흔하디흔한 소재가 되었지만,사실 좀비(Zombie)라는 단어는 부두교 의식에서 쓰여진 말로써 ‘부활한 시체’에서 유래된 익숙치 않은 단어였다. 좀비가 우리에게 용어적으로 친숙해진 계기는 조지A.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이라는 영화에서 부터이다. 영화가 제작되던 당시의 시대상은 월남전 참전과 그에 따른 실패로 미국의 자존심이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몰려 있던 시기이다.당시는 반전에 대한 강한 열망과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젊은이들의죽음의 귀환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대이다. 권력과 이념에 강요받고 그에 따른 희생이 요구되어지는 극단적 시대상에서 좀비라는 존재는 미국의 패권주의의 현대적 분열증에 대한가장 적절한 이미지적 메타포였을 것이다. 또한 패전 후 전역한 참전용사들의 사회 부적응도 살아있는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는 좀비(Living Dead)의 존재처럼 고찰 할 수도 있다는 강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2013년, 작가 홍남기는 어째서 해묵은 좀비의 존재를 작품 안에서 부활시킨 것일까. ‘모호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인물에 대한 고찰은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이번 작품에서는 더극적인 상황들이 제시되며, 그 이면에 숨겨진 폭력적이고 낯선 상황의 대비를 연출하고자 한다.’(작가의 말 중) 작가의 말은 바꿔 말하면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의 상황을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아직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풀이한 듯하다. 현대 사회의 우리는 아직도 지극히 폭력적인 세계에 아무런 방어도구없이 놓여 있으며 여전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방치되어 있으며 권력과 세속적 이득을 위해 착취를 강요당하고 있다. 약자는 여전히 약자이며 부조리한 세상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보다 합리적으로 변모하고 스마트하게 첨단의 옷을 입고서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이상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제시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왜곡된 휴머니즘으로 빈 허공을 울릴 뿐이다. 20대의청춘을 지나 40대를 바라보는 혈기왕성한 작가에게 이 끔찍하게도변함없는 불안과 위협이 바이러스처럼 증식되어 좀비의 존재(NotDead)를 부활시킨 듯하다. 어쨌든 작가는 젊은 아티스트가 지향하는 열정의 정점에서 그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양한 실험들로 거듭나고 있다. 좀비를 부활시켜 B급정서를 승계하는 작가 홍남기의 다음 전시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다양한 실험과 장르적 탐험이 또 어떻게변이(Transformation)되어 출현할지 설레기 때문이다.

미디어아트 부활의 밀알을 보다
1984년 아티스트 백남준이 꿈꾸었던 21세기는 무엇이었을까. 파격과 일탈, 실험과 장르적 탐험을 넘나들던 그는 미디어아트의 미래를 어떻게 예견하고 있었을까. 대한민국을 놓고 보면 내가 사는 곳에서 좀멀다. 가까이 보자. 내가 먹고 자고 숨쉬는 전라북도 혹은 전주의 미디어 아트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작품보다 사람, 즉 작가를 먼저 찾아보자. 8년 전 늦은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당시 전라북도에는 비슷한 시기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비슷한 연배의 한, 두명의 작가가 있었고 젊은 작가 한둘이 있었다. 그때그들은 어떠한 통로로든 세상과 소통하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만큼의 의식과 열정을 가지고 닥쳐올 전투에 불퇴의 의지를 불사르며 있었다. 그래서 고향에서 다시 시작하며 느끼는 작업의 감회는 더욱새롭고 한껏 고무되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작업에 대한 의지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속세에 편입되었다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우리 지역을 근거로 미디어아트를 연속하는 사람은 현재 극소수이다. 이유는?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치졸한 변명으로 들릴 수도, 왜곡된 오해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굳이 이 지면에서는사양하겠다. 단지 상황만을 정리하자면 지금, 지역의 미디어아트는다음 단계를 향해가는 고통 가득한 과도기이다. 장르적 정체성과그에 대한 대중적 인식, 작가적 아이덴티티와 관객과의 소통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하다. 장르를 연구하고 작업하는 사람들 모두 이러한 사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간과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변화와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다행히도 지역의 수많은 유지들이 각각의 노력을 모으고 있다. 전시평과 함께 언급한 우진문화공간과 레지던시를 통해 다양한 레퍼런스를 들려주는 교동아트미술관을 비롯해 얼마 전 양곡창고를 개조해 미디어아트 갤러리를 표방하고 나선 삼례문화예술촌의 VM아트갤러리의 개관도 향후의 약진을기대하게 한다. 더불어 지역 미술관련 단체 혹은 미술관의 인식까지도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낙관한다. 위에서 극소수의 지역 내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현실을 직시했었다. 더불어 한 가지는 꼭 짚고가야겠다.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든 어떠한 환경으로 인해서든 현재존재를 보이지는 않으나,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이지는 않으나 사라지지 않았음을. 본인들의 허락도 없이 좀비에 비유해 좀 그렇지만 아직은 ‘Not Dead’ 상태임을 새로운 작품과 함께 부활해 언젠가는 증명해내리라 믿는다. 작가 홍남기의 전시가 더욱 반가운 이유는 우리 지역에서 아직 죽지 않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에 대한 부활의 밀알을 보기 때문이다.

1984년 1월 1일, 아티스트 백남준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새로운 미디어로 멋지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그 이른 아침부터 흑백TV 앞에서 약간은 이해하지 못할 판타지한 세계에 흠뻑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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