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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 | 칼럼·시평 [문화시평]
무대의 안정감과 극적 감동 사이
전주시립극단 100회 공연 <피래미들>
곽병창 교수(2014-04-29 15:10:51)



전주시립극단이 100 기념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동안 시립극단이 펼쳐온 연극들은,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고전명작들을 소개하는 공연에서부터 지역 희곡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하여 무대에 올리는 일에 이르기까지, 마디로 요약할 없을 만큼 스펙트럼이 넓다. 그런 만큼 시립극단의 공연을 두고 특징이나 경향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부질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풍성한 공연을 단어로 요약하자면 안정감이라 있다. 전주시립극단의 공연은 이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배와 같다. 강물이나 호수나, 격랑이 치는 바다에 나아가더라도 흔들릴 같지 않은 그런 안정감이다. 비유를 풀고 다시 말하자면 고전이든 실험극이든 번역극이나 창작초연이나 모두 참으로 안정감 있게 무대화해낸다는 뜻이다. 이런 안정감의 바탕에는 물론 역량 있는 배우들의 존재가 있다. 상당수가 상근단원 이십년 가량의 공력을 자랑할 만큼 시립극단 연기진은 중량감이 있고 능란하다. 

이번에 선보인 김태수 , 류경호 연출의피래미들 시립극단 배우들의 이런 경륜이 유감없이 발휘된 공연이었다. ‘서민극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을 그려온 김태수 작가의 작품은 시립극단의 배우진들에게 너무 편안하고 맞는 옷처럼 보였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서민극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에 대해서민극, 부유층 연극이 따로 있느냐?”내가 추구하는 것은 대중적인 시민극이라고 바로잡고 싶어한다. 서민극과 시민극 사이의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불필요하다. 다만 작가가 추구하는 연극적 가치관은 분명하다. “삶의 가치는 낮은 소외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들의 아픔과 희망을 따뜻한 감성으로 보여주고 싶다.” 작가의 말이다. 

<피라미들> 작가의 이와 같은 가치관에 오차 없이 충실한 작품이다. 그리고 배우들은 작가의 의도에 충실히 부합할 만큼 서민들의 일상에 녹아든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김태수 작가의 가장 장점은 극적 언어의 리얼리티이다. 투박한 일상어에 바탕을 현란한 대사들은 자체로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팔도의 사투리를 전시하는 듯한 시장통 사람들의 언어는 자체로 리듬감을 지닌 시와도 같다. 여기에 욕설과 비속어, 뜬금없는 사자성어 등의 아이러니까지 겹쳐지면서 바탕 말의 잔치판을 벌이는 듯하다. 배우들은 희곡의 말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질박한 서민들의 일상을 재현하고 있다. 작가의 연극적 가치관과 배우들의 몸에 연기술이 행복하게 결합한 결과이다. 작가가 일부러 설정한 희극적 캐릭터들(떡집 안주인, 좀약장수, 도너츠장수 ) 말고도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관객으로부터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키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다.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있던, 그러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 인물군()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조금은 비밀스런 사연을 지닌 채소장수의 딸과 좀약 장수 사이의 로맨스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거친 시장판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는 작품 전체의 질펀한 일상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화적인 순애보의 영역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좀약장수가 선택하는 비극적인 결말은 떠들썩하고 거친 작품의 정조에 비장미를 더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무대 위의 배우들이 편안하고 능란하게 배역을 소화해내고 있는 동안 관객들 또한 그만큼 편안한가?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편안함이 지나치면 관객들은 지루해진다. 물론 약간은 지루해도 좋은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편안한 소파에 파묻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일연속극의 관객들에게 어울린다. 무려 시간에 걸친 공연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원작 대본의 압축과 생략을 포함한 전체적 수정작업, 그리고 무대진행상의 템포를 부여하고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연출이 감당해야 하는 최고의 과업이다. 원작에 충실하겠다는 생각이 역설적으로 원작의 의도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작품의 원작은 여러 배우들에게 골고루 출연기회를 주기 위한 기획에 충실히 부응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탓에 전체 이야기의 연극적 골격이 다소 느슨하고 당위성이 부족한 대목이 여러 군데 있다.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날 처지가 시장상인들이 땅주인인 국회의원과 일당들을 상대로 싸우다가 좌절해가는 이야기가 작품의 메인 플롯이다. 하지만 전체의 분량에서 메인 플롯이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상당히 시간을 관객들은 시장통 사람들 각자의 전사(前史) 잡다한 일상사를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정작 작품의 중심 갈등이라 의원 일당과 시장 상인들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은 너무 상투적이고 단순하다. 좀약장수의 자살과 진혼굿, 그리고 느닷없는 뮤지컬적 결말처리는 플롯상으로도 극형식 상으로도 모두 설득력이 약하다. 주인공 또한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고 서브 플롯(번영회장 선거를 둘러싼 갈등, 젊은이의 로맨스 ) 메인플롯과 유기적으로 얽히지 겉돈다. 앞부분에서 서민들의 질박하고 따뜻한 일상을 그리는 듯하던 작품이, 철거민의 항쟁, 분신, 진혼굿 등의 충격적 소재를 동원해서 후반부를 요동치게 했음에도 연극적 감동으로 이어지지 하는 이유이다. 원작에 대한 연출의 적극적인 재해석과 내면화작업이 아쉬운 부분이다. 

안정감 있는 연기가 깊은 연극적 감동과 새로운 무대미학의 즐거움으로 이어지게 하는 , 그것이 다른 100회를 향해 나아가는 시립극단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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